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 2]
친구들과 쇼핑을 가면 뭐하나 쉽게 고르지를 못했다.
그날의 내 기분을 위해 가벼운 충동심을 갖는 게 어려웠다. 집에 있는 옷과 겹치지 않으면서, 더 예쁘고 실용적이고, 가격은 저렴해야하는 흔히 말해 가성비를 신중하게 따지는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입을 옷을 사는 일 자체가 드문 일이라 쇼핑이 어설펐다.
세상 모든 둘째들이 겪는 일, 언니가 입던 옷이 작아지거나, 유행이 지나 실증나면 그게 내 옷이 되는 것이고, 남동생 옷을 내 사이즈로 사는 식이었다. 엄마는 그게 내 옷이라고 말했지만, 누가 봐도 남자아이의 옷이었다. 여자아이만 입을 수 있는 원피스 종류는 언니 옷을 살 때만 해당되었다.
내가 직접 고를 기회는 더더욱 없어서 기대 없이 방심하던 중에 ‘너도 골라봐’ 하는 급 찬스가 오면, 초시계 폭탄을 들고 어떤 걸 골라야 후회하지 않고 만족 할 수 있는지 몰라 초조하고 불안했다.
“이제 가야돼. 너는 다음에 사자” 결국 시간 안에 고르지 못하고 초시계 폭탄이 빵 터져 찬스를 놓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아 가 버리는 찬스의 끝자락을 잡듯 상가 끝 가게에서 아무거나 덥석 골라 때를 썼다. 뭐라도 갖고 싶은 마음에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꼭 저거여야만 하는 것처럼 집착했다.
폭탄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터져버리는 것이다. 안하던 짓에 놀란 엄마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고르라고 할 때 고르지!” 연회색에 보라색 포인트가 들어간 백 팩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낯선 새 것의 백 팩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거... 내건가?
"너 진짜 이거 입을 거야?!!"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엄마의 반복 확인이 있었지만, 또다시 찾아온 갑작스러운 기회가 무효가 될까봐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내가 진짜 원하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견을 강하게 밀어 붙여 차지한 또 하나의 ‘내 것.’
언니의 옷들 보다 예뻐야 된다는 생각에 그만, 저학년이 입는 화려함의 끝판 왕, 발레리나 쉬폰 재질의 하얀색 공주 드레스.. 집에 와서 눈을 의심했다.
‘.. 입을 거야.. 입으면 되지. 나..이거 입을 수 있..어.’
정신승리 해보려고 했지만, 나는 그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생애 처음 정해진 일주일 용돈 3,500원. 나는 학교 앞 슈퍼에서 뽑기 기계의 유혹을 참아내고,
100원, 200원 불량식품의 유혹을 참았다. 그리고는 내방 미술대회 벽걸이액자 뒤 코르크판을 열어 천 원짜리 지폐를 펴서 모아 두었다. 당시 문을 걸어 잠그고, 얼마나 조심스럽고 진지했는지 모른다.
8,000원 ~ 12,000원 정도의 돈이 모이면,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또는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4~50분 거리에 있는 큰 시내에 도착해 또 한 1~20분을 걸어서 큰 팬시점에 가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그곳에서 동네 문방구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디자인의 필통과 예쁜 무늬, 예쁜 색깔의 장우산, 사용하기 아까운 모양 지우개 등을 구매했다.
무엇보다, 공용의 것에서도 단념이 익숙했던 둘째이자, 선택의 기회가 많지 않아 항상 쫓기듯 선택해온 나로서는,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누구와 나누지 않고, 누구의 허락 없이, 또는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롯이 내 용돈을 계획대로 분배해 스스로 고르고, 쓰는 자유로운 권리 자체에 숨이 트였다.
그렇게 ‘내 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