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의 고백

by 빈칸센

가을이었을 겁니다, 나의 어머니가 입원을 하신 건. 왼쪽 머리가 찡하니 아프다셨습니다. 그녀가 병원에 갈 정도라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어지간한 몸살과 감기는 참아내는 사람, 투사 같던 나의 어머니였기에. 하지만 전화기에 손이 가지 않았어요. 업무 시간이란 핑계가 필요했어요. 잠깐이라도 미루려 했습니다.


퇴근 후,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지지 않도록 대수롭지 않은 척 대화를 열었습니다. 할머니와 통화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어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능청스럽게 말하던 모습을 빼다 박았더라구요. “많이 아팠냐, 의사는 뭐라더냐, 별일 아닐 거다” 형식적인 문답이 오고 갔고 다행히 큰일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뒤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나의 어미가 건강하다는 소식이 이리도 반가울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안도할 수 있음에 감사한 사람이 되다니, 이런 게 어른인가 흘러버린 세월을 새삼 느끼며 통화를 마무리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뱉지 못한 말이 있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후 나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요. 집 안 가득한 옷들과 신발, 핸드폰과 노트북 각종 전자기기들 위로 압류 딱지가 붙여진 기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아직도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일명 ‘엄카’로 식비를 해결하고 있으며, 부모님의 경제력이 아니었다면 서울에서 편하게 살 수 없었을 겁니다. 예매해둔 숱한 공연들과 책, 음반들은 분명 그들이 제게 준 몫임이 분명하거든요. 나아가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정말 심각한 병이라면 꿈꿔왔던 서울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건가? 그토록 싫어했던 부모님의 공장에서 평생을 썩어야 하나. 매캐한 먼지와 매일이 똑같은 삶, 변주라곤 볼 수 없었고, 너무나 벗어 나고 싶던 공장의 삶을 물려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자식은 포기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고 못난 자신이 정말 미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낳고 길러준 어미가 아픈 상황에서도, 고작 이런 것들이 먼저 떠오르다니..


작은 헤프닝으로 끝난 입원이지만, 저와 가족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앞으로 병원 신세는 더 잦아질 거고 무거운 선택과 감정을 받아 들여야만 하는 날이 오겠지요. 예고편만 봐도 나 자신이 미워지는데, 언젠가의 그날이 오면 그때는, 그때는 어떻게 될까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민낯을, 이기적인 속살을 드러내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이기심으로 바라건데, 부디 나의 가족에게 큰 아픔이 찾아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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