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mmy Park Mar 18. 2024

Rule은 내가 만든다

Jailbreak

“Life is short, break the rules." (Mark Twain)

새벽 한 시, 차 없는 대로에서 나는 무단횡단을 했다.
 
LG에서 MIT Media Lab 스폰서십을 직접 운영한 적이 있었다.
담당교수님은 Hiroshi Ishii라는 일본인인데 Tangible Media라는 연구그룹을 운영하고 계셨다.
‘손으로 만져지는 Interface가 가장 직관적이다.’라는 주제로 30년 가까이 연구를 해오면서
HCI(Human Computer Interface)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의 자리에 오르셨다.
만날 때마다 수많은 영감을 주시는 스승 같은 분이다.


Ishii 교수님의 이력은 매우 독특하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삿포로에서 자랐고, 컴퓨터 엔지니어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일본 통신사인 NTT 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신규 과제들을 리드하고 있었다.
어느 날 MIT Media Lab 창립자인 Nicolas Negroponte 교수가 일본 NTT 연구소를 방문했다.
그때 Ishii 수석연구원이 본인 프로젝트 중 하나인 'ClearBorad'를 시연해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
'ClearBoard'는 먼 곳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의 얼굴과 화면을 모니터에 공유하면서
마치 한 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Tool이었다.
말하자면, 코로나19 덕분에 온 국민이 알게 된 Zoom의 90년대 버전이었다.
그 시연을 본 Negroponte 교수는 크게 감명을 받았고 즉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나랑 함께 MIT에 좀 갑시다."
"네? 난 공부를 더 할 마음이 없습니다. 박사학위도 있고, 지금 이미 서른아홉 살입니다."
"아니, 더 공부를 하라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학생들을 가르쳐 줘야겠소."
"..."

순간 Ishii 수석연구원은 너무 당황했다고 한다.
난 영어도 잘 못하고, 키도 작고. 나이도 많고, 실력도 아직 부족한데...
그런 내가 세계 각지에서 모이는 최고의 학생들을 과연 가르칠 수 있을까.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왠지 가슴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혹시 잘 못 되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 일단 가보자.' 
그는 눈 딱 감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그 순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나이 서른아홉에 시작한 무모한 도전.
그 후 피나는 노력으로 10년 만에 Media Lab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수 중 한 분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도 큰 도전이 되었다.


(Hiroshi Ishii now + Hiroshi Ishii then)


오래전 Ishii 교수님이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함께 저녁을 했는데 재밌는 말씀을 하셨다.

‘사고의 관점’에 대한 말씀이었다.


본인이 일본과 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양쪽이 ‘사고의 관점’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고.

한국도 일본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일본사람은 Rule base 사고를 많이 한다.

반면에 미국사람은 철저하게 Logic base 사고를 한다. 

가령, 새벽 2시에 찻길에 나갔는데 새벽이라 오가는 차가 거의 없다고 해보자.

이때 대부분의 일본사람은 길을 건너지 않고 신호등 파란불을 기다린다.

달려오는 차도 없는데 왜 파란불을 기다리느냐고 물으면,

일본사람은 그게 Rule이니까, Rule은 지켜야 하는 거니까라고 대답을 한다.

반면 같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미국사람은 양쪽을 보면서 뛰어서 길을 건넌다.

신호등이 빨간불인데 왜 무단횡단을 하느냐고 물으면,

저 멀리서 차가 오는 속도를 감안하면 내가 치일 염려는 없고

지금 뛰어 건너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를 입히지 않으니까라고 대답한다.

어차피 신호등은 다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으려고 만든 거 아니냐고.  

사회적 약속은 어겼지만 나름의 Logic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사고의 관점이 다르다 보니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행동이 나오곤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런데 진짜 흥미로운 건, 그다음에 이어지는 Ishii 교수님의 말씀.
 
“그런 사고 관점의 차이 때문에
미국사람들은 자기 Logic을 만들기 위해 습관적으로 Why를 고민하는데
일본사람들은 Why를 묻고 답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게 Rule이니까. Rule이 된 이상 Why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혁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미국사람들은 늘 Why를 묻다 보니 현재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의 Logic으로 다르게 해석하고 새롭게 바꿔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혁신을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되고
저마다의 다양한 해석과 개선 아이디어가 혁신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반면 일본사람들은 Rule이 생기는 순간 Why를 묻지 않고 순종한다.
사회에 질서가 잡히는 장점이 있지만 현재의 문제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Rule이 암묵적인 약속이 되어 그 선을 넘어서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나도 모르게 현재에 순응하고 변화에 소극적이 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건 쉽지 않다.”
 
과잉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도 양 쪽의 문화를 오랫동안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매우 공감이 갔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그게 그런 차이였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Rule은 지키는 것이다.
Rule 잘 지키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Rule을 지키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 Rule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Why에 대해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환경이 바뀌어 그 Why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을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여 더 좋은 해결 방법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
그래도 Rule이니까 무조건 지키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그릇된 맹종일 수 있다.
또한 Rule이 아직 없다면 나름의 Logic을 만들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이런 시도 끝에 배움이 오고, 그 배움은 새로운 Rule의 Why가 된다.

 
혁신을 하고 싶다면 현재의 문제를 찾아라.
그 문제의 해결책을 위한 당신만의 Logic을 고민해라.
그 Logic을 기반으로 새로운 Rule을 만들어라.

 
Rule은 깨는 것이다.
Rule은 새로 만드는 것이다.


(Future Media Lab, Powered by DALL.E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