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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Jun 10. 2023

나의 해바라기 ④

꿈의 학교 하랑 EP 5

“그래서 이제는 말해줄 때가 되지 않았나? 전교회장님.”



“…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전교회장이었던걸.”

숀이 갑작스러운 언급에 놀란 듯 소녀는 눈을 크게 떴습니다. 



“별거 아냐. 강당에 걸려있던 사진을 보았지. 역대 전교회장 연혁..이었나?”

하루에 한 번씩 성실하게 순찰을 돌던 숀에게 그녀의 얼굴은 처음부터 익숙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으나 학생 때의 앳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소녀였기에 그는 처음 소녀를 보자마자 그녀가 이 학교의 전교회장이었던 것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차분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의 사진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맞아요. 전 언제나 무엇을 하던, 1등이었거든요.”

멋진 슛을 쏘며 이야기하던 그녀의 말이 다시금 오버랩됩니다. 처음 본 타인에게 이야기하기엔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그녀의 말끝에는 씁쓸한 슬픔만이 묻어 나왔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에 하랑으로 전학을 온 전학생이었습니다. 소녀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초인이었습니다. 전학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공부면 공부, 하얀 눈처럼 맑은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외모는 sns에서만 보던 유명 셀럽 같았습니다. 엄친딸 같은 면모를 지닌 그녀는 무엇을 하던 곧 잘 해냈고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보통 굴러들어 온 돌이 빛나는 보석이라면 주위에서 온갖 시기와 질투로 깨지기 마련이지만 전학생에게는 그런 클리셰 같은 시련 역시 오지 않았습니다. 



“네가 육상을 하면 대한민국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이야!”

“아니야 애는 음악을 해야 해. 쇼팽도 울고 갈 실력이라니까?”

“야 무슨 스포츠냐. 애 실력으로는 스카이를 넘어서 의대도 가겠는데. 공부해야지”


모두가 그녀를 원했다.


수많은 동아리 선배들에게서 온 러브콜. 선생님들까지 발 벗고 나서서 여러 진로를 정해주었습니다. 소녀는 말없이 담담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 웃음이 또 한송이 작약꽃처럼 아름다웠기에, 주위 사람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그녀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범접할 수 없는 사람. 그러나 언제나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웃어주는 친절한 사람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상황이 그저 지루할 뿐이었습니다. 



‘시시해. 세상은 온통 회색빛이야.’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못하는 것은 없고, 언제나 남 앞에 서서 앞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 삶이 너무나도 시시하다고. 세상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재조립되고 형성됩니다. 남들이 땀 흘리며 노력하는 결과물도 그녀의 손짓 하나면 더 나은 결과물이 놀이동산의 솜사탕처럼 가볍게 생겨납니다. 



‘나는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에, 너희들은 왜 이렇게 목숨을 거는 거야?’



소녀의 미소가 어딘가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잠깐사이 드러난 비웃음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짧은 시간만에 사라지고 그 자리는 모두가 아는 온화한 미소로 채워졌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어릴 적 보았던 그림 속 웃고 있는 여인의 모습과 자신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사람들은 자신을 찾아주었고, 그저 웃기만 해도 명화라고,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박수갈채를 받게 되는 그녀처럼, 소녀의 존재 의의는 겨우 그 정도이지 않을까. 그녀는 자꾸만 마음의 틈바구니로 새어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면, 그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그녀는 그렇게 남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연기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교회장을 나가 보는 건 어떻겠니?”

소녀의 고운 머리가 상할세라 부드럽게 말려주던 어머니가 그녀에게 갑작스러운 제안을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부드럽고 친절했지만 소녀에게 어머니의 말은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모래알갱이를 삼킨 듯 부담스럽고 거북했습니다. 



‘더 이상 주목받고 싶지 않아. 남들 앞에 서기 싫어.’



“네 엄마. 잘 준비해서 나가볼게요.”



소녀는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녀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녀는 남들 앞에 서는 선택을 하였고 그런 그녀를 보며 어머니는 장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그녀는 조금 더 자신의 마음을 숨겨보고자 다짐하였습니다. 



“가족에게 라면, 털어놓을 수도 있지 않았겠나.”

그녀를 바라보는 숀의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작은 체구의 소녀는 이야기를 꺼낼수록 몸을 둥글게 말아 더욱 작고 가엾게 느껴졌습니다. 



“가족이라, 더더욱 안 돼요.”

살짝 떨리는 목소리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까요. 거짓된 모습을 들켰을 때 실망할 눈빛을 저는 못 견딜 거 같아요. 어디서부터 연기를 해왔는지 이제는 저도 잘 모를 지경이 되었어요. 어디부터가 진실된 저만의 모습이었을까요. 아니, 그런 적이 있긴 했을까요?”



오히려 숀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소녀는 쓰디쓴 공기를 삼킨 듯 희미하게 희석된 웃음을 지으며 창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이니까. 그녀는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숀은 그녀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꿈결 같은 새벽의 시간, 눈을 감았다 뜨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시간 속이기에 그녀는 처음 보는 숀에게, 처음이기에 비로소 아무에게도 비출 수 없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길고, 쓸쓸한 시간이었을 거 같아. 왜 그렇게까지..”



"저는 누구에게나, 1등이고 좋은 사람이어야 했으니까요."

소녀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있잖아요 숀.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던 제 문을, 두드려줬던 사람이.. 있었어요.”

과거를 회상하듯 소녀의 눈이 흐릿하지만 밝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 5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글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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