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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의 불편함

by 김노난

탈모의 불편함이라고 하면 뭐가 있을까? 여러 가지 단점들이 수두룩하겠지만, 첫 번째로 생각나는 것은 빠지는 머리카락을 주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매주 삼일 정도 주짓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매번 스파링 시간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매트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이다. 주짓수 스파링 특성상 바닥에서 격하게 몸을 스크램블하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는데, 이로 인해 머리 역시 바닥에서 쉽게 비벼지곤 한다. 탈모인들에게는 꽤 고역인 순간이다.


뜨겁게 스파링을 마치고 나면 바닥엔 가느다란 머리카락들이 패잔병처럼 힘없이 쓰러져 있다. 매번 관장님은 조용히 정전기 포를 두른 밀대를 가지고 와 바닥을 훔쳤고, 나는 민망함을 애써 감춘 채 다른 방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체육관뿐만 아니다. 매일 생활하는 집 안 곳곳에도 머리카락이 가득 널브러져 있다. 바닥 구석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모아보면 내 윗머리를 어느 정도 덮을 수 있는 양이다. 뭐가 그리 급해서 내 정수리에서 도망쳐 나온 녀석들을 볼 때면 금세 눈을 찔끔 감게 된다.


머리카락이 수없이 떨어지다 보니, 바닥청소를 하는 주기가 매번 짧아지고, 이에 따른 노동력이 은근하게 증가한다. 나 같은 독거직장인에게 청소란 상당히 귀찮은 일상 중 하나이지만, 이러한 귀차니즘마저 뭉게 버릴 만큼 녀석들의 존재감은 상당히 무거웠다.


이렇듯 탈모를 겪으며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의식하다 보니, 온 신경이 머리카락으로 향한다는 것이 또 다른 불편함이 된다. 나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후, 매번 휴대폰으로 윗머리를 촬영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카메라로 머리를 촬영한다고 해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습관적으로 윗머리를 찍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씻거나 직장에서 화장실을 갈 때도 사진을 무의식적으로 찍고, 이를 보며 마른 숨을 내뱉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이렇듯 루틴이 되어버린 촬영으로 인해 내 일상의 집중력이 많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매번 불필요한 사진을 찍으며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고, 이로 인해 일상과 업무에 써야 할 집중력이 많이 사라지곤 했다. 휴대폰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무의식적으로 사진첩 어플을 켜 내 하이얀 정수리 사진들을 보면 내 머릿속에 찝찝한 찌꺼기들이 들어차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이런 습관이 내 생활에 큰 지장을 주고 있단 걸 인지하게 되니 개선의 필요성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때문에 나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머리카락을 촬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정착해 버린 습관을 떨쳐내기 꽤 어려웠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집중했다.

이렇듯 노력으로도 떨쳐낼 수 있는 단점도 있지만, 개인적 습관이 아닌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불편함은 꽤 떨쳐내기 힘든 편이다. 특히 탈모의 가장 큰 단점이 사회적 시선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과 이로 인한 자신감 결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탈모’라는 단어만 검색하면 타코야키, 주꾸미 같은 온갖 놀림거리들이 한가득 튀어나온다. 몇 년 전만 해도 나 역시 탈모인들을 놀리기 바빴던 인터넷 개구쟁이였다. 하지만 ‘인과응보’ 당한 지금은 과거의 과오를 생각하며 끝없는 회한을 느낀다.


또한 회사 책상에 앉아있을 땐, 내 뒤로 누군가 지나가기만 해도 묘하게 위축되곤 한다. 특히 나는 업무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자리에 있다. 때문에 탈모 초창기에는 사람들이 올 때면 괜히 뒤통수를 긁는 척 정수리를 가리곤 했다. 물론 대다수의 직장 동료들은 내 뒤통수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괜한 부끄러움에 이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또한 소개팅이라던지 이성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예전과 달리 자신감이 떨어졌다. 살면서 내 외모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탈모를 인지하고부터는 이성과의 첫 만남 등에서 괜히 움츠리고 소심해지곤 했다. 이렇듯 탈모로 인해 사회적인 자신감이 상당히 떨어진 것이 개인적으로 큰 불편함으로 느껴지고 있다.


위의 예시뿐만 아니라 탈모는 당사자의 삶에 다양한 불편함을 일으킨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예상치 못한 관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한 가닥에 당 0.2~6mg 밖에 안 되는 가벼운 존재들의 부재가 어떤 이에게는 가장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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