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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배운 신생아 키우기

책에서 기준을 찾고, 아이에게 답을 배우다

by 임지혜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버튼만 스쳐도 동요가 흘러나오고, 동물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에 바퀴가 달린 노란 아기상어가 쉴 새 없이 굴러다니며 소음을 더했다.

“아기 상어 뚜루루루루…”

요란한 소리가 집 안 구석구석을 비집고 들어왔다. 고요함은커녕,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깜깜한 우주에 떠도는 먼지 한 톨 같았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 예측 불가능한 삶이 어느새 일곱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기기 시작하자 거실에 울타리를 쳤다. TV장, 식탁, 집 안 곳곳이 잠재적 위험 요소였다. 두툼한 소음 방지 매트를 깔고, 그 끝을 따라 하얀 울타리를 둘렀다. 그 안은 온전히 아이의 세상이었다. 말랑한 인형, 딸랑이,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 책, 한쪽엔 기저귀와 물티슈, 여벌 내복까지. 아이는 그 안에서 먹고, 놀고, 싸고, 울었다. 포동포동하고 뽀송한 아이가 알록달록한 내복을 입고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나는 하루에 몇 번 울타리 밖으로 탈출했다. 밥을 먹을 때, 화장실을 갈 때.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푸석한 얼굴, 멍한 눈, 틀어 올린 머리 아래 잔머리가 목덜미에 찐득하게 들러붙었다. 울다 지친 아이를 안아 달래느라 흘린 땀이 원피스에 배어 쉰내가 났다. 가슴을 가로지르는 지퍼가 달린 수유 원피스를 입은, 울타리 안의 나는 언제든 아이를 품을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의무적으로 국을 데웠다. 입맛이 없어도 먹어야 했다. 국을 많이 먹어야 모유가 잘 돈다고 했다.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고 했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아이의 위치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시선이 바닥을 스칠 때마다 고동색 걸레받이가 눈에 밟혔다. 이 전세집은 잠시 머무는 곳이었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내 집이었다면, 저건 벌써 바꿨을 텐데….’

그때였다.

“와아아앙!”

울타리 너머에서 울음이 터졌다. 아이가 나를 향해 빠르게 기어오다가 울타리에 막히자,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어어어? 저게 뭐지?”

숟가락을 내려놓고 튕기듯 일어났다. 아이를 안아 들자 입가에 피가 묻어 있었다. 입술 안쪽이 얇게 찢어져 피가 배어 나오고, 얼굴과 손, 입가 주변엔 반짝이는 입자가 잔뜩 묻어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작은 혀의 돌기 사이사이에도 오로라빛 가루가 끼어 있었다. 바닥엔 반쯤 열린 섀도 팔레트. 어디에 처박혀 있다 나온 건지, 내용물은 절반 이상 사라져 있었다.

반짝이는 가루들이 아이의 몸에, 그리고 기어온 바닥 위에 길게 흩어져 있었다. 마치 그 빛이 앞으로의 아이를 축복하는 듯했다.

순간, 숨이 막혔다. 내 안의 모든 계획이 그 반짝임 속에서 흩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었다. 놀라서도, 안도해서도 아니었다. 무언가 끝난 듯했고, 동시에 무언가 막 시작된 듯했다. 이제 내 삶은 조금씩 흐려지고, 아이는 점점 더 선명해질 것이다. 그 빛 아래에서 나는 그림자처럼 옅어질 것이다. 그 사실이, 이상할 만큼 아프게 다가왔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내 젖을 물었다. 그러곤 그대로 잠들었다. 입술을 살짝 벌려보니 피는 멎었고, 반짝이 가루도 많이 사라져 있었다.

‘괜찮아. 똥으로 나올 거야. 이 정도는 괜찮아.’

나 자신을 그렇게 달랬다. 아이를 조심히 눕히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몸을 던졌다. 짧으면 40분, 길면 80분. 기적처럼 두 시간을 자는 날도 있었다. 《똑게육아》에서 말한 기준 낮잠 시간에, 아이도 점점 맞춰지고 있었다.

짧은 낮잠이 끝나면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 그 짧은 틈에라도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다. 소파 위에 놓인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를 집어 들었다. 노란 표지의 묵직한 책, 이름 그대로 ‘대백과’였다. 그 두꺼운 책은 마치 “모든 답은 여기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임신 준비부터 돌 이후까지, 시기별 정보가 빽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막막함 대신 확신을 찾으려 했다. 낯선 숲 앞에서 지도를 펼쳐든 사람처럼, 길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방향은 조금 보였다. 하지만, 더 구체적인 길이 필요했다.

《똑게육아》는 또 다른 교과서였다. ‘먹놀잠(먹고, 놀고, 자고)’이라는 키워드로 하루의 흐름을 단순하게 정리해주는 책. 처음엔 그 명확한 기준이 너무 고마웠다. 아이가 울면 “지금은 배고플 때야.”, “이제 졸릴 때야.” 하며 패턴에 맞춰 움직였다. 덕분에 아이의 하루 리듬이 조금씩 잡혀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기준이 나를 옭아맸다. 책의 시간표에 아이를 끼워 맞추다 보니, 나도 아이도 점점 지쳐갔다. 기준은 분명했지만, 마음은 자꾸 흔들렸다. 아이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원래 책을 잘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혼 전의 책장은 그저 장식이었다. 손님도 드나들지 않는 집에 괜히 책을 꽂아두며 스스로를 그럴듯하게 꾸몄다.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성격도 아니었고, 친구도 많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낯선 도시로 이사했고, 남편 말고는 아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남편도 나처럼, 육아는 처음이었다. 의지가 되기보다는 함께 불안해하는 동료에 가까웠다.

그렇게 남은 건 책뿐이었다. 책 속에서 기준을 찾았고, 그 기준 안에서 안심하려 했다. ‘평균’이라는 단어는 이상하리만큼 위로가 되었다. 어떤 날은 그 안에 머물고 싶어서 책을 펼쳤고, 어떤 날은 그 틀에서 멀어질까 봐 서둘러 덮었다. 아이는 평균은 아니었지만, 그 근처쯤이라는 사실이 내게는 안도였다.


나는 책으로 육아를 배워가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때로는 절박하게. 읽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읽었다. 책은 나의 지도이자 위안이었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족쇄였다. 기준과 강박 사이를 오가며, 내 마음은 자주 지치고 흔들렸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매일 자라났다. 어느새 ‘기준’이나 ‘평균’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책이 알려준 건 평균이었지만, 아이는 그 평균 밖에도 길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여전히 그 둘 사이에서 배우는 중이다.

완벽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며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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