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소비] 믿음의 배신, 절약의 굴레
전통시장 입구, 인심 좋아 보이는 할머니가 좌판을 깔고 김치를 판다.
빨간 고무 대야 가득 먹음직스러운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가 쌓여 있다. 그 옆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팻말이 꽂혀 있다.
[직접 농사지은 배추, 태양초 고춧가루, 시골 손맛]
지나가던 주부들이 발길을 멈춘다.
"어머, 때깔 좀 봐. 역시 시장이 믿을만해. 마트 김치는 영 찝찝해서 못 먹겠더라고."
할머니는 흙 묻은 거친 손으로 김치를 찢어 입에 넣어준다.
"잡숴봐. 우리 손주들 먹인다는 생각으로 담갔어."
매콤하고 짭짤한 그 맛. 사람들은 그 투박함을 믿는다. "엄마 손맛이야"라며 지갑을 연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김치는 묵직하다.
하지만 장사가 끝나고 셔터가 내려간 늦은 밤. 가게 안의 풍경은 반전 드라마가 된다.
할머니는 가게 구석에서 박스를 뜯는다. 박스 겉면에는 한자가 가득 적혀 있다. [MADE IN CHINA]. 중국산 김치 박스다.
그녀는 박스 안의 김치를 커다란 대야에 쏟아붓는다. 그리고 국산 마늘과 파를 조금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살짝 덧뿌려 다시 버무린다. 순식간에 물 건너온 공장 김치가 '시골 할머니표 수제 김치'로 둔갑한다.
소비자가 느꼈던 그 '구수한 고향의 맛'은 사실 MSG와 사카린의 배합 기술이었다. 흙 묻은 손을 보여주며 팔았던 그 정겨움(가짜)이, 가족에게 좋은 것만 먹이려던 주부의 마음(진짜)을 배신했다.
식탁 위에 오른 김치. 아이들이 "맛있다"며 먹는다. 엄마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믿음이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식탁. 우리가 먹은 것은 김치가 아니라, 할머니의 연기력이었다.
"손맛이라더니, 박스 뜯는 손맛이었을 줄이야..."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