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고 싶은 시간
매 여름, 매 겨울마다 식구들과 갔던 강원도의 진가를 최근에야 알았다.
먼저, 먼 나라 외국인 남편을 데리고 강원도에 간 적이 있었는데, 아프리카, 이태리, 그리스, 영국, 태국보다 보여줄게 너무 다채로웠다.
둘째, 부모님은 빠르게 갈 수 있는 고속도로 놔두고 왜 국도만 고집하는지 다툼의 경계를 자주 오갔었지만 막상 내가 운전대를 잡고 부모님을 태워보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고속도로의 지루한 직선길과 국도의 운전맛은 비교조차 안된다.
부모님은 올해만 벌써 강원도만 세 번째다.
'뭐 이렇게 자주 가'불평(?) 하다가도
'엄마, 나이 들어서 이거보다 좋은 게 없다'
'응 맞아'
엄마, 아빠는 우리 셋을 키우면서 새벽 열두 시, 한시에 가게문을 닫고 그 새벽길을 운전해 국내 여행을 자주 데리고 다니셨다. 못해도 일 년에 두 번은 그 미친 여행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너무 당연한 것이었던 즐거움. 이제는 더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해보려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잡아보려고 애쓴다.
굽이굽이 대관령을 넘어 내려가다가 대관령 박물관에 잠 쉬 쉴 겸 일단 차를 세웠다.
입장료도 싸고 정원도 예쁜데 들어가서 구경이나 해볼까.
아기자기하고 알차게 진열된 유물, 작품 진열장. 복도에 길게 난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멋있었다.
밖에 나와서 연못도 구경하고 화장실도 갔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 참 좋고 건물도 특이하고 알맞게 잘 지었다.
뜻밖의 좋은 구경.
목요일 네시 넘어 호텔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아빠는 차에 수박 두고 왔다고 혼자 다녀오다가 줄에 걸려 넘어져서 정강이에 피가 주르륵.
아파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웃기던지 밴드를 붙여주며 엄마랑 한참 웃었다. 우리가 웃을수록 아빠는 진지해진다.
짐을 풀고 밖에 나와 바닷가를 걷던 시간이 좋았다.
날도 선선하고 해도 강하지 않고 바쁘지도, 취하지도 않은 평화로운 저녁 전의 한가진 시간.
해변에 설치된 그네를 셋이 탔다. 아빠는 남자라고 분위기는 뒷전, 열심히 그네 밀기에만 열심이다.
그리고 적절한 시간에 발견한 2층의 뷰 좋은 횟집.
우리는 광어파. 술이름은 매취순이었나. 아무튼 값은 있었지만 밑반찬이 잘 나왔고 무엇보다 뷰 맛집이었다.
부랴부랴 사우나 닫기 전에 어서 호텔로 돌아갔다.
운전하랴 노느랴 피곤한 몸을 녹이고 다시 엄마와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다음 날은 오대산 소금강에 갔다. 항상 엄마가 오대산이 멋있는데라고 말만 듣다가 드디어 가본 소금강.
그리고 그 밑 비빔밥집. 외국에 살다가 한국 들어와서 꼭 먹는 메뉴는 다른 것도 아니고 시골의 산채비빔밥이다. 아주머니가 엄마 인상이 좋다고 주신 감자전 두 개. 그리고 기분 좋아 드린 팁. 당황하신 아주머니. 그러나 모두가 기분 좋음. 직접 농사진 밑반찬이라며 설명해 주시는 셰프 아주머니. 듣고 보니 하나하나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고 싹쓸이 먹었다. 돌아가는 길 들른 카페에서도 수박 서비스.
'오늘은 가는 데마다 이렇게 친절해'
그러고 양양 리조트에서 언니네를 만났다.
한 달 반 사이에 조카. 말이 부쩍 늘어서 이제 대화도 된다.
바닷가에 가서 두꺼비집도 만들고 물장구도 치니 2세 어린이에게 이보다 천국이 있을까.
다음날 아침부터 "우리 바다 가야지"노래를 부른다. 우리 조카는 이제 바다에 가는 게 소망이 됐다.
저녁시간 광장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 그리고 초저녁 달빛아래 여유로운 사람들, 바다, 산.
마지막 방학을 보내는 어린이의 마음처럼 모든 순간을 잡고 싶었다.
단 한 번도 잡힌 적 없지만 나는 그런 좋은 시간이면 어떻게든 시간을 잡아보려고 머리를 굴린다.
다음날 아침 조식파는 조식을 먹고 엄마와 나는 본전을 못 뽑을 거 같아서 카페에서 간단히 먹었다.
그리고 막국수를 먹고 인천행.
남양주부터 40km로 인천까지 온 것 같다.
아무래도 올해 휴가는 이제 끝난 것 같다. 다음 주부터 마음 잡고 첫 출근 잘해보려고, 잘 쉬러 왔는데 괜히 바람만 들어간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