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The biggest risk is not taking any risk. In a world that is changing really quickly, the only strategy that is guaranteed to fail is not taking risks." (Mark Zuckerberg)
처음에 몇 명은 죽을 수도 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LG에서 헬스케어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보스턴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보스턴의 종합병원 MGH(Massachusettes General Hospital)에 들러서
의사선생님들과 산학 담당 교수님과 협력 논의 미팅을 했다.
MGH는 워낙 유명한 병원이라 그 전에도 많이 들어는 봤지만 직접 가본 건 처음이었다.
그 말을 하니 교수님이 보여줄 게 있다면서 우리를 옆 건물로 데리고 갔다.
따라서 윗층으로 올라갔는데 무슨 방이 있었다.
그 방이 바로 MGH에서 세계 최초로 '마취'를 통해 수술을 집도했던 방이라고 했다.
옆쪽 벽에는 그날을 보여주는 흑백 사진도 걸려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였다.
그들은 그곳을 '에테르 돔'(Ether Dome)이라고 불렸다.
1848년 10월 16일 치과의사 윌리엄 모튼이 그 방에서 에테르 가스를 사용하여
최초로 무통 마취 수술을 성공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윌리엄 모튼이 세계에서 최초로 마취를 시도한 사람은 아니었다.
1844년 그에게 마취를 소개해 준 사람은 커네디컷의 선배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였다.
그는 웃음파티에 갔다가 다리를 다쳤는데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는
이 무통증 경험을 수술로 연결시켜 보려고 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걸 목숨 걸고 먼저 시도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직접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는 스스로 아산화질소를 마신 후 어금니 발치 수술을 받았고
통증 없이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입증했다.
그는 더 큰 병원에서 이를 증명하고자 MGH에 많은 의사들을 모아 놓고 수술을 감행했지만
그 수술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패로 돌아갔다.
호레이스 웰스는 실패를 자책하며 괴로워 하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얼마 후 아산화질소를 에테르로 바꾸어 시도했던 윌리엄 모튼의 수술 방법이 의학계의 인정을 받으면서
세상에 마취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마취라는 혁신은 이런 진통 속에 태어났다.
뭐 하나도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수술 시 너무나 자연스러운 마취.
부분마취, 전신마취를 고민해 본 적은 있지만 마취 자체를 고민해 본 적은 없다. 필요하면 하는 거였다.
그런데 그 방을 둘러보며 생각해 보니 마취란 게 사실 보통일이 아니었다.
사람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의식을 멈추는 것이다.
잘 못되면 불구가 되거나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었다.
자기 목숨을 걸고 그걸 처음 시도했던 호레이스 웰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용기에 경외감이 들었다.
LG에서 신사업을 위해 자율주행 기술 투자를 검토하던 때의 일이다.
카메라를 활용한 자율주행 솔루션 스타트업들을 검토하다 한 회사를 만났다.
현대차 사내벤처 1호 스핀오프였던 그 기업은 기술력도 훌륭하고 검증도 많이 되었는데도 사업이 더뎠다.
하루는 대표님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중국 OEM을 만나러 다녀왔는데
현지에서 그 중국기업과 나눈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대화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당신들 이 솔루션을 가격 $XX에 만들어 올 수 있습니까?
기한은 XX까지이고 물량은 최초 XX대, 이후 추가 주문 가능합니다."
"정말로 그 정도 많은 초도 물량이 필요합니까?
중국에서도 자율주행 허가가 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나요?
한국에서는 리스크 때문에 법제화 논의도 더딘 상황인데 중국은 다른가요?"
"아니 그걸 왜 당신들이 고민합니까? 당신들은 그냥 그 가격에 납품만 하면 됩니다.
리스크든 뭐든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합니다.
사실 자율주행 같은 혁신적인 기술은 처음엔 당연히 희생이 따릅니다.
어쩌면 사람 몇 명 죽을 수도 있겠지요. 혁신은 원래 그런 겁니다."
이야기를 듣는데 소름이 끼쳤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자율주행을 둘러싼 윤리 문제가 화두여서 더 그랬다.
가령, 자율주행 차량이 피할 수 위험을 감지했는데 왼쪽엔 어른 10명, 오른쪽엔 아이 1명이 있다.
그 순간 자율주행 알고리듬은 과연 어느 쪽으로 핸들을 틀게 할 것인가?
그렇게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으면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
똑같이 사람이 상해를 당하더라도 운전자가 있으면 책임이 분명하지만
자율주행이 되는 순간 누구의 책임인지 불분명해진다.
답이 없는 이슈였다.
사람이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게 문제였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혁신을 위해서는 사람 몇 명 죽어도 어쩔 수 없다며 달려드니
앞으로 자율주행은 중국이 치고 나가겠구나 싶었다.
현재 자율주행 기술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는 테슬라.
테슬라 오토파일럿을 켜고 가다가 사망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보면 그 중국 기업이 생각난다.
테슬라는 미국 기업이지만 중국 기업처럼 혁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더 오랫동안 연구해 온 구글의 웨이모도 하지 못한 것을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이 여기까지 끌고 왔다.
처음엔 무모해 보이던 리스크를 그가 기꺼이 감내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적 디테일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테슬라니까, 일론 머스크니까 괜찮겠지 하고 서서히 써보기 시작했다.
테슬라는 그 시간을 버티며 사람들을 익숙하게 만들고 있다.
기술은 만든다고 끝이 아니다. 오히려 거기가 시작이다.
신기술을 잘 짜인 각본대로 데모를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해도롤 높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긍정의 역할이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꾸려면 절대적인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기술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수십 년 뒤에 는 자율주행이 당연한 세상이 올 수도 있지만
세상을 그렇게 만든 공은 50% 이상 테슬라에게 돌려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기술을 만들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기술을 써보게 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을 고민하다 보니 처음엔 운전 자체도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을까 싶었다.
마차를 대신해 자동차라고 부르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기계가 나와서
차도라고 전용 길을 만들어 거기로만 다니기로 약속을 하고,
그 위에 차선이라는 것을 그어 그걸 지키기로 하고,
그걸 옮겨 다닐 때는 깜빡이로 미리 신호를 주기로 하고,
중간 중간에 신호등이라는 걸 만들어 빨간불에는 멈춰서 양보하기로 하고...
이런 약속들을 모든 운전자가 충실히 지킬 거라는 완전 신뢰 기반에서
목숨 걸고 시속 100km씩 달리고 있는 것이다.
거의 미친 짓이다.
매일 무사히 운전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거의 기적이다.
전 세계에서 교통사고로 매년 135만 명이 죽는다고 한다.
음주운전, 졸음운전, 약물운전, 전방주시 태만, 핸드폰 부주의 등등
사고 원인의 90% 이상이 휴먼 에러다.
자율주행은 단순히 테슬라나 다른 대기업들의 미래 먹거리인 게 아니다.
교통사고 원인 중 90%를 차지하는 인간을 운전 과정에서 완벽히 제외시킴으로써
사망사고를 줄이고 매년 135만 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다.
인간이 무책임하게 어기는 약속들을
기계로 하여금 강제로 지키도록 만들어 주는 장치인 것이다.
혁신을 위해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중국 기업의 말은 동의하기 어렵다.
135만 명의 생명이 소중하듯 단 한 명의 생명도 똑같이 소중하다.
하지만 매년 135만 명을 살리려는 노력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윤리 문제에 봉착해 제자리에 멈춰서도 안된다.
누구의 책임인가를 책상머리에 앉아 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24초에 1명꼴로 누군가는 찻길에서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로 뭔가를 한다는 것은 태생적으로 위험하다.
지리한 시간을 버텨야 하고 때로는 본인이 희생양이 되는 것도 감내해야 한다.
내가 먼저 마취제를 맞고 수술대에 누워야 할 수도 있고,
내가 먼저 고속도로에서 핸들을 놓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집착이나 금전적 보상 같은 것을 뛰어넘는 한 차원 더 높은 믿음이 필요하다.
최초로 뭔가를 한다는 것.
이 세상의 당연한 것들은 처음엔 모두 당연하지 않았다.
그 당연한 모든 것들의 시작에는 누군가의 무모한 첫 용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