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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by 김노난

“야 너 약값 얼마라고 했지?”

“나도 병원 가야 하나?”


추석 연휴. 고향에서 오랜만에 카페에서 만난 친구들은 반갑게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게 아닌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노난 정수리 봐봐. 조명 때문인가? 엄청 심각해 보이네”


은근히 사람 속을 잘 긁는 ‘민’이 얄밉게 웃으며 나를 놀렸다. 나는 가운뎃손가락을 들며 응수했지만, 그의 풍성한 정수리를 보며 패배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짧아지는 앞머리가 인상적인 ‘황’이 찡그린 표정을 지은 채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후우... 나도 팀장 XX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진다 빠져”


우리 중 가장 먼 지역에서 직장생활 중인 황은 얇아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난 그의 힘없는 머리카락을 보며 ‘그래도 굵기는 내가 낫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미안함과 한심함을 느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하자. 다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마라. 탈모만 있으면 다행이지. 난 머리 어깨 무릎 발 안 아픈 데가 없다”


우리 중 가장 앓는 소리가 심한 L이 한숨을 쉬며 커피를 들이켰다. 그는 디카페인 커피임에도 괜히 속이 쓰린 듯 가슴을 부여잡았다. 나날이 심해지는 L의 엄살이 이제 점점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네 남자의 대화는 그저 신세 한탄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을 유심히 바라보던 민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아 코인 또 떨어졌네”


아까 전까지 남은 탈모인들의 속을 긁던 민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자 나머지 친구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야! 너는 머리카락이 안 빠지고 다른 게 빠지는구나”

“역시 우리 민이가 의리가 있어 어우! 속이 뻥 뚫린다”

“다 닥쳐 XX들아”


민의 얼굴이 점점 울그락 붉그락 해지며 우리에게 큰 웃음을 계속 선사했다. 그렇게 잠시 분위기를 환기시켰지만 다시 L이 찬물을 끼얹었다.


“휴 지금 여자친구랑 결혼도 해야 하는데, 집도 고민이고 애도 고민이고... 뭐 이리 신경 쓸게 많냐”


그러자 황이 같이 한숨을 쉬며 받아쳤다.


“일단 여자친구가 있다는 거에 감사하면 안 될까? 나는 지금 사는 곳에서 여친을 만들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에이 걱정 마라. 네가 민이도 아니고... 곧 좋은 사람 만나겠지”

“또라이냐! 갑자기 내 이야기가 왜 나오는데!”


대화는 또다시 맥락 없이 상호 간의 비난으로 이어졌다. 동갑내기 남자들의 대화가 으레 그렇듯이 영양가 없는 그저 그런 대화였다.


저녁과 커피를 마친 후, 간단히 소주를 한잔씩 기울였다. 하지만 다들 예전같이 빠른 템포로 술잔을 기울이진 못했다. 술자리 이야기 역시 예전처럼 여자 이야기, 게임 이야기가 아닌 부동산, 주식, 결혼 그리고 탈모 이야기였다. 만약 대화에도 냄새가 있다면 딱 고깃집에서 회식을 마친 후, 식후 땡으로 에쎄 담배를 피우는 배 나온 남자 직장인의 와이셔츠 냄새일 것이다.


“어 ‘함’ 전화 왔네. 영통 걸어보자”


격무로 고향에 자주 내려오지 못하는 또 다른 친구 ‘함’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우리는 나름 반갑게 손을 흔들며 화면 속 그를 맞이했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함은 껄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와 너네 진짜 아저씨 같다. 중년 그 자체네 진짜!”

“누가 누구보고 아저씨래!”

“노난은 머리카락 잘 지키고 있고?”

“후우... 겨우 막고 있다!”


어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도 탈모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마치 ‘밥 먹었니?’ 정도의 인사말 같았다. 물론 인사를 받는 나는 참 떨떠름했다. 하지만 뭐 반박할 거리도 없었고, 계속 듣다 보니 이젠 그러려니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 다가왔다. 다들 살짝 취기가 올라온 상태였다. 황은 집에 들어가기 싫은 지 어릴 적 자주 가던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하지만 ‘아파메일’ L은 피곤함을 호소하며 집으로 먼저 떠났다. 그렇게 남은 셋은 노래방에서 맥주를 들이키며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채 1시간도 못되어 모두 체력이 방전되어 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래방 주인은 추석 대목을 핑계로 서비스 시간 인심이 야박했다. 때문에 조금 더 빠르게 노래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친구들이 길가로 나왔다. 황과 민은 담배를 입에 물고 한숨처럼 연기를 뻑뻑 내뱉었다 나는 손 사레로 연기를 걷어내며 말했다.


“어후 너네도 담배 좀 끊어라. 그러다 훅 간다”

“이거라도 펴야 살 것 같은데 어떻게 끊어”

“우리도 이제 서른셋이다. 조금은 건강하게 살아야지”

“머리로는 다 아는데... 쉽지가 않네... 뭐 언젠간 끊겠지”

“두타스테리드 먹는 너보다는 우리가 더 건강할지 몰라”


그렇게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나와 친구들은 서늘한 밤공기 같은 서른 세 살의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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