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iel, Sebastian from Germany
스페인 단란 가족과 더 걷고 싶었지만 이들은 아스토르가를 마지막으로 발렌시아로 돌아갔고, 발 상태가 더욱 심각해진 언니는 이틀 뒤에 만나자며 폰페라다Ponferrada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언니를 따라가고 싶은 유혹을 간신히 뿌리친 나는 버스 타고 1시간이면 갈 거리를 또다시 두 발로, 이틀간 걷기로 했다.
다시 혼자 가야 하는 길이 외롭고 쓸쓸했던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절대로 같이 걸어주지는 않는) 두 남자가 있었다. 독일에서 왔다는 저 두 젊은 남자의 관계는 대체 뭘까? 형제는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커플인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린 언니와 나는 이들을 편의상 투 저먼스(Two Germans)라고 불렀다. 이 투 저먼스가 나에게 찾아온 일곱 번째 기적, 다니엘과 세바스티안이다.
아무래도 우리처럼 오해한 사람들이 많았던지, 우연히 바르에서 만났을 때 연장자 다니엘이 굳이 묻지도 않은 둘의 관계를 먼저 이야기해 주었다. 알고 보니 세바스티안은 그야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딩인데 (미안, 크리스티나는 고3병 따위는 없을 천사로 표현했는데….) 학교에서 퇴학이 마땅한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고 했다. 대충 들리는 단어는 Drug(마약) 정도.
그런데 학교에서는 징계 대신 산티아고 길을 걷고 올 것을 그에게 제안했다. 미성년자 혼자 갈 수는 없으니 세바스티안의 부모가 보호자 겸 가이드로 다니엘을 고용했고, 세바스티안과 동행하며 보호자 역할을 하는 조건으로 다니엘의 모든 여행 경비는 세바스티안의 부모가 부담한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태어나 처음 듣는 스토리인가. 스페인 단란 가족이 보여준 비현실적인 가정에 이어 이번엔 독일의 비현실적인 학교 차례였다. 이렇게 나는 또 이 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고, 이 길이 아니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것들을 배워나갔다. 역시 세상 밖으로 나가야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여행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살아온 세상 속에서 그동안 내가 겪었던 학교는 대부분 이런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끝없는 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그 속에서 우등생과 열등생을 가른다. 물론 우등생에게는 보상이 따른다. 실수하고 잘못해도 어지간한 것은 눈감아준다.
하지만 열등생에게 학교는 참 팍팍하다. 잘해도 의심받고, 잘못하고 실수하면 ‘그럼 그렇지.’라고 비난한다. 벌점을 주고 벌점이 쌓이면 징계를 주기 바쁘다. 이제 잘해보려고 마음을 먹어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고 그래서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다. 결국 기회를 주지 않은 학교에 대한 불신은 성인이 되면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세바스티안의 학교는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학교와 달랐다. 그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학교는 벌을 주는 대신 그에게 순례길이라는 기회를 다시 주었다. 길을 걸으면서 지난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산티아고 길을 다 걷고 학교로 돌아간 세바스티안이 갑자기 환골탈태하여 모범생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어쩌면 학교도 그에게 그런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바스티안은 적어도 학교가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세상에 대한 마음을 닫지 않고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모범생이 될 것을 강요하는 대신 문제아로 낙인찍는 것을 경계한 그들의 선택이 옳다고 믿는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마침 세바스티안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갑자기 비니를 고쳐 쓰고 선글라스를 꺼내 폼을 잡았다. ‘그래, 너도 철없고 귀여운 틴에이저일 뿐이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벌써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저 멀리 소실점처럼 사라져버렸다. ‘귀여운 틴에이저 취소. 역시 넌 게르만의 후예가 틀림없구나.’
도저히 이 게르만의 후예들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오로지 나를 앞서갈 뿐이었다. 그래도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속 토끼처럼 어디서 낮잠이라도 한 번씩 자는지 거북이인 나와 두 번이나 바르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그중 한 바르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우리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가는 날이 장날’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가는 날이 아주머니들 곗날’이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그중 한 아주머니가 접시에 무언가를 담아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셨다.
오늘은 스페인에서 커다란 파이를 구워서 함께 나눠 먹는 날이라면서 한 조각을 잘라 우리에게도 나눠 주셨다. 역시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아주머니들 인심이 최고다. 파이의 맛은 많이 달고 퍽퍽했지만 아주머니들이 예의주시하는 느낌이 들어 열심히 남기지 않고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