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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Sep 11. 2024

7장. 음모

 용수가 사라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영환은 무언가에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용수는 대제학에게 누명을 씌우는데 일조하는 대신 도망자가 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그 알량한 도의, 절개 이런 것 따위를 지키고자 일확천금을 거머쥘 기회를 버리다니……. 영환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영환은 비밀리에 계속 용수의 행방을 쫓았다. 이번에는 그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자신이 대제학에게 역모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는 사실이 결코 임금의 귀에 들어가서는 안될 일이었다. 영환은 용수를 쫓는 한편,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대신들과 함께 끊임없이 성렬을 모함했다. 역적의 무리와 접촉을 했다는 사실이 역모에 동참했다는 증거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히 자신에게 대적해 성렬을 비호해 줄 만한 세력은 없었다. 성렬이 비록 대제학에까지 오른 자이긴 하였으나, 소론 출신인 데다 처가마저 한미한 가문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성렬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만한 자들이라면 이조판서와 도승지 정도였으나, 마침 둘 모두 부재중이었다. 이조판서 이한석은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내려가 있었고, 도승지 김학균은 연행사로 청국에 가고 없던 터였다. 영환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참에 확실히 성렬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철저히 짓밟아 없앤다……. 그것은 영환이 가진 삶의 철칙이었다.

 성렬의 결백을 믿었던 임금은 사라진 유일한 증인 한용수를 찾아 성렬의 무죄를 입증해주고 싶어 했으나, 끝내 한용수를 찾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철저히 궐로 들어오는 자들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제가 있는 한, 한용수는 임금의 그림자조차 접할 수 없을 것이었다.        

 용수를 찾지 못한 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마침내 역적의 무리와 접촉한 성렬을 벌하라는 상소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연에서 영환을 비롯한 대신들이 성렬이 역모에 연루되었음을 주장하며 시도 때도 없이 “통촉하여 주십시오!”를 연발하자, 임금도 더 이상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워낙에 성렬을 아꼈던 임금은 날마다 권당(捲堂)과 공관(空館)을 통해 성렬의 무죄를 주장해 대는 유생들을 핑계 삼아, 성렬을 강화도로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무죄를 입증할 만한 증좌가 없는 대신 유죄를 입증할 만한 증좌 또한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역적의 무리와 접촉을 한 것은 사실이니 무언가 처벌을 내리지 않을 수는 없어, 한양에서 가장 가까운 유배지로 성렬을 유배 보낸 것이었다. 사라진 한용수를 찾아 성렬의 무죄를 입증하게 되면, 언제라도 다시 그를 불러들이려는 심산이었다.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으나, 당장 조정에서 성렬의 신랄한 비판을 듣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영환은 속이 시원했다. 죄야 앞으로 더 만들어내면 그만이었다.      

 영환은 성렬이 유배를 가던 날, 머리를 풀어헤치고 행차칼을 목에 차고도 전혀 초라해 보이지 않던 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이었다. 자신과 눈이 마주쳤을 때, 성렬의 눈빛에서는 증오나 원망의 감정을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길에 오른 것은 성렬이었건만, 그때 느낀 알 수 없는 패배감은 오래도록 영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영환은 오늘 성렬의 제자였던 도윤의 눈빛에서, 그 옛날 성렬의 눈빛과 같은 기운을 느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이어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그런 맑은 기운을 가진 자들이 탐이 났다.      

 "대감마님, 석형입니다."     

 제 것이 되지 못하면, 또 한 번 철저하게 짓밟아 버려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던 영환은 저를 부르는 수하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들어오너라."     

 사라진 옥구현 전(前) 현감의 아들을 찾기 위해 옥구현으로 급히 떠났던 수하 석형이, 돌아오자마자 영환을 찾은 것이었다.      

 "현감의 아들의 행방은 찾았느냐?"     

 "그것이… 그자의 행방을 알고 있단 자를 만나러 갔던 자리에, 감찰 나리가 있었습니다……."     

 "뭣이? 그게 사실이냐? 이감찰이 규찰 때 붙잡힌 현감의 아들이 가짜란 것을 어찌 알고, 현감의 진짜 아들의 행적을 쫓았단 말이더냐?"     

 "송구합니다, 나리. 제 불찰입니다. 허나, 무언가를 알고 온 것은 아닌 듯하였습니다. 그저 도망친 죄인의 아들을 붙잡고자 온 것이었습니다."     

 "네 정체를 들키지는 않았겠지?"     

 "염려 마십시오. 현감의 아들의 행적을 알리려 했던 자와 같은 일당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찰 나리의 무예가 그리 뛰어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습니다. 하마터면 감찰 나리에게 수하 중 하나가 잡힐 뻔하였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마을 아낙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감찰 나리가 그 아낙을 구하려고 잠시 틈을 보인 사이, 무사히 도망쳐 나왔습니다. 현감의 아들의 행적을 알고 있다던 자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 자리에서 없애 입막음을 하였습니다. 저희와 감찰 나리 양쪽에 모두 정보를 흘려 그저 돈을 뜯어내려던 자였을 뿐, 그자도 현감의 아들이 옥구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말고는 정확한 소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석형의 보고를 듣고 있던 영환의 얼굴에 섬뜩한 냉기가 서려왔다. 이번에도 자신이 욕심을 냈던 이는 자신의 사람이 되기는 그른 둣했다. 하필 이번 규찰지에 옥구현이 있었다니…….      

 전라도에 규찰을 나갔던 사헌부 감찰 이도윤은 마지막 규찰지 옥구현에서,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이고 공물을 빼돌려 제 배를 불리던 현감을 적발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헌부 감찰로서 제 할 일을 하다 보니 우연히 현감을 잡아들인 것이라 여겨, 크게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차피 의금부 옥사에 갇힌 현감은 제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그 입을 닫게 할 수 있었다. 허나, 도윤이 사라진 현감의 진짜 아들을 잡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옥구현 전(前) 현감은, 사라진 한용수의 행적을 쫓는 일을 맡겼던 이들 중 하나였다. 용수가 윤지의 수하가 되기 전, 오랜 시간을 옥구현에 기거했단 사실을 알게 된 영환은 옥구현 현감에게 뇌물을 주며 비밀리에 일을 맡겼다. 영환의 사주를 받은 옥구현 전(前) 현감과 그의 아들이 지금까지 용수의 행방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자신이 한용수를 계속 쫓고 있었단 사실이 임금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크나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어리석은 놈……. 내가 주는 재물로 만족했으면 오늘날 이런 사달을 만들지도 않았을 터인데……, 쯧!‘     

 영환은 혀를 끌끌 차며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지로 참았다.      

 "이도윤은 조정에서 촉망받고 있는 불세출의 인재다. 임금뿐 아니라 세손까지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자이니, 섣불리 건드릴 수는 없다. 너는 하루빨리 현감의 아들을 찾거라. 그리고, 만약… 이감찰 쪽에서 먼저 현감의 아들을 잡게 된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현감의 아들을 없애라. 그자에게서 무언가를 알아낸다 한들 증인도 없고 증좌도 없는 한, 별수가 없을 게다."     

 "명, 받잡겠습니다, 대감마님."     

 영환은 결연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석형에게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석형아… 내 너를 믿고 있으마. 네 하기에 따라, 네 누이는 언제든 기방에 팔려갈 수도 있단 사실을 잊지 말거라."     

 영환의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한 마디에 석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뒤, 단호한 목소리로 답을 했다.     

 "죽을힘을 다해 시키신 일을 해내겠습니다."     

 영환은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깟 게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직은 노련한 자신의 적수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신과, 옥구현 현감의 표면적인 죄목만을 알고 있는 이감찰의 움직임에는 확연한 시간 차이가 있었다. 설사 나중에 이감찰이 다른 것을 더 밝혀낸다 할지라도, 그때 자신은 이미 다른 대안을 마련해 놓고 있을 것이었다.      

 영환은 보료에서 일어나, 뒷짐을 진 채 한참 동안 동창(東窓)을 통해 저녁 어스름이 깃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 시각… 하루 중 영환이 가장 좋아하는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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