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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Jun 10. 2023

나의 해바라기 ③

꿈의 학교 하랑 EP 5

“으으.. 이게 무슨 망신이야..”

아픔과 수치스러움으로 벌게진 숀이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훔쳤습니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소녀는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허리까지 접어가며 요란하게 웃어대기 시작했습니다. 



“풉…아하하하.. 아저씨 아니.. 너무 웃겨요 진짜 “



“실수였다고! 삼세판 몰라?”



“아니 아저씨.. 거울 보세요 거울..”



깔깔 거리며 웃던 소녀가 손거울과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었습니다. 어쩐지 찡한 콧등을 훔치며 숀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고 이내 소녀가 왜 웃어젖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콧잔등을 강타한 농구공 덕에 흘러나온 코피가 그의 얼굴을 빨갛게 덧칠하였습니다. 얼굴을 여러 번 문댄 덕분에 참 골고루도 펴 발라진 모습이 마치 톰행크스가 친구처럼 여기던 배구공, 윌슨의 모습과 똑 닮아있었습니다. 걱정은 못해줄망정 다짜고짜 웃어대기나 하고.. 숀은 투덜거리며 손수건으로 얼른 얼굴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 닦이지 않는 자신의 얼굴에 짜증을 내려던 숀도 어느 순간 우스꽝스러운 윌슨의 배구공머리에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허허 거 누군지 몰라도 미남이구만. 톰 행크스를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아.. 아저씨 그건 좀 아니죠.”

어느새 웃음기를 지운 소녀가 정색을 하며 숀을 바라보았습니다. 서로를 보며 잠시 눈싸움을 하던 둘은 이내 다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두운 강당 속 차갑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으로 따스한 웃음이 녹아들었습니다. 무겁기만 하던 공기가 두 사람의 웃음소리에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줘 보세요. 한 수 가르쳐 드릴게요.”

소녀는 숀의 손에 들려 있던 공을 뺏어 들더니 농구코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작은 체구였으나 탄탄하게 단련된 그녀의 허리는 다비드의 조각상처럼 올곧고 정돈된 슈팅 자세를 취했습니다. 



슉 



놀랍게도, 소녀가 쏘아 올린 농구공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빨려 들어가듯 골대로 들어갔습니다. 그녀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이며 달빛과 함께 흔들립니다. 마치 당연하게 골이 들어갈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소녀는 담담한 눈빛으로 튕겨 올라오는 농구공을 잡아냈습니다.



“자네 농구 선수인가? 그러기엔 키가 좀 작은데..”

무심코 기립박수를 치던 숀이 하얗게 웃으며 시비를 걸었습니다.



“아뇨. 농구를 잠깐 하기는 했지만, 선수는 하지 않았어요.”

시원하게 들어간 골에도 소녀의 표정은 어쩐지 밝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작은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농구공이 어쩐지 무거워 보입니다. 소녀는 숀을 보며 힘없이 웃어 보였습니다. 달빛에 비쳐 안 그래도 새하얀 그녀의 얼굴이 더욱 덧없고,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처럼 투명하게 빛났습니다. 



저는, 언제나 1등이거든요. 뭘 하던 손쉽게..


잘난 척처럼 들리는 그녀의 오만한 말이, 어쩐지 숀에게는 너무나 슬프게 들렸습니다. 






“와.. 진짜 덥네요.”

소녀와 함께 강당을 나온 숀은 경비실로 들어가 땀에 젖은 조끼를 벗어던졌습니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차 있는 경비실을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던 소녀는 구경이고 뭐고 우선 살고 봐야겠다는 듯 오래된 선풍기를 켜기 위해 손을 뻗었습니다. 



“어허.. 선풍기는 조금 참아주게나. 이걸 먹을 때 틀면 다 녹아버린다고.”



소녀의 손을 탁 쳐낸 숀은 이윽고 냉장고의 냉동칸에서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숀이 가져온 것은 추억의 향기를 가득 담은 보물상자였다.



파란 벨벳풍 디자인에 배경은 푸른 하늘색 바탕으로 이루어진 고급스러운 종이상자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상자를 본 소녀의 눈이 땡그래지며 우와~ 하는 탄성에 젖어들었습니다. 상자를 우두득 소리가 나게 뜯자 그 안에는 작은 큐브 형태의 아이스크림들이 고급스럽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밝은 파란색과 밝은 황금색 포장지 위에는 고급스러운 글씨체로 ‘엑셀런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곰을 닮은 거대한 체구의 숀과 자그맣고 야리야리한 체구의 소녀, 험상궂은 아저씨와 앳된 소녀는 서로 평행선 너머에 있듯 먼 거리에 있었지만 지금 이 작은 경비실에서 그와 그녀는 아이스크림 상자를 통해 서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엑셀런트는 당연히…”

즐거운 듯 순박하게 웃는 숀과 눈을 반짝이며 미소 짓는 그녀의 입이 동시에 열렸습니다. 



“파란색이지!”

“노란색이죠!”



숀의 경비실에 다시금 찾아온 정적. 서로를 잠깐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었는지. 두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를 보듯 어이없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엑셀런트는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다가 아냐. 끝맛에서 느껴지는 상큼함, 그리고 개운함은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에델바이스의 백합꽃과 에베레스트산의 겨울눈이 터져 나온다고. 오리지널 바닐라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맛이거늘… 노란색이라니 자네..”



“하.. 아저씨 아까 농구도 그렇고 시원찮은 부분이 많으시네요. 부드럽고 달콤한 바닐라의 향은 이 프렌치바닐라맛만이 느낄 수 있는 황금빛 맛이라고요. 보세요. 한입 먹으면 입안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며 먹던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눈을 감고도 떠오른다니까요. 이걸 모르다니 정말…”



입에 모터라도 달은 듯 두 사람은 더운 한여름의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아이스크림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였습니다. 웃긴 건 열심히 떠들고 있던 두 사람의 입에 쉼 없이 아이스크림이 들어가고 있었다는 점. 경비실 창문 너머로 입에 아이스크림을 잔뜩 묻힌 채 떠들고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달빛도 자그맣게 웃으며 천천히 기울어져 갔습니다. 



자정을 넘어 새벽의 마법 같은 고요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6개나 되는 아이스크림을 사이좋게 절반씩 나눠먹은 숀과 소녀는 그제야 마른 땀을 닦으며 편하게 침대와 의자에 각각 걸터앉았습니다. 곱게 다듬어진 검은 생머리를 쓸어 넘기는 소녀를 바라보던 숀은 이윽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해줄 때가 되지 않았나? 전교회장님.



- 4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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