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주고 어묵 받고

by 아침해


게을러.


요새 내가 운동에 정말 게을러졌다.

밤늦게 과제한다는 핑계로 아침 6시에 매일 가던 아파트 피트니스 센터에 발을 똑 끊었다.

6시에 맞췄던 알람도 슬그머니 7시로 바꿔놓고

개운치 않게 일어나서 출근하기 바쁘다.

그렇게 아침부터 죄의식을 달고 사는데 기쁠 것도 100% 기쁘지 않다.


가야 해.


새벽 6시 용케 눈을 뜨고,

가기 싫은 마음과 싸움을 시작하느라 15분을 버렸다.

결국 피트니스 센터에 갔다.


가끔 뵈던 , 실제 내가 잘 안 가서 가끔 뵈는 것이지 매일 오시는 부부내외 어르신이 있다.

26층에 사시는데 할아버지는 베트남 파병도 다녀오신 육군장교님이시다.

일전에 문 앞에 국가 유공자라는 팻말을 본 적이 있어서 여쭤봤고 그때 들은 소리다.

여든이 다 되신 것 같은데, 역기를 얼마나 잘 드시는지

할아버지가 스쳐간 자리에 남겨진 50kg 무게를 20kg으로 줄이는 수고를 꼭 해야 했다.

할머님은 자전거 페달 돌리기 선수이시다.

다른 운동은 안 하시고 그렇게 다리운동만 하시는데, 아마 나보다 다리 근력은 서너 배 좋으실 것 같다.


오늘도 눈인사를 할까 하다 보람된 마음을 얻고자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했다.

할머니께서 오라고 손짓하셨다.


"저녁에 몇 시에 와요?"

" 저는 7시면 와요."

" 내가 친구한테 받은 어묵이 많아요. 그것 좀 줄게요. 맛있더라고요. 몇 호죠?"

손가락으로 6을 보여드렸다.

" 6호 예요"

" 아 우리랑 같은 라인이구나. 일았어요."


할머니는 얼굴도 고우신데, 늘 말씀도 고우시다.







저녁 7시에 집에 와서 초인종 소리와 함께 어묵을 기다렸다.

8시가 돼도 아무 인기척이 없다.

8시 반에 남편이 해놓은 열무김치와 명이나물, 깍두기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26층으로 올라갔다.


"국가유공자의 집" 푯말을 보고 초인종을 눌렀다.


할머님이 쇼핑백에 어묵을 들고 나오셨다.

"아까 두 번이나 초인종 눌렀는데 안 나오던데. 이제 왔어요?"

"아니요? 저 못 들었는데, 언제 오셨어요?"

" 7시 20분, 8시 두 번 갔어요"


" 몇 층 가셨어요? 혹시 6층 가신 거 아니세요? 저 8층인데"

" 23층 갔는데? "

" 네? "

아뿔사 8층으로 말씀 안드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할머니와 나는 서로 보고 웃고 말았다.


할머니는 내가 몇 층에 사는지도 모르고 지레짐작 23층이라고 생각하시고

뉘집인지 모를 불쌍한 초인종을 눌러대셨던 모양이다.


"아이고, 흐흐흐 아이고... 다음에 먹을 것은 8층 잊지 말고 가져다주세요."


드디어 할머니의 어묵을 받고, 나는 남편의 김치를 전달했다.


"호호호. 정말 시집 잘 갔네요. 남편한테 잘 먹겠다고 전해줘요"



엘리베이터가 올 때까지

왼 다리를 문에 걸치시고 나를 배웅하셨다

그 정겨움에

어묵 담긴 가방까지 같이 흔들며 안녕하며 헤어졌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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