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말들이 참 많다. 대개는 별 소득 없는 자잘한 '험담거리'지만 그것을 넘는 수준의 '거리'도 있다. 보통에서 튀는 사람은 입방아에 오르기 십상이며 잘만 하면 공공의 적으로 등극(?)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공공의 적에 등극하는 일은 자칫 직장생활에 치명타가 되기도 한다.
J가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같은 회사의 모 과장을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는데(모 과장도 J도 가정이 있는 사람들), 처음엔 그저 말뿐이거니 했으나 갈수록 J의 사랑(?)은 열렬해져 갔다. 신입이 들어오면 무조건 공표부터 했다. 모 과장님은 내 거니까 손대지 말라고.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녀는 진심이었고 그 마음을 우리에게도 숨기려 들지 않았다. 급기야 어느 후미진 골목에서 문제의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목격한 동료까지 생겨났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본인만 모르고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평소 말을 함부로 내뱉곤 하여서 원성이 자자한 그녀에게 그런 증언까지 돌고 보니 분위기는 심각해져 갔다. 두셋만 모이면 그녀에게 절대 불리한 말들이 오갔다.
J와 일하기 싫어. 우리에게는 매번 함부로 툭툭거리면서 모 과장만 오면 콧소리로 아양 떨어대고. 정말 꼴불견이야. 일하러 왔으면 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연애하러 출근했나?
가정 경제에 도움을 주는 정숙한 주부이자 직장인이라는 프레임을 자랑스러이 여기는 우리였다. 일탈행위는 용납이 안 되었다. 용서를 할 수도 없었다. 사내연애를 저들이 하고 있다. 뭐가 문제냐고? 유부남 유부녀다, 둘 다. 괘씸하다. 거기에 숨기려 들지도 않는 뻔뻔함은 더 싫었다. 천인공노할 짓을, 사생활일 뿐이라고 너그러이 봐주기엔 정의감이 너무 힘이 셌다.
누가 너희를 판관으로 삼았느냐,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풍속에 어긋난 일이 벌어지는데 모른 체하기가 좀 그랬다. 동료 모두가 애매한 것을 싫어했다. 의사표현을 분명히 하기를 바랐다. 만약
내가 가만있으면 그들을 옹호하는 입장이 되어 온갖 뭇매를 견뎌야 했다.
다혈질인 한 언니가 임원에게 고발을 했다. 회사에서 무슨 조치든 취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총대를 멘 거였다. 경고든 경위서든 무슨 조치가 떨어지면 그들도 마음을 고쳐먹고 일에만 몰두하겠지.....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회사는 이렇다 할 처리를 보여주지 않고, 직속 상관도 나 몰라라, 서열 2위의 임원도 나 몰라라였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단체 행동에 나섰다. 다음날부터 출근하는 대신 한 동료의 집에 모였다. 쟁의는 새로운 세계였다. 걱정, 불안, 초조, 두려움과, 결과가 어떨까 하는 호기심 약간, 잘 되었으면 싶은 희망까지 뒤섞인 묘한 감정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시시각각 마음을 옥죄려 들었다. 엄마 소릴 듣는 60 다 된 언니부터 젖먹이 아이를 업고 온 새댁까지, 15명이 동참했다. 출근 시간이 지나자 회사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할 말만 간단명료하게 하고 끊었다.
부정한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으니 해결되면 연락 주세요.
'흐음, 내게도 이런 결단력이 있을 줄이야. 뭉치면 용감해지는 것인가......'
중국집에서 점심을 시켜 먹고(그날, 중국집 수지맞았다!) 일자리 검색으로,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다 시간에 맞춰 퇴근했다. 직장에 있어야 할 시간을 가정집에 모여 떠들다 보니 마음이 참 착잡하고 이상했다. 둘째 날도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고, 드디어 3일째 되던 날 사장님께서 연락을 해 왔다. 어느 장소로 모두 나오라는. 첫날의 기개는 어디 가고 결사 항전 의지가 점차 퇴색해져 가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한 잔의 폭탄주가 모두에게 할당되도록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에 장착(?)한 채 폭탄주를 제조하여 건네는 사장님의 모습.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우리들. 사장님의 부글거리는 심정을 대변해 주듯 테이블 가운데서 뼈다귀감자탕이 보글보글 끓어댔다. 드디어 모두 앞에 사장님께서 손수 제조하신 폭탄주가 놓이고 잔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죄인들. 마치 눈싸움 경연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지은 죄 때문에도 안 마시고는 못 견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콩알만큼 졸아든 심장이 벌렁벌렁 존재감을 과시해대는데 다들 술잔을 들으랍신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거부하지 못하고 잔을 들어야 했다.
똥을 치워드리겠습니다.
한 잔씩을 비운 죄인들에게 사장님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드디어 우리가 이겼다. 만세! '
승리의 종소리가 호흡에 묻어 가만가만 새어 나왔다.
그런데, 승리감에 도취될 틈도 없이 빈 속에 들이부어진 알코올이, 쾌속으로 위장을 쥐락펴락 난리를 피우기 시작한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다. 늘어가는 심상찮은 표정들. 몇몇은 얼큰한 국물을 입가로 퍼 나르거나 물을 마시거나 해댄다.
그중에서 제일 야무진 A의 '똥을 언제 치워 주실 거냐'는 질문에 사장님은 속전속결을 약속하셨고, 우리 열다섯 명의 죄인들은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사장님의 명령을 따르겠노라고 머리를 연신 조아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새 직장을 구하지 않아도 되니. 장마철에 면접 보러 다니기도 번거로운 일일 테고.
'으쌰으쌰' 3일째였다. 결국 우리 뜻을 관철시켰지만 기분은 씁쓸했다. 승리의 기분이 이런 거라면 다시는 이런 승리감을 맛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을 거라는 게 솔직한 심경이랄까. 처음부터 전의라고는 손톱만치도 없었는데, 어찌어찌 분위기에 휘말려 예까지 와버렸다. 삼 일간 일도 못하여 일당도 날아가고 무엇보다 사장님께 폐만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 제일 컸다.
노조도 모르고 쟁의도 모르는 여인들이 으쌰 으쌰를 하다니. 지금 같아선 엄두도 못 낼일을 그 당시 해버렸다. 다들 우윳값을 보태거나 학원비를 벌기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당장 일자리를 잃을 수도,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그것이 우리들의 '선'이고 '법'이었다.
'으쌰 으쌰'는 그리 끝났다. 그 후로 회사에 그처럼 커다란 사건은 없었지만,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있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자잘한 불협화음은 늘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어디 사건사고가 없으랴만 언제 어디서나 말과 행동거지는 조심하고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