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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

by 김노난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난 종이봉투에 두툼하게 들어간 약들을 꺼내보았다. 두타스테리드라고 적힌 약상자 세 통 그리고 미녹시딜이라는 바르는 약 한 통이었다. 나는 천천히 약상자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았다.

“하루에 한 번씩 먹으면 되는 건가?”


나는 유튜브에 내가 받은 약을 검색했다. 온갖 호들갑 가득한 썸네일이 내 머릿속에 괜한 걱정을 심어대기 바빴다. 특히 검색어 자동완성 기능으로 생성되는 ‘두타스테리드 부작용’이라는 검색어가 눈에 굉장히 거슬렸다.


유튜브에 나오는 의사인지 약사인지 모르겠는 사람들은 ‘성욕감퇴’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언급하며 내가 앞으로 먹을 약이 얼마나 강한 성분의 약인지 떠들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애써 영상을 다 시청하려 했다. 하지만 앙 다문 입으로 나오지 못한 한숨이 콧김처럼 뿜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겠냐. 비싼 돈 주고받아왔으니 얼른 먹어야지...”


그때부터 내 점심 식사 이후에는 두타스테리드 한 알이 함께하게 되었다. 약의 크기는 사람들의 호들갑과 달리 꽤 작고 앙증맞았다. 때문에 먹고 삼키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다만 회사에서 약을 먹을 땐 괜한 눈치가 보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약을 먹는 내 모습을 보며 까르르거릴 상상을 하니 부끄러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때문에 나는 탈모약을 먹을 때 먼저 책상에 있는 영양제를 먼저 찰랑찰랑 흔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먹는 척을 하며 같이 약를 먹었다. 그리고 뒷면 ‘남성형 탈모치료제’라고 똑똑히 쓰여있는 약 껍데기는 쓰레기통이 아닌 내 가방에 넣어 따로 버렸다.


그렇게 먹는 약은 그냥저냥 잘 먹었고, 나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외의 복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바르는 약 미녹시딜이었다. 액체 형태의 이 약은 머리에 직접 바르는 약이었다.


초점 없는 눈을 가진 대머리 일러스트가 인상적이다.

초토화된 정수리를 가진 대머리 아저씨에게 약을 바르는 일러스트부터 나에게 묘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쓸데없이 디테일한 투여 방법과 바르는 곳을 ‘환부’라고 지칭하는 그 무례한 세심함이 불필요한 분노를 끓어오르게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먹는 약은 그저 호르몬을 조절해 빠지는 것을 막아줄 뿐, 새 머리가 자라나게 하려면 이 약을 같이 써야 했다. 나는 빼앗긴 정수리에 봄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약을 바르기로 마음먹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바짝 말린 나는 약통에 약을 채운 뒤, ‘정량 캡’이라고 하는 왕관같이 생긴 스포이드를 약통 머리에 끼웠다. 그리고 약통을 살짝 움켜쥐니 정량 캡 안에 미녹시딜이 찰랑이며 차올랐다. 이후 나는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약통을 내 ‘환부’에 가져다 댄 후, 여자들이 얼굴에 쿠션을 찍듯 머리를 정량 캡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러자 약이 조금씩 내 ‘환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머리에 닿는 차가운 액체의 느낌이 참 어색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정량캡에 쌓인 약이 다 나올 수 있게 계속 톡톡 머리를 두드렸다. 머릿속에 ‘자라나라 머리머리’라는 문장이 맴돌았다. 이 상황에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그 문장이 웃기고 슬펐다.

하지만 처음 바르는 약이다 보니 내 환부에 약이 제대로 스며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거울을 보고 있었지만 머리 위다 보니 정확히 이것이 닿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난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를 켠 뒤, 손을 들어 내 머리를 비추게 했다.


그리고 살짝 눈을 치켜뜨니 머리 위에 있는 핸드폰 화면에 하얀 내 정수리가 잘 보였다. 그렇게 나는 두 손을 든 채, 오른손에 있는 핸드폰 화면을 힘겹게 바라보며 왼손으로 약을 발랐다. 하지만 거울 앞에 적나라하게 보이는 그 어정쩡한 모습을 보니 말 그대로 ‘현타’가 발생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속옷만 입은 채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자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 약을 많이 뿌렸던가... 정수리에 살짝 고여있던 약 한 방울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그것은 내 눈가를 절묘하게 지나 바닥으로 톡 떨어졌다.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마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 것 같았다.


“후우...XX”


그렇게 내 탈모약 첫 경험이 처량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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