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가는 길, MBTI 그리고 반전

계획이 없어도 괜찮은 이유

by 강경윤

https://brunch.co.kr/@828401f9d7b3475/21


“내일 오징어회 먹으러 강릉 갈까?”

요즘 오징어가 엄청 싸다길래

가자고 했다.


경윤이가 바로 대답했다.

“그래.”


보통은

‘몇 시에 출발해?’

‘바로 와, 자고 와?’

질문이 따라오는데,

이번엔 없었다.


군소리 없이 간다니까,

나도 군소리 없이 일찍 출발했다.



가는 길에 경윤이가 물었다.

“사실 오늘 안 가고 싶었지?”


끄덕.


안 가고 싶었다기보다,

그냥 좀… 천천히 출발하고 싶었다.


“근데 왜? 내가 또 난리 칠까 봐?”

또 굳이 묻는다.


끄덕.


어차피 갈 거면,

난리 치기 전에 가자 싶었다.

오징어회는 꼭 먹고 싶었으니까.



차 안에서 갑자기

MBTI 얘기가 나왔다.

“우리 검사해 보자.”


나는 그거, 안 믿는다.

사람을 네 글자로 나눈다니,

그게 말이 되나.


근데 이미 신청해 놨단다.

후배한테.

돈도 냈단다. 꼭 하잖다.


경윤이는 질문을 읽었고,

나는 대답했다.

자기가 대신 클릭도 했다.

그렇게 결국, 144문항.

다 했다.


그 과정에서 또 웃었다.



결과는 INTP.

경윤이는 내가 ISTP일 줄 알았단다.

단순한 놈인 줄 알았는데,

좀 복잡했나 보다.


나는 단순한 놈 아니다.

생각이 많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리고

경윤이는 믿지 않겠지만,

나, 은근히 창의적이다.



나는 계획을 안 세운다.

세워봤자 늘 틀어졌으니까.


그래서 이젠

그냥 흘러가게 둔다.

그래야 덜피곤하다.


요즘은 경윤이도

예전처럼 묻지 않는다.

‘몇 시에, 어디로, 어떻게’

그런 거 안 묻는다.


내 방식에

조금은 익숙해졌나 보다.



속초에 도착했다.

오징어가 생각보다 비쌌다.


주문진으로 갈까?

주문진으로 가다가

그냥 여기서 먹을까?


다시 돌아왔다.

갈팡질팡.


경윤인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했다.


갈팡질팡 끝에 속초에서 먹게 된 오징어회


경치 좋은 카페를 가자했다.

근처에서 제일 큰 카페를 검색했다.

여기 갈까. 들어가 보니 아니었다.

저기 갈까. 또 아니었다.


어? 저기 어때.

결국 3번째 우연히

맘에 드는 카페를 찾았다.




경윤이가 물었다.

“뭐가 제일 좋았어?”


“울산바위 보이던 카페.”

라고 했다.


경윤이는 말했다.

“나도.”


우연히 발견한 그곳이

경윤이도 좋았나 보다.


조금은,

비슷해졌다는 뜻이겠지.


근데 말이지.

내가 운전할 땐

맛집 정도는

미리 좀 찾아줬으면 좋겠다.



이너마더가 포돌이에게


포돌아,

너는 계획 없는 게

편한 사람이잖아.


그게 너답고,

그게 너를 덜 귀찮게 해주는

방식이었으니까.


속초냐 주문진이냐

길에서 헤매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 덕에 찾은 카페도 있었잖아.


계획 없는 길에서도

좋은 순간은 생겨.

그런 우연도 인생엔 꼭 필요해.


그런데 말이야,

가끔은 누군가 맛집 하나쯤

미리 검색해 놓는 수고가 있어야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 더 편안해지는 거야.


사실 경윤이는 그걸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네 방식에

한 번쯤 맞춰보고 싶었던 거겠지.


그리고

그 시간이 경윤이한테도

딱히 나쁘진 않았을 거야.


P와 J는 다르지만,

그 다름을 맞춰가는 연습,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조금씩

조금 더 같이 흘러가면 돼.


keyword
이전 09화동거가 싫은 남자, 결혼이 싫은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