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안 하니까 매출이 떨어진 거 아냐!
내가 다닌 스타트업의 유일한 장점은 '9시 출근'이 보장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9시까지 회사에 도착하면 된다'와 '9시에 바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미리 와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무튼 이 회사는 전자였다.
나는 첫 출근 날 30분 일찍 도착했었다. 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생각하며 한참을 기다렸다. 9시가 되기 10분 전에야 가장 먼저 출근한 타 부서장이, 나를 보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그냥 딱 9시 맞춰서 오면 돼요. 우리 회사는 안 그래요."
심지어 일부 상사는 자율출퇴근제에 가까웠다. 그 제도는 복리후생규정에 내후년에나 실시될 것으로 적혀있었고, 자꾸 얘기가 나오자 대표가 직접 '절대 불가'라고 못을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오전 늦게나 오후에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고 뻔뻔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는데, 감히 칼퇴를 해?"
본인들은 해가 중천에 떠서야 출근해 놓고, 겨우 한두 시간 늦게 퇴근한 걸 '열정'으로 포장했다. 심지어 매일 늦출늦퇴도 아니었다. 출근했다가도 자리를 비우거나, 정작 퇴근시간엔 자리에 없을 때가 훨씬 많았다. 외부 미팅을 간 것도 아니었으면서. "대체 컨펌도 안 해주고 어딜 간 거야?" 부하 직원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그러니까, 본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따지는 '절대적인 근무시간'으로 계산해도 우리가 더 많이 일했다. 우리는 일이 많으면 자발적 야근을 했지만, 그들은 오전 중에 결재되어야 할 일이 있어도, 오후 느지막하게 커피를 빨면서 출근했다. 회사에 있지 않아도, 항상 일 생각을 한다는 말을 지껄이면서.
1년에 한 번씩은 대표가 퇴근 시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주기가 찾아왔다. (물론 여느 스타트업 대표님들처럼 출근조차 잘 안 했다.) 전 분기 대비 실적이 감소했다는 것을 확인한 날이었다. 그러면 그날은 '강제 야근령'이 떨어졌다. 장급들을 불러놓고 생떼를 피우는 것이었다. "야근을 안 하니까 매출이 떨어진 거 아냐! 오늘 아무도 집에 보내지 마!" 그러면 그날은 전 직원이 밤 9시까지 회사에 감금되어야 했다.
실적이 떨어지는 걸 모르고 손 놓고 있던 건 경영자의 직무 유기 아닌가? 오늘 야근한다고 당장 성과가 나오나? 이 질문들을 꾹 눌러둔 채, 나는 직원을 돈 주고 부리는 사장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야근하는 직원이 더 가성비 좋아 보일 테니까. 그러나 내가 지켜보건대, 야근과 능력은 철저히 반비례했다.
정말로 일 잘하는 사람들은 칼퇴한다. 제시간에 업무를 분배하고, 끝내고, 마무리 짓는다. 바쁠 때는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매일 같이 야근하는 사람들은 업무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근무시간에 수시로 담배를 피우러 가고, 수다를 떠느라 일이 밀린 것뿐이었다. 아니면 그냥 일 처리하는 속도가 현저히 늦은, 폐급인 경우도 허다했다. 그들이 절대적인 업무량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안 해도 그만인 삽질이었다.
결국 회사가 원한 것은 '성과'가 아니었다. 한 건물을 이용하는 다른 회사 직원들이 안쓰럽게 묻던, 늦은 밤까지 사무실 불이 켜져 있는 번드르르한 '풍경'이었다. 정작 그 불빛 아래서 직원들의 열정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오직 보여주기식의 야근을 하는 무능력자만 남게 되는 줄도 모르고.
나는 내 신념과 정직성 때문에 억지 야근을 하지는 않았다. 이와 달리 대다수의 직원들은 전략적으로 행동했다. 평소에는 퇴근 10분 전 텀블러를 세척하고 6시가 땡 하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실장 이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할 일이 없는데도 앉아 야근을 했다.
KPI를 측정할 수 없는 한 부서는 야근을 실적으로 창조해 내기도 했다. 그들은 일부러 업무를 늦춰 야근을 하고 주말에는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출근을 했다. 그 부서장은 내게 꿀팁인 양 속삭였다. "우리 부서는 이렇게 해서 연봉을 많이 올렸어. 솔직히 다른 데서는 이 정도 못 받거든."
얌체 같은 족속들. 아니, 그건 이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 전략이었으리라.
야근을 능력이라고 믿는 상사들에게, 나는 눈엣가시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년을 살아남았다. 근속연수가 평균 2년도 채 되지 않는 이곳에서. 이유는 단순했다. 야근으로 충성심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숫자로 성과를 증명하는 능력은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내정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프리랜서처럼 고고하게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