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다는 건, 도망이 아니라 숨 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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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1년 됐어.”
그 말을 듣고서야 시간을 실감했다.
경윤이 말했다.
“1년 됐으니까,
우리 한번 진지하게 얘기하자.”
그리고 물었다.
“우리, 확신은 있는 거야?”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확신을 믿지 않는다.
감정은 변하고, 상황은 바뀐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난 지금 좋으면 된다.
그게 내가 말할 수 있는 확신의 전부다.
경윤인 달랐다.
경윤인 계획이 있어야 안심했고,
나는 계획이 있으면 숨이 막혔다.
나는 지금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경윤인 내일도 괜찮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아마 그게 우리가 다른 이유다.
⸻
동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오래 생각했다.
같이 사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구조가 마음에 걸렸다.
동거는 감정보단 형태가
불안정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다르다.
울타리가 있고, 약속이 있다.
그건 최소한의 시스템이다.
나는 감정보다 시스템을 믿는다.
감정은 흐르고, 시스템은 유지된다.
물론 시스템이 유지된다고 해서
그게 영원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경윤인 불안을 말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불안했지만
그걸 설명할 방법을 몰랐다.
⸻
경윤이 좋다.
그건 분명하다.
확신이 없는 게 아니라,
나는 확신을 믿지 않는다.
지금 좋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 흘러가보고 싶다.
흘러간다는 건 도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법이고,
숨 쉬는 법이다.
그러니까
너무 붙잡지 말고,
그냥 지금을 믿어줬으면 좋겠다.
⸻
이너마더가 포돌이에게
포돌아,
넌 늘 흘러가야 편하다고 말하지.
그건 틀린 말이 아니야.
붙잡히면 상처받았고,
기대하면 무너졌던 기억이 있으니까.
그래서 네게 ‘흘러간다’는 건
도망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이었겠지.
하지만 경윤이는 달라.
그녀는 붙잡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네 속도를 알고 싶었던 거야.
확신을 요구한 게 아니라,
너를 믿을 수 있는 리듬을
찾고 싶었던 거야.
너는 흘러가며 자유를 느끼고,
그녀는 계획하며 안정을 느껴.
그래서 결국 부딪힌 거야.
사랑은 틀려서 어긋나는 게 아니라,
달라서 멀어지는 거니까.
그러니까 포돌아,
너무 멀리만 가지 마.
닿을 만큼의 거리에서 흘러가면 돼.
그게 네가 숨 쉴 수 있는 사랑이고,
그녀가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