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킴 Jul 29. 2024

런던은 가봤지만 출근은 처음이라.

예민하고 긴장 잘 하고 소심하고 내향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인상. 

기차시간보다 30분 일찍 역에 와서 남편과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를 이동하면서 현실이 파악되고 슬슬 긴장이 됐다. '내가 지금 여기 와서 뭐 하는 거지'


가는 기차엔 사람이 너무 많지는 않을 런지 환승은 잘할는지 빌딩은 잘 찾아 들어갈 수 있을는지. 

초행길은 늘 어렵다. 

기차는 텅텅 비어있었고 환승은 잘 못했으며 회사 건물도 바로 코 앞에 두고 한참 지도를 검색했다.

그래도 일찍 나와서 시간보다 오분 일찍 로비에 앉아서 기다렸다.

나 빼고 다 즐겁고 산뜻해 보이는 사람들.


사무실로 올라갔다. 나 말고 오늘 첫 출근하는 두명이 더 있었다.

HR팀에게 회사 소개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그토록 내가 걱정하고 걱정했던 자기소개시간.

서른 중반까지 돼서 울렁증에 고통받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IT팀과 컴퓨터 설치 및 팀원 인사. 

나 혼자 긴장 잔뜩 해서 분명 이상한 표정이었을 거다.


뻔한 인사말 와중에 런던에 살지 않아 기차 타고 왔다고 하니 매니저와 팀원이 바로 주 2일 출근으로 바꾸라고 조언해 줬다. 감격스러운 첫 대화 주제였다.


전 회사에서 1년 5개월간 근무하며 새로운 팀원이 올 때마다 그들의 적응력과 역량에 많이 놀랬었다. 특히 나와 가깝게 일했던 두 명은 출근 첫날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어셋을 만들어 냈었다. 그 덕에 나도 적당히 하던 습관 버리고 신입의 마음으로 한동안 열심히 했었었다.


왠지 이곳에서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

회사 시스템, 사람, 메신저에 적응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나는 자꾸 무슨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기존에 구축된 3D 팀이 있는 게 아니라 UI 위주로 돌아가는 디자인팀에 처음으로 들어간 3D 아티스트라 더더욱 내 업무를 찾기는 힘들었다. 


내 옆 동료는 본인의 첫 달엔 그냥 앉아서 회사 게임만 했다고 한다.


이거를 해 볼까요? 

저거를 해 볼까요?


내 매니저도 나를 두고 당황하는 눈치였다.

"혹시 홍콩 사람들 어떻게 일하는지 아세요?"

"아니요"'

"우리는 오픈마인디드고 의견 있으면 뭐라도 제시해주세요"

그 말에 꽂혀 정말 아무 말이나 다 했다.

하지만 매니저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다만 간혹 만나는 동료들이 굉장히 외향인들이었으며 다정하고 무슨 일을 벌써부터 하려고 하냐며 그냥 즐기라고들 했다. 


고작 일주일 밖에 안 지났지만 회사 내에 정치세력도 보이고 

팀 간의 불균형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어야 하는 거였구나'


아직 기존 사람들도 뭔가 정리가 안된 것 같다.

그냥 게임하며 공부하며 기다려 보자.


하루에 일곱 시간 반이 업무시간이다.

전 회사에서는 십 분 단위로 엄격하게 체크를 했었는데

네시가 되니 여기는 사람들이 인사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 되지 않을까 하고 다섯 시쯤에 인사를 하러 갔다.

역시나 내 눈치론 ' 다 큰 어른들이 무슨 출석체크 인사를 해요. 그냥 편하게 가세요'였다.


오히려 내가 물었다.

"재택 할 때는 따로 체크인 체크아웃 하는 시스템은 없나요?"

"없어요. 그냥 편하게 하시면 돼요"

'아??'


그렇게 아침에 헤맸던 길을 따라 돌아 집 기차역까지 왔다.

남편이 마중 나와 있었고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우리 아내 다 컸네!"


너무 긴장해서 피곤한지도 몰랐다. 




이전 04화 원래 잘 울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