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와인 라벨에 속은 포도주스

제5부. [소비] 믿음의 배신, 절약의 굴레

by Napolia

​23. 와인 라벨에 속은 포도주스


​백화점 와인 코너, 혹은 분위기 좋은 와인 바.
진열대에는 수백 병의 와인이 보석처럼 놓여 있다. 그중 유독 화려한 라벨이 눈에 띈다. 금박이 입혀져 있고, 필기체로 우아하게 적힌 프랑스어. 'Château...'
​직원이 다가와 속삭인다.
"이거 한정판으로 들어온 겁니다. 프랑스 귀족들이 즐겨 마시던 건데, 이번에 특별가로 나왔어요. 선물용으로 딱이죠."
​가격표엔 15만 원이 적혀 있다가 빨간 줄이 그어지고 '5만 원'이라 써 있다. 무려 70% 할인. 사람들은 생각한다. '15만 원짜리 고급 와인을 5만 원에 득템 했다'고.
​코르크를 따고 잔에 따른다. 붉은 액체가 찰랑거린다. 한 모금 마신다. 달콤하다.
"음, 역시 비싼 건 다르네. 향이 깊어."
사람들은 와인의 맛을 음미하는 게 아니라,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할인받은 가격'을 음미한다.
​하지만 그 와인의 라벨 뒤편, 작은 글씨로 적힌 성분표를 들여다본 적 있는가.
원산지는 제3국, 포도 품종은 잡종, 거기에 액상과당과 오크 향 합성 착향료가 섞여 있다. 유럽 현지에서는 2유로, 우리 돈으로 3천 원도 안 되는 저가 테이블 와인이다.
​수입업자는 그 싸구려 와인에 그럴듯한 라벨만 새로 붙여 '기획 상품'으로 둔갑시켰다. 'Château(성)'라는 이름은 아무나 붙일 수 있는 마케팅 용어일 뿐이었다.
​우리가 마신 건 '신의 물방울'이 아니라, 알코올 섞인 포도주스였다.
화려한 금박 라벨(가짜)에 현혹되어, 혀끝에 닿는 밍밍한 맛(진짜)조차 "내가 와인을 몰라서 그래"라며 스스로를 속이는 호갱들의 밤.
​빈 병들이 쌓여간다. 취기는 오르지만, 그 취기는 와인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허영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한마디]

"우리는 와인을 마신 걸까요, 분위기에 취한 척하고 싶었던 걸까요?"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