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국산' 팻말을 단 중국산 김치

제5부. [소비] 믿음의 배신, 절약의 굴레

by Napolia

22. '국산' 팻말을 단 중국산 김치


​전통시장 입구, 인심 좋아 보이는 할머니가 좌판을 깔고 김치를 판다.
빨간 고무 대야 가득 먹음직스러운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가 쌓여 있다. 그 옆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팻말이 꽂혀 있다.
[직접 농사지은 배추, 태양초 고춧가루, 시골 손맛]
​지나가던 주부들이 발길을 멈춘다.
"어머, 때깔 좀 봐. 역시 시장이 믿을만해. 마트 김치는 영 찝찝해서 못 먹겠더라고."
할머니는 흙 묻은 거친 손으로 김치를 찢어 입에 넣어준다.
"잡숴봐. 우리 손주들 먹인다는 생각으로 담갔어."
​매콤하고 짭짤한 그 맛. 사람들은 그 투박함을 믿는다. "엄마 손맛이야"라며 지갑을 연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김치는 묵직하다.
​하지만 장사가 끝나고 셔터가 내려간 늦은 밤. 가게 안의 풍경은 반전 드라마가 된다.
할머니는 가게 구석에서 박스를 뜯는다. 박스 겉면에는 한자가 가득 적혀 있다. [MADE IN CHINA]. 중국산 김치 박스다.
​그녀는 박스 안의 김치를 커다란 대야에 쏟아붓는다. 그리고 국산 마늘과 파를 조금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살짝 덧뿌려 다시 버무린다. 순식간에 물 건너온 공장 김치가 '시골 할머니표 수제 김치'로 둔갑한다.
​소비자가 느꼈던 그 '구수한 고향의 맛'은 사실 MSG와 사카린의 배합 기술이었다. 흙 묻은 손을 보여주며 팔았던 그 정겨움(가짜)이, 가족에게 좋은 것만 먹이려던 주부의 마음(진짜)을 배신했다.
​식탁 위에 오른 김치. 아이들이 "맛있다"며 먹는다. 엄마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믿음이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식탁. 우리가 먹은 것은 김치가 아니라, 할머니의 연기력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손맛이라더니, 박스 뜯는 손맛이었을 줄이야..."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