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한 탈모약 부작용은 1~2% 미만이에요. 그것도 복용을 중단하면 금방 사라지고요”
의사 선생님이 탈모약을 처방하며 말씀해주신 이야기다. 이후 나는 탈모약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온갖 호들갑을 떨어도 나는 그것이 그저 조회수에 목마른 어중이떠중이들의 발버둥이라 생각했다.
약의 효과는 나름 빠르게 적용되는 듯 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배게 밑을 소복하게 채우던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또한 꿀타래 실가닥 같이 힘없이 비틀대던 머리카락도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사실 그렇게 드라마틱한 차이는 없었던 것 같지만 약을 먹는다는 행위만으로 증상이 호전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약을 일주일 정도 먹으면서 조금씩 이상함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퇴근 후 운동하는 주짓수 체육관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더니, 가벼운 체력훈련만 해도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다른때보다 유난히 땀을 더 많이 흘린 나는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스파링 시간. 세상 여리여리한 15세 흰띠 여중생에게 테이크다운을 당한 후, 내 몸이 이상해지고 있는 듯한 생각이 점점 피어올랐다. 그리고 ‘부작용’ 이라는 단어가 스치듯 머릿속을 지났다.
‘설마 약... 때문인가? 아니야 1% 미만이라고 했잖아. 그정도면 로또를 사도...’
그래 살면서 즉석복권 ‘한번 더’ 도 당첨된 적 없는 나다. 1% 확률의 주인공이 ‘나’일리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자 어깨에 30kg 군장을 멘 듯 몸이 상당히 무거워졌다. 당장이라도 오전반차를 쓰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겨우겨우 출근채비를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러나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도 모니터 화면을 그저 바라만 볼 뿐, 눈꺼풀이 반쯤 감긴 채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어제 체육관에서 뭔가 무리를 했을까? 아니면 진짜 부작용일까? 아무리 몸이 둔해지는 겨울이라지만 몸이 예전보다 훨씬 경직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오전 내내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본 채 시간을 날렸고, 이후 주간업무 자료를 오전 내내 요청하던 팀장님의 호쾌한 일갈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유튜브에서 어그로를 끌기 위해 그렇게 조잘대던 ‘그 부작용’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늘 활기찼던 내 몸에서 어떠한 활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아름다운 이성을 보아도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 간 이런 상태가 이어지니 등줄기에 싸한 기운이 쌓이기 시작했다.
머릿 속에 사마천과 심영 아저씨가 잠시 떠올랐다. 안돼... 내가 그거라니... 이 부작용 만큼은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나는 관련 지식이 풍부한 친구들에게 좋은 조언들을 구했지만, 애석하게도 효과는 크게 없었다.오히려 정신적 피로감만 더 도드라졌다.
극악의 확률을 뛰어넘고 부작용을 맞이했다는 생각에 나는 휘몰아치는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약 복용을 잠시 중단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셀카로 머리 위를 찍을 때마다 얄팍해져 가는 정수리를 보며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고민은 며칠을 이어져갔다. 그 동안 나는 탈모 선배들의 여러 조언을 듣고, 인터넷 검색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여러 의견을 종합해 다시 한 번 버텨보기로 결정했다.
‘그래 약에 몸이 적응하는 과정일거야. 조금만 더 버텨보자’
여러 정보를 확인해보니, 약의 실제 부작용은 1% 미만이 맞지만, 약을 먹는 사람의 심리적 압박 때문에 부작용으로 알고 있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탈모 역시 멘탈게임이란 걸 알게 된 나는 마음을 다잡고 탈모약을 다시 내 몸으로 쏘옥 받아들였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마음을 다잡고 난 뒤, 이전의 증상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피곤함은 조금 가시고, 활력 역시 전성기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차차 회복되는 듯 했다. 그리고 약을 복용한 지 1년 정도가 되어가는 지금은 전혀 부작용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처럼 부작용 소동은 꽤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괜한 아찔함이 떠오른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해야 할 약이기에 오늘도 1% 확률을 경계하며 아무 일 없이 내 몸에 안착하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