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만은 절대 안 돼!

오늘 같은 날

by 나탈리

기상 알람이 변함없이 울려댄다. 잠시만 더 눈을 붙여야지, 뭉그적뭉그적거리다 삼십 분이 훌쩍 도망가버린다. 삼십 분이면 밥하고 찌개 끓이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인데, 아깝지만 삼십 내지 한 시간 정도는 가수면 상태로 흘려보내는 상황이 날마다 이렇듯 반복된다. 눈을 뜨자마자 바로 이불을 제치고 일어나는 '깔끔한 기상'은 내게 단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후회, 반성, 다짐은 저만치 잠재워 놓고 부엌으로 갓!


살금살금, 조심조심, 모든 걸 조심하면서(아래층에 불면증이 있는 이웃이 살아요), 밥을 안치고 냉장고를 뒤적거려 야채를 끄집어낸다. 다듬고 씻고 썰고(칼질할 때가 제일 조심스럽다) 끓이고 하다 보면 또 금세 한 시간이다. 아아, 아침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 걸까. 아인쉬타인 님, 제게 납득 좀 시켜 주세요......


부스럭거리는 소리. 아이가 일어났나 보다. 시계를 흘끔거리며 식탁을 닦는다. 가능한 한 예쁘게 반찬 세팅을 한다. 조그만 접시를 이용하여 아기자기하게 담아낸다. 미식가 딸내미가 아침마다 사진을 찍는데 협조도 할 겸, 가뜩이나 입맛 없는 아침, 눈이 즐거워야 젓가락도 바삐 움직일 것 같아 오방색(五方色)까지는 아니어도 삼방색 정도는 들어가게끔 신경을 쓴다.


식탁 한 켠, 의자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앉아 밥을 쑤셔 넣는 수준으로 몇 술 뜨고, 출근 준비를 하는 사이, 도란도란 딸내미들 얘기소리, 수저 오가는 소리. 아침을 여는 상큼 발랄한 소리임에 틀림없건만..... 아그들아, 엄마 바쁘다. 부지런히 빨리 꼭꼭 먹어라. 좀 전에 버려진 시간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바쁘진 않을 텐데. 저만치 밀쳐 둔 후회가 또 고개를 들려고 한다.


'빈 그릇은 담가 놓고 반찬통은 냉장고에 넣어 줘.'

어쩔 수 없이 설거지는 저녁으로 미뤄야겠다. 아이들도 출근해야 하기에 식탁 뒷수습이 그다지 깔끔하지 않아도 탓하기는 그렇다. 남은 음식 접시가 뚜껑도 없이 냉장고 안에서 말라가고 있어도 어쩌랴.


음식 쓰레기와 분리수거 비닐을 들고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피난 가는 것도 아닌데 짐이 이래저래 많다. 일용한 양식을 위해 안락함을 잠시 떠나는, 피난(避難) 아닌 피안(避安)을 가는 건가....... 어쨌거나 쓰레기 버리는 시간도 아까운 출근 시간, 분리수거는 아무리 날래게 해도 제법 시간을 축가게 만든다.


'가만, 내가 가스 잠갔던가? 현관문은 잘 닫고 나왔나?'

의심이 들불 번지듯이 달려들어 바빠 숨 쉴 겨를도 없는 이를 에워싸고 만다. 아이들에게 카톡을 하니 아무런 대답이 없어 전화를 한다. 한참 만에 받아,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출발한다.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다. 지각은 안 돼, 절대 안 돼. 차라리 버스를 탈 걸 그랬나. 아니야, 걸어가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에 차라리 페달을 열나게 밟는 게 낫지. 오늘따라 신호는 왜 이리 잘 걸리는 거야. 두근두근 빨라지는 심장박동.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들릴 만큼 또렷하다. 사거리 신호는 굼벵이가 따로 없고 마음만 천리마 고삐를 움켜쥔 기수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승객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전진한다. 아침이 주는 부담감 탓인가, 엔진소리가 왠지 힘겨워 보인다.


버스를 따라잡을 기세로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도로에 진입하고는 더욱 속도를 높인다. 시간이 빠듯한 날은 화원의 꽃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향기만 마스크 근처를 스쳐 지나갈 뿐. 도로가에는 화원이 참 많다. 봄, 여름, 가을이면 화원 앞도 모자라 인도까지 진열해 놓은 화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좁은 틈새를 따라 화초가 다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며 지나갈 적마다 은은한 향기는 덤이요, 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배추나 상추모종부터 이름도 모를 온갖 꽃들이 발길을 잡아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오늘같이 여유가 없는 날은, 감상은 퇴근 후로 미루고 오로지 출근, 출근이다. 몇몇 자전거출근족을 기를 쓰고 앞지른다. 세상에,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다.

'저 좀 먼저 가겠습니다. 오늘 아침 뭉그적거리다 30분을 허비했더니 시간이 빠듯해서요..... 이해해 주실 거죠?'


ㅇㅇㅇ대원! 지각만은 안 돼, 절대 안 돼!


오늘 같은 날, 마음속 교관의 무서운 채찍질을 물리칠 재간이, 도저히, 없다. 오늘 같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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