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한 발 앞서려는 엄마의 노력
아이 입에서 처음 영어 단어가 나왔을 때, 남편은 “우리말도 아직 서툰데 영어는 빠르지 않아?”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곧 아이의 변화를 보며 누구보다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나 역시 확신을 얻고 싶어, 본격적으로 영유아 영어 공부법을 찾아 헤맸다.
여러 책과 영상을 탐독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엄마의 꾸준함.’ 하지만 그게 가장 어려웠다.그래서 나는 결국 가장 쉬워 보이는 길, ‘영어 영상 노출’을 선택했다. 영어 영상 보여주기는 영알못 엄마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첫째 딸은 원래 영상을 좋아했기에 영어 영상에도 금세 익숙해졌다. 자연스럽게 우리말 영상은 줄고, 영어 영상이 늘어났다.
‘이건 그냥 TV가 아니라 공부야.’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시청 시간을 조금씩 늘렸다. 하루 20분의 책 읽기에 하루 한두 시간의 영어 영상이 더해지자, 아이의 영어 노출량은 눈에 띄게 늘었다. 그리고 놀라웠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아이는 쉬운 단어들 사이에 리듬과 억양을 넣으며 영어 옹알이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되는구나.”
가슴이 뛰었다. 그림책과 영상만으로도 이런 변화가 생기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엄마가 일상에서도 영어로 말을 한다면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가 공부하면 된다. 나만 고생하면 된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북돋우며 다시 한 번 용기를 냈다.
다음 목표는 회화였다.
회화책 《Hello 베이비, Hi 맘》을 따라 읽으며 문장을 외워봤지만, 현실에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기저귀 갈아줄까?”라는 문장을 수없이 연습했는데도, 정작 기저귀를 갈아주는 순간엔 영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책 속에서 따로따로 외운 문장들은 일상의 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회화책 한 권을 정독하고 수십 번 따라 말해봤지만,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영어는 여전히 없었다. 오히려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매일 보던 영상 속 Caillou의 엄마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애니메이션 <Caillou>의 대본을 외워보기로 했다. 빠른 대화를 수십 번 따라 했지만, 일상에서는 여전히 영어가 막혔다. 암기한 문장들은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나는 정말 영어에 소질이 없는 걸까?’
‘아니면 머리가 나쁜 걸까?’
지쳤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둘째 딸에게 큰 문제가 생기면서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지금껏 열심히 해왔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흔들렸다.
아이들의 영어는 내 영어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내 공부가 멈추니 아이의 성장도 함께 멈출 것 같았다.
‘내가 실패했구나.’
그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나는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첫째 딸은 영어 영상을 이해하는지 웃으면서 보고 있었다. 그동안 쏟은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까워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스쳤다.
‘혼자 못하겠으면, 함께 해보면 어떨까?’
주기적으로 시간을 내고 돈을 쓰는 건 어렵겠지만, 나처럼 아이 영어로 고민하는 엄마들과 함께라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 영어도 함께라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 《엄마표 영어 17년 보고서》의 저자 남수진(필명 ‘새벽달’)이 영어책 낭독 인증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용기 내어 신청했다.
그림과 함께 짧은 문장이 이어져, 마치 한 편의 일상 그림책 같은 《EEA: English for Everyday Activities》를 연습했다.
“치약을 칫솔 위에 짠다. 이를 닦는다. 위, 아래, 뒤, 앞. 물로 입을 헹군다. 싱크대에 물을 뱉는다….”
낯설지 않은 일상이 영어로 펼쳐지니, 입으로 소리를 내는 게 덜 두려웠다. 매주 한 편씩 낭독을 연습하고 녹음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만나고 있었다. 혼자서만 버텨온 공부가, 처음으로 ‘함께’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교재 한 권을 완주했을 때, 발음도 조금 또렷해졌고 마음은 훨씬 단단해졌다. 외우지 않아도 되는 낭독이 오히려 꾸준함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회화’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정공법을 택했다.
‘외워지지도 않는 회화보다, 기초 문법부터 제대로 하자.’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Basic Grammar in Use》였다. 처음으로 인강을 들으며 공부했다. 일정 기간 안에 수강을 마치면 수강료를 돌려주는 제도 덕분에, 이번엔 정말 끝까지 해보자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초반 몇 강의부터 충격을 받았다. 주어, 동사, 목적어의 자리, be동사와 일반동사의 차이, 3인칭 단수 같은 기초 개념들— 모두 중학교 때 배웠던 내용인데, 내 머릿속엔 희미할 뿐이었다.
“이걸 이렇게 쓰는 거였어?”
매 강의마다 잊고 있던 퍼즐 조각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문장을 ‘감’으로 외우던 이유도 그제야 알았다. 나는 몰랐기 때문에 외울 수 없었던 거였다. 화면 속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마음속에서 자꾸 같은 말이 떠올랐다.
‘지름길은 없구나.’
혼자서 헤매던 시간보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훨씬 빨랐다.
진짜 전문가는 빙빙 돌지 않고, 조용히 길을 밝혀주는 사람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이런 도움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더 단단한 기초 위에서 공부를 쌓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어쩌면, 너무 어려워 초반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안다. 모든 배움엔 ‘때’가 있다는 걸. 준비되지 않은 순간엔 아무리 좋은 조언도 스쳐 지나가지만, 간절한 마음 위에 닿는 한마디는 방향이 된다.
‘혼자보다 함께’의 즐거움을 알게 되자, 한 번 더 용기를 냈다.
이번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아닌, 실제 사람들과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맘카페에서 ‘영어 스터디’ 모집 글을 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참여하게 되었다. 엄마표 영어를 해보려 한다는 점이 닮아 있었다. 매주 수요일 오전, 커피 향이 퍼지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네댓 명의 엄마들은 영어책을 읽고, 아이 이야기를 나누고, 사는 얘기를 했다. 발음 연습, 문법 공부, 낭독으로 모두의 영어가 조금씩 늘어갔고, 무엇보다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점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힘을 보탰다. 배우는 기쁨과 연결의 위로가, 그 자리에 동시에 있었다.
사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오래 이어지는 모임이 버겁고, 내 이야기를 꺼내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임에서는 힘이 들지 않았다. 편안함과 따뜻함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스터디와 수다는 1년 반쯤 이어졌다가 각자가 일상으로 돌아가며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좋은 인연은 언젠가 다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공부는 나를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내보내고 있었다.
몇 년간의 영어 공부 끝에 분명해진 것이 있다.
반복과 꾸준함의 힘. 그 단순한 진리를, 나는 이제야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세상엔 생각보다 친절한 사람이 많다. 덕분에 나는 혼자서도 외롭지 않았다.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벌써 지치고 멈춰섰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
아이가 걸어갈 길목에서, 단 한 발 앞서 기다리며 손을 잡아주기 위해 오늘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