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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킴 Jul 20. 2024

원래 잘 울어요.

눈물의 한국-영국 비행기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을 때 시차적응이 더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 영국에서 지내다가 한국에 가면 적응하는데 한참 걸린다.

이 마저도 이골이 났는지 올해 두 번 방문했던 한국에서는 예전처럼 시차적응이 몇 주씩 걸리지 않았다.


이직을 하며 생긴 여유를 활용한 12일의 한국 여행이 끝이 났다. 

내가 원래 한국에서 살았다면 너무 지루하고 답답해했을 시간이었을 거다.

이번에도 역시 시간은 내 뜻대로 잡히지 않았고 늘 그렇듯 공항, 비행기, 착륙, 기차의 순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기내에서 이번에 좀 특이한 경험을 했다.


나는 일찌감치 창가에 앉았고 내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리고 복도 쪽 자리에 어느 아저씨가 앉았다.

아저씨가 앉자마자 당연한 듯이 가운데 빈자리에 본인의 재킷을 내 자리 넘기 직전까지 정갈하게 놓고

가방과 신발을 가운데 좌석 밑에 두고 옆좌석의 베개를 발받침으로 사용하며 옆좌석의 테이블도 비행기가 뜨기 전부터, 아니 승객이 다 타기 전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가운데 손가락에는 커다란 불가리 반지, 피곤한 얼굴, 결벽증이 있는 듯한 손길. 기침을 할 때마다 감기인지 구취인지 특유의 냄새가 났다. 그 당당함에 '편하게 가시려 두 자리 예매한 건가' 싶었다. 한자리 떨어져 앉아도 신경이 쓰이는 아우라.

한 시간 반 지연이 됐고 이륙 후 첫 식사를 마치고 의자를 젖히고 한숨 잠에 들었다. 어느 순간 뒷자리에서 내 어깨를 톡톡. 돌아보니 핸드폰 스크린에 '안녕하세요. 뒤에 자리가 좁아서 그러는데 의자 조금만 당겨주시면 안 될까요? 양해 부탁드립니다ㅠㅠ' 14시간 비행시간에 어둡게 꺼진 조명. 나는 비행 중에 식사, 이/착륙시간이 아니면 내 의자의 각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손히 부탁하는 말투에 적당히 의자를 올렸다. 옆에 아저씨는 당당한 기침에 내 영역을 넘어올락 말락 하는 저 당당한 무례를 계속 시전. 영화를 보고 잠에 들려고 뒷자리에 "의자 좀 밀고 잠깐 잘게요"하고 잠에 들었다. 몇 시간 지났을까 잠결에 움직이는데 다시 뒤에서 톡톡.

이번엔 그 옆에 앉아있던 엄마였다. 나 때문에 자기 딸이 스크린을 가까이서 봐야 한다고.

그렇게 사소한 말다툼이 시작 됐다.

"아니, 불편한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 앞 사람도 의자 뒤로 밀고 있고 지금 한두 시간 비행도 아니고 장거린데, 이렇게 자라고 조명도 다 꺼진 상태에서 저를 깨우실 일은 아니잖아요, "

"제 딸은 안 자요. 계속 스크린 보고 있는데 코앞에서 봐야 되잖아요"

"아니 제가 자고 있었는데 저를 깨워서 저도 불편하다고요. 그렇게 정 불편하시면 저한테 부탁을 하실 일이지 화내실게 아니잖아요"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요"

이런 이야기의 반복.

의자를 조금 더 뒤로 많이 젖힌다고 해서 내가 훨씬 편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원하는 대로 해줬다.

몇 분 후 갑자기 억울하고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어져서 승무원을 찾아갔다.

나에게 벌어진 일을 설명하다 보니 승무원이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나고 말았다.ㅋㅋㅋ

내가 울어서 더 당황한 승무원

"제가 여려서 그래요. 걱정하지 마세요. 원래 잘 울어요. 그냥 혹시 남는 자리가 있으면 바꿀 수 있을까요?(엉엉)(나도 엄마 보고 싶어) 뒤에 사람이 의자를 계속 뒤로 젖히지 말라고 화를 내는데. 아시죠? 그런 사람들 화내면서 본인이 화 안 낸다고 잡아떼는 사람들이요"

"아 손님 그건 뒷 분이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식사 시간 제외하곤 얼마든지 본인 의자 젖히셔도 되고요. 뒤에 승객이 불편하면 뒤에 승객도 젖히면 되는 거예요. 제가 이것만 하고 가서 말씀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 승무원은 계속 주기적으로 내게 또 다른 시비는 없었는지 뒷사람 보이는 앞에서 일부러 더 챙겨주었다. 감사했고, 서비스 만족.


돌아보니 한국에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단 한 번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고 유독 남편과도 이 시기에 잘 다투곤 했었다. 특별한 사건이 없더라도 혼자 뭐 이리 속상한 지 4년을 살아도 매번 기내에서 울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편한테 미리 부탁을 해 뒀다. 나에게 예민하게 굴지 말 것. 그냥 내가 향수병이 유독 심한 시기이니 미친년이다 하고 그냥 일주일만 다 받아 줄 것. 남편은 열심히 그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처음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나 했는데 이런 작은 사건이 났다. 

참.. 되게 신경이 쓰이더라.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런 상황에 당당히 대처하지 못한 것 같고 무엇보다 나는 왜 그런 일에 울어대는지.. 자기 딸 지킨다고 착각하는 어머니 앞에서 나도 나 지켜주는 엄마가 더 보고 싶어 졌었다. 그냥 유독 혼자 된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래도 예전처럼 이곳이 낯설거나 척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꽤 살긴 살았나 보다.


그러고 남편을 기차역에서 만났다. 나를 이 주만에 보는데 또 그놈의 통화를 하며 마중 나와 있었다. 심지어 나에게 중요한 통화니 잠깐 해도 되냐더라. 그의 잠깐은 나의 긴 시간. 

"중요한 거면 이따가 하고 급한 거면 지금 해"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안부를 묻고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화도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아직 울음이 날랑 말랑 했지만 열심히 웃긴 에피소드로 미화해서 웃으며 박장대소하며.


그리고 다음날 아침 산책을 나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이틀 전 조카와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말을 안 들어서 

"저기 아저씨한테 말한다"라고 했더니 아기가 갑자기 겁을 먹고 조용해졌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엄마한테

나 : 엄마는 나 키우면서 되게 재밌었겠다. 나는 잘 울고 그런 거에 잘 속았잖아.

엄마 : 그렇지 애들 키우면 그런 순수한 거 보는 게 재밌지, 너 초등학교 때 그 노인 선생님이 너 엄청 혼냈어. 어디 가서 울지 좀 말라고ㅋㅋㅋ.

나 : 응. 기억나 그 선생님. 2학년 때 담임. 무서웠는데 그래도 애정이 느껴졌었지

엄마 : 그 선생님은 자기 학생들이 어디 가서 당하는 거 되게 싫어했어. 옆 반에 너 괴롭혔던 애 있었잖아. 그래서 그 선생님이 너 보고 왜 그런 애 가지고 우냐고 더 혼냈었지ㅋㅋㅋ 그럼 너는 더 울고 ㅋㅋ

나 : ㅋㅋㅋㅋㅋ


어제 기내에서 내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그 선생님이 봤으면 난 또 호되게 혼났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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