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쩌다, 올레
올해 오월과 유월에 걸쳐 한 달간 제주에서 머물며 올레길 한 바퀴를 걸었던 얘기다.
제주 한 달 살이와 올레길 완주는 나의 오래된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새해 다짐 노트에 글로만 적혀있던 막연한 꿈은 내게도 닥쳐온 은퇴 덕분에 현실이 되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세월이 지나면 그 기쁨이 옅어지는 법인데 제주에서 머물던 그 한 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리워진다.
올레 완주증을 받은 지 반년이 거의 다 된 지금도 올레길을 걷던 감흥은 생생하다.
제주 올레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과 SNS에 차고도 넘쳐 거기에 내가 뭔가를 보탠다는 것이 바다에 소금물 한 양동이 정도를 붓는 격이다.
그렇지만 같은 길을 걸었을지라도 느끼는 것은 우리네 삶만큼이나 다를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여 나의 올레 완주기를 정리하려고 한다.
매일매일 보고 느낀 것이 시간이 지나 내 기억 속에서 휘발되지 않기를 바라며 갈무리해 두었던 올레 일기를 꺼내어 본다.
요즘 은퇴한 사람들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해외에서 한 달살이가 인기가 많은 것 같다.
그에 반해 한창 유행이던 제주 한달살이는 코로나 시기에 더 심해진 제주도의 관광 물가와 많은 사람들로 인해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왜 제주 올레길을 택했을까?
나는 제주도의 검은 현무암과 새파란 바다가 빚어내는 색의 조화를 좋아했다.
아내는 갯내나지 않는 제주의 바다 냄새가 좋다고 했다.
거기에 집에서 나와 두 시간 남짓이면 이국적인 풍광과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도 아내도 바쁜 사람이었으므로 시간을 일부러 내어서 해외로 놀러 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잠시 짬을 내어 다녀올 수 있으며, 내륙과 전혀 다른 분위기까지 즐길 수 있는 제주도를 좋아했다.
우리는 제주의 제법 알려진 곳은 물론이고 때로는 어떤 이들이 비기처럼 알려주는 맛집이나 명소를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주 한 달살이는 나의 희망사항 윗 줄에 자리 잡았다.
누군가 제주도에 대해 말하면 조용히 끼어들어 한두 마디 보탤 정도는 되었다.
제주 지도 위에 내가 가본 곳을 점으로 찍으면, 제법 많은 점이 찍힐 것이었다.
이제는 제주에 점을 보탤 것이 아니라, 제주 올레길을 내 발로 밟아서 그동안 점으로만 알고 있던 제주를 선으로 연결해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이 예찬해 마지않는 걷기의 효용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나는 올레길을 걸으며,
우왁하고 덤벼드는 바다와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것 같은 한라산의 곡선과 마주했다.
길 모퉁이를 돌아 생각지도 못했던 추억의 장소를 발견해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는 기분을 느끼는 건 덤이었다.
마침내 제주 한 바퀴를 걸어서 다 돌고 나니 하나의 폐곡선을 완성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