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소비] 믿음의 배신, 절약의 굴레
백화점 와인 코너, 혹은 분위기 좋은 와인 바.
진열대에는 수백 병의 와인이 보석처럼 놓여 있다. 그중 유독 화려한 라벨이 눈에 띈다. 금박이 입혀져 있고, 필기체로 우아하게 적힌 프랑스어. 'Château...'
직원이 다가와 속삭인다.
"이거 한정판으로 들어온 겁니다. 프랑스 귀족들이 즐겨 마시던 건데, 이번에 특별가로 나왔어요. 선물용으로 딱이죠."
가격표엔 15만 원이 적혀 있다가 빨간 줄이 그어지고 '5만 원'이라 써 있다. 무려 70% 할인. 사람들은 생각한다. '15만 원짜리 고급 와인을 5만 원에 득템 했다'고.
코르크를 따고 잔에 따른다. 붉은 액체가 찰랑거린다. 한 모금 마신다. 달콤하다.
"음, 역시 비싼 건 다르네. 향이 깊어."
사람들은 와인의 맛을 음미하는 게 아니라,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할인받은 가격'을 음미한다.
하지만 그 와인의 라벨 뒤편, 작은 글씨로 적힌 성분표를 들여다본 적 있는가.
원산지는 제3국, 포도 품종은 잡종, 거기에 액상과당과 오크 향 합성 착향료가 섞여 있다. 유럽 현지에서는 2유로, 우리 돈으로 3천 원도 안 되는 저가 테이블 와인이다.
수입업자는 그 싸구려 와인에 그럴듯한 라벨만 새로 붙여 '기획 상품'으로 둔갑시켰다. 'Château(성)'라는 이름은 아무나 붙일 수 있는 마케팅 용어일 뿐이었다.
우리가 마신 건 '신의 물방울'이 아니라, 알코올 섞인 포도주스였다.
화려한 금박 라벨(가짜)에 현혹되어, 혀끝에 닿는 밍밍한 맛(진짜)조차 "내가 와인을 몰라서 그래"라며 스스로를 속이는 호갱들의 밤.
빈 병들이 쌓여간다. 취기는 오르지만, 그 취기는 와인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허영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와인을 마신 걸까요, 분위기에 취한 척하고 싶었던 걸까요?"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