발렌타인 30년 산이 날아갈 뻔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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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에서 돌아오자마자,
포돌이를 만났다.
보고 싶었다. 미친 듯이.
그런데 막상 얼굴을 보니
반가움은 잠시,
금세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날은,
그가 ‘나’를 설명하지 못한 날이었다.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서
낯설게 앉아있었다.
“미리 말해줬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마음의 준비를 하든가
오지 않았을거다.
서운했던 건
그 자리가 아니라,
그걸 미리 말하지 않은
포돌이 방식이었다.
나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아서,
더 서운했다.
혹시나 하고 물었다.
“상처 줄까 봐 그래?”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끄덕임에,
나는 또 마음이 풀어져
포돌이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아, 이 사람은
갈등을 말로 꺼내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구나.
그 순간 생각했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감정 방식도
같이 안아줘야 하지 않을까.
그의 세계까지.
그래서 다짐했다.
서운함을 삼킬 줄 아는 사람.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로.
상처 주지 않기.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조심스러운 사람에게
조금 더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기로.
그날,
연애보다 더 큰 단어.
‘관계’를 배웠다.
우리는 단순히 ‘둘’만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때론 그곳까지 함께 걸어가 주는 일.
그게 어쩌면,
사랑이라는 거겠지.
⸻
… 그렇게 착하게 마음먹어놓고는,
그날 밤 또 싸웠다.
웃긴 건,
왜 싸웠는지도 잘 모르겠다.
늘 반복되는 감정 표현 문제.
작은 서운함.
무심한 말투.
뭐, 늘 그랬듯
그날도 그랬을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건,
아까 그 서운함이
결국 터져 나왔을 거다.
나는,
발렌타인 30년 산을 번쩍 들고 외쳤다.
“이거, 버릴 거야!”
포돌이는,
거의 반사적으로 내 손을 막았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해.”
그 말, 그 손짓에
우린 또 웃었다.
한참을.
참, 이상한 사이야.
참 안 맞는데,
참 잘 맞는다.
ISTP와의 연애는,
침묵을 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던 사람.
그 침묵에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그건 신뢰가 생겨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이너마더의 회피형 연애꿀팁
경윤아,
회피형은 감정을 ‘미리 공지’ 하지 않아.
그건 갈등을
실제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라 생각하거든.
그래서 그는
아무 일 없기를 바랐을 거야.
그게 그의 방식이니까.
그리고 넌,
그날, 끝까지 함께 있어줬지.
(…발렌타인으로 협박하기 직전까지.)
그는 말은 안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심하고 고마웠을 거야.
그리고 그 “미안해”는,
술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 상황을 멈추고 싶다는 뜻이야.
그게 바로,
포돌이의 표현 방식이야.
말은 없지만, 진심인.
⸻
다음화 예고
미리 말 안 하는 사람이나,
발렌타인 들고 협박하는 사람이나,
그러다 결국 또 웃는 사람이나
다 이상하네요.
원래 연애가 이런 건가요?
왜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서툴까요.
이상한 사람 둘의
우당탕탕 연애 이야기.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간
조금은 나아지겠지요?
쓰다 보니 보이는 것들.
그래서 계속 씁니다.
언젠가 포돌이 글도
올릴 날이 올까요?
(재목: ENTJ, 불안형과의 연애 필살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