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 에포크 Nov 02. 2022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상실 그리고 우울

 어릴 때, 어른이 되면 뭐든 잘해 낼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은 성장의 최종단계로서, 이미 많은 것을 습득하고 노련한 존재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릴 적 내가 본 부모님의 모습만 떠올려도, 어른이란 존재는 어린 나에게 큰 산이었고 넓은 울타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이 어른이라 부르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그런 존재일까?

어른이 됐지만 지금의 나의 어린 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실수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고, 오히려 나이를 앞세워 오만에 휩싸여 가벼이 여기고, 오판할 때가 많다.

어른이란 존재도 여전히 배우고 깨닫고 발견하는 성장 중인 상태이구나를 요즘 들어 특히 더 많이 느낀다. 나이만 헛먹은 어른이라 부끄러워졌다.




출처_네이버 이미지


며칠 동안 계속 기분이 가라앉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처럼  무기력하고, 열심히 해도 달라질 수 없다는 생각에 흘러가는 시간마저 허무해져 간다. 

무언가 불공평하고 비통해져 화도 난다.

어디 탓할 궁리마저 하던 분노는 아무런 변화도, 어떤 의미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분노 이면에 우울이 숨어 있다.

프로이트는 '우울은 상실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당연했던 우리 일상이 이번 로 인해 상실을 느끼고 사회 전체가 우울에 빠진듯하다.

그렇다고 우울을 느끼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지금은 오히려 실컷 우울해하고 분노하고 슬퍼해야 때라고 생각한다.

분노가 솟구치면 소리 내어 분노하고, 판단하지 말고, 의미조차 찾으려 하지 않고, 오직 분노 그대로를 느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삶은 불공평하다. 그러니 이토록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상실 앞에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슬픔은 밖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고통과 슬픔은 오직 표현할 때만이 충분히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에 '종결'은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수시로  이 날이 돌아올 때마다, 그간  힘들여 꼭꼭 눌러두었던 슬픔이 다시 여지없이 또 분출될 것이다.

괜찮다. 지금은 나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힘껏 애도를 쏟아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동안은 감정에게 나의 자리를 내어주어도 된다.




'상실'은 가장 큰 인생 수업이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무언가 잃어갈 것들에 대해 정녕 두려운가? 하지만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실이란 ‘모두 끝났다’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의 증거가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가끔은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들이 성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른스럽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에 밀려오는 감정들을 애써 열심히 숨기고 모른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커져가는 감정의 말도 들어주면 어떨까? 부끄럽거나 혹은 마주하기 힘든 감정일지라도 나의 일부분임을 잊지 말자.

심호흡을 크게 해 본다.

 모든 상실과 슬픔과 우울이 나를 온통 덮친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다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우선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남겨진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출처_네이버 이미지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소소해도 된다. 아니, 오히려 소소할수록 좋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기, 점심밥 꼭꼭 씹어먹기, 창문 열기, 옆사람과 인사하기, 커피 한잔 마시기, 마트 가서 장보기...... "

당연한 일상 자체를 목표로 삼아보자.

나의 체크 리스트의 목표가 성취될수록 조금씩 일어설 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출처_네이버 이미지


무조건 이겨내자, 혹은 쓰러지지 말고  일어나라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횡포일 수 있을지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너져도 좋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충분히 몰려오는 감정을 애써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순수하게 깊이 느끼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우울감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오는 법이다. 그런 상황은 생의 일부분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렇기에 이 자연스러움을 거부하지는 말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거부보다는 순수하게 인지하고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내 마음속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계속된다.

우리는 이를 기억하고 이 상실이 생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은, 기억하고 반성하며 잊지 않고 되새기며.

남겨진 사명을 짊어지고 이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사죄의 말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