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minjeong from South Korea
잠시나마 관광객 모드로 행복했던 전날의 기억을 뒤로하고 다음날 우리는 산마르틴San Martín del Camino까지 함께 걸었다. 문제는 물집이 발바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해버린 언니의 발 상태였다. 산마르틴에 도착할 즈음 노을이 붉게 타고 있었는데 언니는 그 노을이 지옥불이 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했다.
다음날 언니는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언니에게 순례길을 당장 중단하라는 선고를 내렸다. 의사가 아니라 누가 봐도 그 발로 걷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메세타 조난 사건에도 다시 길 위에 섰던 나처럼 언니 역시 이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 <실미도>에는 부상으로 더 이상 훈련에 참가할 수 없게 되자 취사병으로 제 몫을 다하는 병사가 나온다. 부상병이 된 언니는 그 후 며칠간 다음 알베르게까지 버스로 조금씩 이동할 수밖에 없었지만 취사병을 자처하며 언니만의 순례를 이어갔다.
아무리 혼자 가는 길이 외로워도 다음 알베르게에서 기다리는 언니를 생각하면 (정확히는 언니가 해줄 밥을 생각하면) 젖 먹던 힘까지 짜내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언니의 멱살을 잡고 끌어줄 차례인데 이렇게 또 언니가 내 멱살을 잡고 끌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때로는 떨어져 있었지만 언제나 함께인 채로 산티아고까지 함께 입성했다. 그리고 추운 겨울밤 산티아고 성당을 바라보며 차디찬 돌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곳이 산티아고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언니였기에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초동안의 소유자라 나와 친구로 보이지만) 언니는 나보다 10살 위였다. 1유로도 되지 않는 요리용 싸구려 팩 와인을 물통에 넣고 다니며 마시던 25살 나에게 그때 언니는 가끔 식당에서 와인 한 병을 주문해 같이 마시자고 하는 한없이 크고 멋진 어른이었다. (와인을 병으로 시키면 다 어른이다.)
어느덧 우리가 만난 지 딱 10년이 흘렀으니 벌써 내가 그때 언니의 나이가 되었다. 언니처럼 35살이 되어보니 이제 와인을 병으로 주문하는 것은 나에게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건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여전히 인생에는 어려운 고비가 참 많고 풀리지 않는 고민도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렇기에 35살 그때의 언니도 그 길에 와서 답을 구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내 곁에는 든든한 언니가 있다. 힘들 땐 언제라도 언니에게 왜 인생에는 까미노의 화살표가 없는지 투정할 수 있고, 사골 우려먹듯 10년째 우려먹는 그때의 에피소드들로 함께 울고 웃으며 밤을 새울 수도 있다.
그런 언니가 여전히, 고맙게도 내 곁에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길이 두렵지만은 않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