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는 시간들

자라나는 아이와의 생각 차이를 대하는 나의 자세

by 황하루



아이는 자라났다, 나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아이들은 정말 빠르게 자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아이를 관찰하면서도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영유아기 때의 아이는 신체가 빠르게 자라났다.

누워만 있는 신생아 때에도 자고 일어나면 커있는 것 같고,

전편에서도 언급했지만 한번 크게 앓고 나면 키든, 몸짓이든

무언가가 쑥 자라나 있었다.


그래서 그 시기의 나는 매일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아이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정말 열심히 순간을 포착했다.

특히 태어나서부터 만 3세 무렵까지의 내 핸드폰은 아이의 사진과 영상으로 꽉 들어차

매 달 정리해도 용량이 모자랐고 넘치는 사진들은 그 무엇 하나 버릴 수 없이 소중해서

유료 클라우드의 용량도 확대했다.


그러던 시기가 지나고 유치원 무렵이 되어선

아이가 신체적으로 빠르게 자라나는 것이 체감되지는 않았다.

아이의 얼굴도 어느 정도로 완성된 모양이고 움직임도 자유롭게 다 움직일 수 있고,

말도 곧잘 알아듣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 외관상 '자란다'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서툴렀던 것을 잘하게 되고,

특히 언어적 표현에서 '언제 저렇게 생각 깊은 말을 하지?'싶을 때

우리 아이가 또 자랐구나, 하는 생각에 신기하기도 했다.

이때의 아이는 정말 모방의 귀신으로 둘이서 대화를 할 땐 못 느꼈지만,

나가서 친구들과 놀 때 내가 했던 말투와 지시를 곧잘 따라 하곤 했다.



본격적으로 머리가 자라나는 시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정말 유치원 시기의 한 달 단위의 변화가 무색할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확 아이가 변했다.

미취학과 학령기의 아이는 정말 그 시기에 학교에 들어간 이유가 발달상 있는 것인지,

입학 후 한 달여 만에 아이는 '엄마 이거 하자- 엄마 이거 해줘-'에서

'내가 할게. 엄마는 내가 아직 어린애인 줄 알아(?!)'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어린애인 줄 아냐니. 아직도 한창 어린애이면서 말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사실 아이보다도 불안도가 높은 엄마인 나는 학교라는 곳에서 적응은 잘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새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는데

아이에겐 최대한 내색 안 하려고 노력했다.

'학교 선생님도 네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잘 도와주실 거야'

'학교는 유치원보다 더 많은 친구들도 있고, 모르던 새로운 것도 많이 배우고,

언니 오빠들이 제일 동생인 너희들을 예뻐해 줄 거야'

하며 생각해 낼 수 있는 학교의 모든 장점으로 아이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줬다.


다행히 나의 이런 방법도 먹히고,

내 걱정보다도 적응력이 높은 아이는 금세 학교에 적응했는데

처음 놀랐던 건 이것이었다.

우리 동네가 아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특히 저학년은 돌봄, 늘봄, 방과 후 등 하교시간이 제각각이라

지켜보니 오히려 등교시간보다 하교시간엔 1-2명 씩의 아이들이

각자 하교하는 것이 걱정되기도 하여

최소 한 학기 동안이라도 하교 때 마중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입학 후 한 달여 지나자 아이가 먼저 '이제 안 와도 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어보니 본인은 다 커서(??) 혼자 집에 돌아올 수 있다며 오지 말라고 했다.

일단 수락한 후 이후로도 하교시간에 몰래 아이 뒤를 밟아보니,

딴 길로 새지 않고 곧장 오기에 그 후엔 등하교 알리미로 하교 알림을 받으면

핸드폰 위치추적으로 집에 곧장 오는지만 확인하고 있다.

어릴 적 겁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간 자라며 자신감도 생기고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부쩍 스스로도 '컸다'라고 느끼는 것 같다.



놀이터의 독립,


아이가 혼자 등하교를 하면서 또 혼자 할 수 있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것이다.

당연히 미취학 시기에는 안전을 위하고, 친구들과의 갈등 중재를 위해서도

항상 따라나가 주었는데 어느 순간 아이와 같이 놀이터에 나가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이 늘었고 오히려 친구들, 언니, 오빠들과 어울릴 때는

아이들이 어른인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이후엔 간식정도만 챙겨서 아이를 핸드폰을 쥐어준 후 자유롭게 놀게 두었더니,

한 두 달도 안돼서 놀이터의 인싸가 되어버렸다.


내성적이고 잘 맞지 않는 엄마들의 모임을 꺼리던 나는

지금의 동네에서 산지 꽤 되었음에도 아이친구들의 엄마와는 잘 교류하지 않는다.

아이의 반친구들의 이름 정도만 알고, 유치원 하교 때 같이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놀았지만

연락처를 주고받거나 하진 않았기에 단편적인 관계뿐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놀이터에 진출하게 된 아이는,

자기가 노는 시간에 놀이터에 있는 모든 또래의 아이들을

자신의 놀이상대로 삼아 매우 적극적으로 놀았던 모양이다.

나와 같이 놀이터에서 놀 때는 아는 친구들 아니면 어울리려 하지 않았기에

이것은 나이가 커서인지 오히려 엄마가 없어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몇 달 사이에 아이는 나보다 동네에서 아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아쉬운 것은, 아이 또래의 저학년 친구들은 낮시간 돌봄이나 학원으로 가있는 바람에

놀이터에 친구들이 있는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무더운 여름이나,

지금처럼 춥고 해가 빨리 지는 겨울엔 놀이터가 텅 비어있어서

요즘의 아이는 집에서 심심하게 지내는 편이라

아이와 나는 어서 날이 풀리고 해가 길어져,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놀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놀이터의 독립.

친구들만 있다면 여름 무렵에는 해가 길어서 하루에 4시간도 놀이터에서 보내는 바람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매일 철봉 놀이를 한다고 손에 굳은살도 잔뜩 생겨 없어지지도 않았는데,

그러면서도 매일 즐겁다고 노는 모습이 아이를 7년 넘게 키운 내게도 참 생소하고

기특한 모습이었다.



생각의 독립이 진행 중이다,


요즘의 아이는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낼 때가 많다.


이전에는 뭘 해보자고 하면,

조금 내키지 않더라도 내 말이 그럴싸하고 나쁘지 않은 것 같으면

'그래, 알겠어'라고 하며 따라주었는데

요즘엔 뭘 해보자고 하면,

'내가 왜~ 싫어'라고 거절하는 때가 많다.


처음엔 내 설득이 이유가 부족한가 싶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긍정적인 이유와

아이를 혹하게 할 만한 당근들로 유혹해도 잘 먹히지 않는다.

어느새 아이는 또 자라서 자신만의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어린 시절, 어른들이 그랬듯 아이가 잘되라고 제시한 것들인데

아이가 거절하니 이것을 밀어붙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육아서적과 육아 전문가들의 영상들로 공부하고

생각해 본 후에 잠정적인 결정을 내렸다.

꼭 배워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니면 아이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물론 이런 결정을 해도 섭섭 쟁이이자 소심한 엄마는 미련이 남아있다.

하지만, 내가 밀어붙이고 싶은 것들은 대게 나의 불안에서 시작된

조급함으로 인해 밀어붙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배우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는 나조차,

영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무언가를 배운 경우엔 결과가 좋지 않았고

오히려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다시 배우고 싶어 져서

속도는 느리지만 천천히 배우는 요즘은 같은 '배움'이라도 즐겁게 익히고 있다.

그래서 아이가 배우기를 원하고, 내게 요청할 때 도움을 주는 정도로만 하기로

나의 욕심은 내려놓기로 했다.


나의 궁극적인 바람은,

아이가 본인이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찾고

살아가면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긍정적인 눈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기에.

괜한 나의 욕심으로 아이의 성장을 흔드려고 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매일 흔들리는 나의 마음은 꽁꽁 묻어둬야겠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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