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stina Esteban’s family from Spain
민정 언니와 아스토르가Astorga에서 만나기로 하고 혼자 걷던 길 끝에 다시 이 단란 가족을 만났다. 덕분에 첫째 딸 크리스티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마지막 한 시간 정도를 함께 걸을 수 있었다. 가족 이야기를 할 때면 그녀의 표정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그 표정만 보아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졌다.
둘째 딸 마리아는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인지 원래 성격이 수줍음이 많은지 별말이 없었다. 크리스티나는 그런 자기 동생이 귀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태어나서 자기 여동생을 그렇게 예뻐하고 챙기는 언니는 또 처음 보았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초’비현실 자매였다. 하긴 통통한 볼살에 주근깨, 양 갈래머리를 찰떡같이 소화하는 마리아는 내가 봐도 귀여웠다. 마리아 같은 중2는 백 명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 맘씨 좋은 주인아저씨가 웰컴주와 간식을 건넸다. 아빠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체크인도 미룬 채 아내와 두 딸 자랑을 시작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가족 자랑을 늘어지게 하는 그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엄마와 두 딸은 듣고 있을 뿐이었다. 아내와 두 딸이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며, 중간중간 muy bonita(very beautiful)를 수백 번 섞어가며 말하는 그는 진정한 사랑꾼이었다.
침대를 배정받고 휴식을 취하다가 우리 모두 크록스를 신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란 가족의 엄마와 두 자매, 그리고 나까지. 그게 또 무슨 그렇게 놀랄 일이라고 우리는 신이 나서 깔깔 웃었다. 이건 운명이라며 알록달록한 크록스를 신은 발을 서로 맞대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맞댄 발을 타고 이들의 행복한 에너지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단란 가족은 그날 아스토르가를 끝으로 다음 날이면 다시 발렌시아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제 막 친해진 것 같은데 금방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에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싶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엽서에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직접 그리고 서툰 영어로 편지도 썼다. 별것도 아닌 나의 선물을 그들은 역시나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받아주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한참을 서로 부둥켜안고 볼 뽀뽀를 나누었다. 그 포옹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지 않고는 믿기 힘든 이 비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에서 어쩌면 난 내가 이루고 싶은 가정의 모습을 보았다. 이들처럼 나도 부모를 존경하는 딸이고 싶고, 하나뿐인 동생을 사랑하는 누나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아이들 앞에서 주저함 없이 낯선 이의 발을 어루만질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날 알베르게에서 단란 가족의 아빠가 그러했듯이 나도 누구에게든 온 마음을 다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가장 큰 보물은 바로 우리 가족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