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책을 읽다, 내 공부가 시작됐다
매일 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독서 기록을 남기면서도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다른 집 아이들은 얼마나,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그 질문이 매일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다. 그러다 ‘책육아의 성지’라 불리는 커뮤니티를 알게 됐다. 그곳엔 책육아에 열심인 엄마들이 모여 있었고, 아이의 개월 수별로 읽은 책 목록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그 표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우리 아이와 비교했다.
‘우리도 더 읽어야 해. 늦게 시작한 만큼 따라잡아야 해.’
책장을 더 구매하고, 더 많은 전집으로 채워나갔다. 책장에는 늘 ‘읽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이 더 많았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결핍이 눈에 들어왔다. 커뮤니티 속 ‘책 좀 읽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영어 그림책을 함께 읽고 있었다. 우리 집에도 30권짜리 영어 전집이 한 질 있었지만, 그 책들은 늘 우리말 책에 밀려 책장 맨 위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내가 영어 그림책을 왜 안 읽어줬지?’ 아차 싶었다.
그날 밤, 25개월 된 첫째 딸과 네 달 된 둘째 딸을 앉혀두고 영어 그림책을 꺼냈다. 그런데 우리말 책처럼 ‘그냥 읽어주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고작 그림책인데도 모르는 단어가 자꾸 눈에 띄었다. 기저귀(diaper), 둥지(nest), 각종 동물의 울음소리(meow meow, oink oink, squeak squeak…). 심지어 닭의 울음소리는 암컷과 수컷이 달랐다. 휴대폰으로 검색해 가며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엄마표 영어를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내가 이렇게까지 영어를 못했었나?’
궁금함과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영알못.’ 학창 시절엔 없던 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알파벳을 배웠고, 감으로 푸는 수능 영어에는 나름 자신 있었다. 하지만 영어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졸업 후엔 영어를 쓸 일이 없으니 그나마 있던 영어 실력도 사라졌다. 새해마다 ‘올해는 영어 공부!’를 다짐했지만 두 달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진짜 ‘영알못’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건 내 일이 아니라 아이들의 일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모른다고 물러설 수 없었다. 해야 했다. 무조건.
그날 밤, 아이들이 잠들자 다시 그림책을 펼쳤다. 그리고 결심했다. ‘일단 내가 먼저 읽어본 책만 아이에게 읽어주자.’ 아이 앞에서 서툰 모습을 보이기 싫은 마음,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뒤섞였다. 그 두 마음이 나를 책상 앞으로 끌어앉혔다.
영어 그림책을 다시 펼쳐 단어를 찾아보고, 발음을 들었다. 뜻은 대충 알겠는데, 문제는 소리였다. 웅웅—뭉개지는 소리. 정확히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따라 하다 보니 오히려 더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crawl [krɔːl] (엎드려) 기다. “크라? 크로? 크라을? L 발음은 안 하는 건가?”
diaper [ˈdaɪpər] 기저귀. “다이퍼? 다이뻐? 다이펄? 뭐가 맞는 거야?”
소리가 낯설었다. ‘아’도 ‘어’도 ‘오’도 아닌 어중간한 발음. 내가 알고 있던 영어는 ‘글자’였지, ‘소리’가 아니었다. 입으로 내뱉는 순간, 내가 배운 영어는 전혀 다른 언어가 되어버렸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애초에 ‘소리’를 배운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 앞에서 영어를 읽겠다고 나섰던 나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멈춰 섰다.
‘발음’ 앞에서 멈춰 선, 엄마의 자존심이 무너진 자리에서 진짜 공부가 시작됐다. 다른 엄마들도 ‘엄마표’로 한다는데, 나라고 못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이왕 하는 거 나도 기본부터 다시 해보자.’
그날부터 발음기호와 파닉스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유튜브엔 입 모양, 혀의 위치, 호흡까지 알려주는 영상이 쏟아졌다. R vs L, P vs F, B vs V… 알파벳을 한 글자씩 듣고 따라 했다. 반복할수록 소리가 구분됐고, 귀가 열리자 내 입에서도 조금씩 다른 소리가 났다. 작지만 분명한 성취감이 느껴졌다.
《100일이면 나도 영어천재》 책과 유튜브 채널로 입 모양부터 문장 강세, 호흡을 매일 따라 했다. 짧은 대화문도 외워보려 했지만 외우는 건 좀처럼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이런 식으로 영어공부를 포기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외우지 말고, 그냥 따라 하기만 하자.’ 그 단순한 다짐이 나를 지치지 않게 했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게 했다.
그렇게 매일 영어 공부를 하고, 매일 밤 영어 그림책을 읽어줬다.
얼마 뒤, 첫째 딸이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I am jumping, I am dancing.”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익숙한 문장이었다. 매일 밤 수없이 읽어주던 바로 그 문장. 짧은 문장 한 줄에 지난 시간의 수고가 모두 녹아 있었다. 눈앞의 아이가 바로 내 노력의 결과였다. 그 사실이 그 어떤 성적표보다 자랑스러웠다.
그 후로 영어 공부는 자연스럽게 생활이 되었다. 영상 보고, 따라 말하고, 다시 듣고.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한 가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뭐든 꾸준히 하면 는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나도 꾸준히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첫째 딸의 영어 발화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신기함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만약 내가 영어를 더 잘하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건 단순한 상상이었지만,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기엔 충분했다. 내가 더 잘하면, 아이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먼저 배우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나는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을 내 삶에서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배움에는 정해진 나이가 없으니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즐겁게 배우려 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변화는 반드시 온다. 이제 나는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아이의 공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