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stina Esteban’s family from Spain
지옥 불바다를 간신히 건너 산마르틴에 도착한 언니가 밥을 한다며 분주히 돌아다녔다. 제발 쉬라는 나에게 언니는 “난 걸을 때 빼고는 컨디션이 최고야.”라고 말했다. 주방은 어두컴컴했고 가스불은 동전을 넣어야 겨우 켜졌다. 그곳에서 건더기도 없이 오로지 스프만 넣은 라면스프탕과 (그나마도 스프 아까워 팍팍 넣지도 못해 멀겋다.) 고추 피클이 전부인 밥상을 차려 먹었다.
그런데 어두컴컴한 주방과는 달리 바로 옆 환한 공간은 식당인지 테이블이 몇 개 있었다. 그곳에서 한 가족이 음식을 시켜 하하 호호 웃으며 먹고 있었는데 조명과 그들의 밝은 분위기가 더해져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아마 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도 그보다 더 강렬하게 빛과 어둠, 빈과 부를 대비시켜 연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정아, 우리는 돈이 없어서 이렇게 먹는 게 아니야. 우리는 일부러 순례자답게 먹는 거야.”
그 순간 언니가 능청을 떨며 농담을 하는데 그 말이 웃겨서인지, 그 가족이 너무 부러워서인지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부럽다 못해 우릴 서럽게 만든 이 가족이 (언니와 나는 이들을 ‘스페인 단란 가족’이라 불렀다.) 나에게 찾아온 여섯 번째 기적, 크리스티나 가족이다.
언니는 며칠간 버스로 이동할 계획이어서 식사를 하다 말고 정보를 물을 겸 그 가족에게 다가갔다. 언니가 물집 사정을 말하자 그 가족의 아빠가 식사를 멈추고 대뜸 발부터 보자고 했다. 그러고는 진심으로 걱정하며 약까지 챙겨 발라주었다. 아무리 서로를 걱정하고 격려하며 함께 가는 길이지만 나라면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이의 발을, 그것도 밥을 먹다 말고 그렇게 어루만져줄 수 있었을까. 이렇게 훌륭한 아빠가 계시니 그 딸들의 인성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첫째 딸이 고3, 둘째 딸이 중2였는데 이들은 대체 그 흔한 고3병, 중2병도 없는 것인지 순박, 순수 그 자체였다.
스페인 발렌시아에 사는 이 가족은 순례길 전체를 구간별로 나누어서 틈날 때마다 와서 걷는다고 했다. 이번이 세 번째 까미노이고 2년 후에는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정말 감동적이지 않은가. 몇 년에 걸쳐 온 가족이 함께 완성하는 그들만의 순례길이라니. 우리나라에 어느 고3, 중2가 엄마, 아빠를 따라나서 친구도, 놀거리도 없는 그 지루하고 고생스러운 길을 함께 걷는단 말인가.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이들의 가족사랑은 정말이지 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