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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Feb 26. 2024

책들의 시간 74. 연수

# 연수_장류진 소설집_창비

  순식간에 읽히는 책이다. 그러다 너무 빨리 읽어버리는 것이 아쉬워 책을 덮고 한참을 쉬었다. 책을 읽다가 다 읽는 것이 이리 아쉬운 책들이 있다. 재미있어서. 이 책이 그런 재미있는 책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시작으로 장류진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감탄을 하게 되는 건, 사람의 깊은 내면을 참 수월하게 묘사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탁월한 필력. 이렇게 술술 읽히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이십 대 딸에게 권유했더니, 하루도 안 되어 다 읽고는 재미있다고 전해왔다. 아이가 마주하게 될 취준생들의 이야기, 직장여성의 삶에 대한 소설이 있어 더 그리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1. 친절한 이웃의 힘


  뜻밖에 나도 알고 한 할머니 회원 이야기가 나왔다. 늘 나보다 한 타임 일찍 오고, 재활운동 위주로 하는 분이었는데 그 할머니가 숍을 확장하는 데 쓰라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삼천만 원의 자금을 융통해 주었다는 거였다. 개인 수업만 하지 말고 넓은 곳에서 운동 기구도 더 갖추고 일반 회원도 받아서 돈을 더 벌라고 했다는 거였나. 나중에 잘되어서 원금만 갚으라는 말과 함께.

  “그 할머님 제가 워낙 오래 봐드렸거든요. 그사이 무릎도 많이 좋아지시고……제가 새벽부터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모습이 예뻐 보이셨나 봐요. 이번에 와이프 둘째 임신했다고, 기쁜데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고 하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감사하죠. 제게 이런 소중한 인연이 있다는 게.”

  감은 눈앞을 둥둥 떠다니던 정체 모를 잔상들이 점점 흐려지다가 어느새 사라졌다. 완벽한 어둠만이 남았다. 그제야 한결 명확해졌다. 그러니까 응당 사람에게는 그런 마음이, 그런 종류의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35쪽)


  이 책에는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어느 하나 재미없는 것이 없다. 모두 다 술술 읽히며, 순간 마음이 섬뜩했다가 이내 웃다가 곰곰이 생각하게 되다가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처음 생각한 것은 친절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발견하기 힘들다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잊고 있었던 우리의 본모습일지도 모를 그런 친절함. 소설의 한 구절처럼 ‘응당 사람에게는 그런 마음이, 그런 종류의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친절한 도움들이 있었다. 학교를 옮기고 길이 익숙하지 않을 때, 밤에 야자 감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아홉 시 즈음. 도로로 진입하는 코너에서 갑자기(나에게는 정말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차가 벽에 부딪히며 빙글빙글 세 바퀴를 돌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슬로모션으로 커피가 담긴 컵이 위로 슝 떠올랐다가 떨어졌으며, 나는 너무 놀랐다. 차는 사선으로 한 길 도로를 막았으며, 차들은 내 차를 피해 좁은 통로를 벗어나듯 지나갔다. 두려움에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는데, 작은 차 한 대가 서더니 두 부부가 내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봐 주시고는 경찰과 소방서에 신고해 주셨다. 보험회사에도 전화해 주셨다. 생애 첫 사고였다. 부부는 그렇게 교통사고 처리를 도와주시고는 다시 차를 타고 떠나셨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보았을 때 선뜻 나서서 도와주기란 쉽지가 않다.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하는 내용에도 친절한 어떤 행동의 이면에 드러난 악의나 욕망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때로는 나의 친절한 행동이 타인이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런 상황들에 대한 두려움이 더 이상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게 만든다거나 자기 보호적 행동으로 위악을 선택하게 할 때도 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지? 여전히 고민하는 명제이다.      


2. 편견이 깨진 그 후. 


 벌써 눈에 선했다. 

 이 아이는 자기가 신입이라 모르는 게 많다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는 게 있으면 자기가 찾을 수 있는 선에서 찾아본 다음, 자기가 알아낸 것이 맞는지를 확인받을 것이다. 찾아도 나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할 것이다. 동시에 가르쳐달라고 할 것이다. 가르쳐주면 한 번에 알아듣고 비슷한 건에 대해서는 응용해서 적용할 것이다. 물론 필요한 사람들의 확인을 구두와 서면으로 모두 받은 다음 진행할 것이다. 절대 자의로는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문장을 잘 쓸 것이다. 누가 읽어도 말하려는 바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메일과 문서를 쓸 것이다. 누가 읽어도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는 한심한 글은 자신의 문장으로 재구성해 누가 봐도 명확한 글로 다시 바꾸어놓을 것이다.(143쪽)


  책에 실려 있는 단편 중 가장 재미있는 단편은 ‘공모’였다. 제목 ‘공모’보다는 ‘천의 얼굴’이란 단어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정도로 등장인물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사람에 대한 편견이 깨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부분들을 세심하게 잘 다루고 있다. 누군가의 부탁으로 이력서를 검토하고 면접을 보면서, 편견을 깨고 그 사람의 진심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주인공은 ‘내가 더 잘 부탁해’라고 말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일하는 여성의 삶에 대하여 생각했으며, 우리 아이가 처음 직장을 나갈 때 마주하게 되는 세상에 대하여 생각했다. 


  한동안 사회의 관심 키워드가 ‘어른’이었던 적이 있다. 몇 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할 때 학급 학생에게 받은 편지가 있다. ‘늘 아직 미완성의 모습인데 어른이 되어야 해서 불안했어요.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그런데 선생님을 만나고 의지하고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해 가는 느낌을 받아요’라는 편지의 구절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늘 마음으로 칭찬하는 아이였는데, 이런 편지를 받으니 부끄러웠다. 내가 과연 어른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지 겁도 났다. 그러면서도 묘한 믿음, 이 아이는 자라서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찾아갈 것이며, 특유의 유쾌함과 긍정으로 어려움의 덫을 피해 갈 것이며, 잘 헤쳐나갈 것이라는 그런 믿음. 참 잘 그리는 그림 실력으로 선생님이 되었을 때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며, 지리를 좋아하던 그 마음으로 곳곳을 누비며 여행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그런 희망, 그렇게 제자가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소설 속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우리 딸이 생각났으며, 나를 참 잘 따르던 아이들이 생각났으며, 함께 일하는 어린 동료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그런 아이들을 대하는 친절함이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누군가에게 친절한 이웃이었거나 친절한 이웃을 만난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타인에 대하여 편견으로 인해 오해를 했거나 타인으로부터 오해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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