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시랍게' 자라온 인간

by 팔이년생청자켓

40대의 재취업이 어렵다는 얘기는 뉴스에서나 나오는 남의 얘긴 줄 알았다. 서울의 이름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나름 열심히 살아왔기에 그것이 내 얘기가 될 거라곤. 하지만 이내 앞자리가 4로 시작하는 나이는 취업시장에서 그 자체로 매력도가 최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물론 그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 탁월함이 있다면 나이가 무슨 문제가 될까.) 처음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일을 고르고 있었다. 이 일은 안 해본 일, 저 일은 하기 싫은 일, 또 어떤 일은 급여가 너무 적어서 뺐다. 가뜩이나 지방이라 채용기회 자체도 적은데 이래저래 다 빼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동생과 통화를 하며 신세한탄을 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동생의 한 마디. “오빠, 니는 너무 포시랍게 커서 그란다.” ‘포시랍게?’ 순간 ‘무슨 말이지?’하고 생각했지만 문맥상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더라. ‘포시랍다’는 말은 경상도 방언으로 ‘힘들고 궂은 일은 회피하려는 성향’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다. 돌이켜보니 나는 ‘아주 포시랍게’ 자라왔던 것이다. 대학교 진학 후 등록금 한 번 내 손으로 내본 적 없었고, 하숙비(월세), 생활비도 다 부모님께 받아 썼다. 대학가서 공부에만 몰두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그 흔한 편의점 알바 한 번 해본 적 없었다. 부모님의 바람처럼 공부라도 잘했어야 하는데 ‘자유로운 20대 성인의 나홀로 서울에서의 삶’은 나를 노는 길로 안내했다. 가까스로 졸업을 하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회사 근처 원룸 전세금 3천만원도 부모님께 받았고, 내 인생 첫 차도(1천만원) 부모님께서 사주셨다. 결혼 후 17평짜리 아파트 전세금 1억원도 부모님께서 마련해주셨다.(대체 부모님은 이런 돈이 어디서 났을까? 우리집 사정은 내가 뻔히 아는데. 뭘 물어. 안먹고 안입고 안쓰고 모으신 거지.) ‘와. 나 정말 귀하게 자랐네.’ 통화 후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리스트에서 지웠던 일들을 다시금 살펴보며 ‘그래도 할 만하다’ 싶은 일을 골라 지원했다. 답이 없다. 몇 군데 더 지원을 했지만 역시나 답이 없다. 그제야 나는 내가 더 이상 일을 고를 수 있을 만한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나는 단 한 번도 아파트 경비나 배달일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폐지 줍는 노인이 될 수도 있다는, 아니 될 거라는 확신에 찬 불안감이 엄습했다.(절대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몇 군데 닥치는대로 지원을 하던 중 유일하게 면접을 보자고 한 곳이 바로 지금 일하고 있는 칼국수 생산업체였다. 일단 답장이 온 자체로 너무 감사했고 어떻게든 일을 따내리라 다짐했다. 근무시간은 오전 4시부터 8시. 4시 출근시간을 맞추려면 3시 15분에는 일어나야 했지만 일이 끝나고 나서도 하루가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것이 너무 좋았다. 면접은 업무 관련 이야기 10분과 개인사 50분으로 1시간을 채웠다. 합격을 하든 못하든 면접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다행히 합격! ‘150만원’이라는 돈이 이토록 고마울 줄 몰랐다. 나는 더 이상 몸을 쓰는 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포시랍게 살지 않기로 했다.(반강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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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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