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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영어의 그늘

첫째의 성취 뒤에 숨은 둘째 딸의 침묵

by 임지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자연스러운 영어 노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이상적인 그림. 누구나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우리 집의 엄마표 영어에는 작은 성과와 함께, 그보다 훨씬 큰 부작용이 숨어 있었다.

다른 엄마표 영어의 성공담이 밝고 긍정적인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면, 우리 집의 엄마표 영어에는 작은 성과와 함께, 그보다 훨씬 큰 부작용이 숨어 있었다.


첫째 딸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자랐다. 말을 배우는 속도도, 행동하는 방식도 또래보다 늘 한 걸음 앞섰다. 영어 영상 속 문장까지 따라 하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나를 뿌듯하게 했다.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세 살 무렵, 혀 짧은 소리가 걱정되어 설소대 검사와 언어 발달 검사를 받았다.

“설소대는 구조상 정상 범위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또래보다 언어 발달은 약 10개월 정도 빠르네요. 검사하는 중에도 영어 단어를 섞어 말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당담자의 말을 들으며 결과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또래보다 10개월 빠르다.’

객관적인 그 지표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첫 육아는 매일이 시험대였다. 모든 게 처음이라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나를 내려놓고 하루를 통째로 아이에게 바치는 삶. 찬란할 줄 알았던 모성은 막상 닥치니 끝이 없는 희생 같았다. 그 와중에 받은 그 한 줄의 문장, ‘또래보다 빠르다.’ 그 말은 고단한 시간을 버텨낸 나에게 주어진 작은 상 같았다.


그 무렵, 여덟 달 된 둘째 딸은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때였다. 그때는 몰랐다. 지금 돌아보면, 그녀의 눈에는 언니의 재능을 키워주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언니와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놀아주는 엄마. 그리고 그걸 가만히 지켜보는 아이.


둘째는 자동 바운서에 내려놓기만 해도 한 시간은 혼자 놀다 잠들었다. 울지도, 보채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둘째는 참 순하네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는 예민했는데, 둘째는 편해서 다행이다.’

나는 ‘순함’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순함’의 이면에는 조용한 기다림이 있었다. 첫째의 말이 늘어갈수록 집 안은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그 소음 속에서 둘째의 침묵은 조금씩 깊어졌다.

낯선 캠핑장에서도 둘째는 혼자 놀다 잠들었다. 그사이 나는 호기심 많은 첫째가 다칠까 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첫째 땐 ‘먹놀잠(먹고, 놀고, 자는)’ 루틴을 만들기 위해 애썼지만,

둘째는 시간 맞춰 분유만 주면 스스로 놀고 잠들었다. 나는 그저 감사했다.

‘정말 조용한 아기야.’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의 발달을 기록하던 블로그에는 첫째의 늘어가는 언어의 기록으로 빼곡했다. 반면 둘째의 칸은 늘 비어 있었다.

‘이번 달도 별다른 변화 없음.’ 그 말이 몇 번이고 이어졌다. 13개월이 다 되도록 옹알이 한마디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면서도 ‘말이 좀 느린가 보다’ 하고 넘겼다.

16개월 무렵, 둘째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말했다. “또래랑 어울리면 곧 말문이 틀 거예요.” 그 말에 안심했고, 그렇게 또 몇 달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거실에는 가족의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둘째는 방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세 시간이 지나도록 깨어나지 않는 둘째가 걱정되어 살짝 문을 열었다. 그런데 둘째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문 소리에 고개를 돌려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을까. 얼마나 오래, 혼자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그 압도적인 무음 속에서 머리끝이 서늘해졌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오래 이 아이의 침묵을 모른 척해왔는지 깨달았다. ‘이건 아니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


“여보, 우리 둘째 지금 19개월이야. 그런데 아직도 말을 안 해. 옹알이도 없어. 나 좀 무서워.”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 우리 부부는 아이를 지켜봤다. 하지만 둘째의 입에서는 단 한 마디도, 심지어 옹알이조차 나오지 않았다. 배가 고파도, 기저귀가 젖어도, 졸려도 아이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19개월이면 간단한 요구쯤은 말로 표현할 시기였다. 돌이켜보니 나는 둘째에게 진득이 말을 걸어준 적이 거의 없었다. 하루 종일 첫째의 요구를 들어주고 지치면, 남은 에너지는 살림과 영어 공부에 나눠 썼다. 둘째는 불평 대신 기다려줬고, 나는 그 기다림을 ‘순함’이라 착각했다. 결국, 엄마가 말을 걸지 않는 집에서 아이에게 남은 언어는 침묵 뿐이었다.


‘내가 또 실패했구나. 내가 또 내 아이를 망쳤구나.’

그 말이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그렇게 되뇌다 보면, 자꾸 숨이 막혔다. 다른 엄마들은 다 잘해내는 것 같은데, 왜 나만 매번 넘어지는 걸까.

자책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내 탓이라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이번에도 내가 해야 한다. 다시 배워야 한다.’


그날 이후, 나는 둘째를 바라봤다.

침묵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우리의 언어가 다시 시작될 수 있게, 나는 아이를 보고 또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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