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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아닐 줄 알았지...

by 김노난

‘XX야 XX야 대머리 깎아라~!’


어릴 적 친구들이랑 참 많이도 주고받았던 노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어떤 뜻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부르던 노래였다. 어떻게 대머리가 머리카락을 또 깎을 수 있을까? 그저 서로를 어떻게든 재미있게 놀리기 위해 목청을 힘껏 높여 부르던 노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철없이 노래를 부르던 내가 분명 기억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절대로 대머리가 되지 않을 것이란 기억이었다. 정말로 그 노래를 부르던 때 나는 절대로 내가 대머리, 혹은 탈모 같은 것으로 어떠한 고민도 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그리고 2024년 서른셋. 그 확신은 무참히 부서지고 말았다...


언제쯤이었을까? 삼 년 정도가 되었으려나? 나는 유달리 낮은 의자에 앉아 회사에서 꿍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를 지나가던 선배들은 잠시 후, 서로 잠시 쑥덕거리다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나를 불렀다.


‘노난씨, 어느새 정수리가 점점 비어가네. 탈모 아니야??’


탈모? 뭐 탈모?!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탈모라니, 상상도 한 적이 없던 것이었다.


“무슨 소리세요. 저희 집은 다 풍성해요. 지금 환갑이 넘은 우리 아버지도 풍성하시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영정사진도 보면 풍성하셨어요“


그렇다. 남성 탈모의 원인은 누가 뭐라 해도 유전이지 않은가? 할아버지도 풍성하시고 아버지도 풍성하신데, 그 피를 물려받은 나 역시 풍성하지 않겠는가? 때문에 이런 생각을 굳건히 가지고 있던 나는 그들의 말을 장난스러운 억지라 생각하며 넘겼다. 하지만 그들은 내 반응을 보며 매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계속 내 뒤를 지나갈 때마다 의혹을 제기하며 내 속을 천천히 긁어갔다.


그렇게 삼 년 뒤, 그들은 어느새 내 뒤에서 동영상을 찍으며 내 정수리를 찍어대기 바빴고, 나는 그들의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그들의 의심이 어느새 확신이 된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야 이거 나날이 비어가는데,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아버지랑 할아버지는 멀쩡하셨는데... 왜 내가...”

“노난씨 그게 모계유전도 무시할 수가 없대...”


아뿔싸... 하나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분명 우리 아버지 집안은 탈모와 거리가 먼 집안이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 집안... 대한민국 5대 명문가에 드는 그 집안의 남성들은 강력한 남성호르몬의 영향으로 모두 탈모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집안의 피 역시 물려받은 남자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목소리를 높이며 절대로 우리 아들은 탈모가 아닐 것이라 부정했다. 그리고 외삼촌들이 탈모인 이유는 유전이 아닌 힘든 현장일과 매일 쓰는 헬멧의 영향이라 역설했다.


그래! 설마 내가 탈모이지는 않을 거야. 혹여나 탈모의 마수가 나를 감싸도 우리 노씨 가문의 강한 피가 나를 꼭 지켜 줄 거야! 그렇게 나는 나의 정수리, 그리고 그것에 닥친 문제를 외면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내 베개를 점점 뒤덮고, 수챗구멍을 삼일에 한 번씩 막아댔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늘 내가 엿 먹기를 바라는 소중한 친구들. 자주 가는 미용실의 예쁘고 친절한 미용사 누나. 나쁜 말은 절대로 못 하는 착한 후배들이 점점 내 머리를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난 그들의 거짓 없는 반응을 바라보며 점점 불안감이 몰려왔다.


점점 가늘어지는 머리카락을 부여잡은 채, 나는 친한 친구 L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역시 넓어지는 이마를 부여잡고 나에게 자신의 걱정을 이야기했다. 그의 말을 듣는 나 역시 이를 공감하며 끓어오르는 슬픔을 겨우 억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대화가 마무리되며 L이 나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노난... 우리 병원 한 번 가보자’


정말 나는 아닐 줄 알았는데... 수 많은 지인들이 탈모로 고생할 때 나는 그들을 놀리며 나와는 다른 별나라 이야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과응보라고 했던가... 그들을 비웃은 벌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친구와 함께 탈모 전문 병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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