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때가 아니다

게으름에도 핑계가 있다

by 프로스윤

이제 8월도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

어제저녁 집사람은 서울에서의 약속 때문에 서울로 가고 나는 오늘의 운동 약속 때문에 함께 가지 않고 개화역까지만 자동차로 배웅했다. 딸이나 집사람이 강화로 왔다가 전철로 돌아갈 때에는 주로 개화역까지 배웅한다. 자동차로 운전해서 가는 경우도 있으나 아무래도 밤 운전이 서툴러서 전철이 편하다고 하고 그게 나도 맘이 더 편하다.

그래도 혼자 돌아오는 차 안은 좀 심심하다. 일부러 라디오 볼륨을 더 키워보지만 심심함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집에 도착하니 길고양이 딱지가 내 차소리를 듣고 나타나서 나를 반긴다. 길고양이 밥 준 보람을 이때 느낀다.


밤새 30도가 넘던 실내온도가 새벽에는 29도로 내려와 좀 살만하다. 새벽까지 선풍기를 틀었더니 목도 새하고 머리가 약간 무겁지만 오후부터 비 예보가 있어서인지 이렇게 흐린 날이 오히려 반갑다. 해 없는 틈을 이용해 잡초를 좀 뽑아보지만 아직 이슬이 많아서 곧 그만두었다. 물기가 없을 때 잔디도 깎고 제초작업도 해야 하는데 그때를 맞추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해가 너무 쨍하면 더워서 못하고, 새벽에는 이슬이 있어서 못하고, 비가 오면 비 와서 못하고 구름 끼고 덜 습한 날이 언제일까? 그렇지만 그때가 까지 기다렸다가 하면 된다.

내 정원에 풀이 무성하고 잡초가 좀 있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은 없다. 정말 부지런한 아랫집 할아버지는 텃밭에 잡초하나 티끌 하나 없지만 그 할아버지가 굳이 언덕길을 걸어서 우리 집까지 올라와서 왜 잡초를 안 뽑냐고 질책할 리도 없다.

옛날에 정말 밭 메기가 싫어서 아직 많이 자라지도 않았는데 벌써 밭을 메야하냐고 아버지에게 항의조로 말하면 밭에 잡초가 있으면 남부끄럽다, 게을러빠진 놈이라고 욕한다, 밭고랑 꼬락서니 보고는 연장도 빌려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제 그런 욕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가끔 머쓱할 때가 있기는 하다. 잔디밭 안쪽 잔디는 기계로 깎고 가장자리 손질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했더니 경계석 부근 잔디가 자라서 30센티미터가량 되었다. 이럴 때는 낫이나 예초기 등으로 별도로 손질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귀찮아서 가장자리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옆집 잔디밭은 전체가 깨끗한데 우리는 가장자리가 너무 무성해서 틀 밭의 경계석을 잔디가 뒤덮어서 어디가 경계인지 알 수가 없다고 집사람이 은근히 옆집과 비교하면서 손작업을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냥 무시한다. 경계를 돌로 하지 않고 좀 긴 잔디로 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응수하면서 지금까지 미루고 있다. 땡볕에 낫질이나 습기 머금은 풀을 베는 것은 아직도 하기가 싫다.


어릴 때 낫 들고 소 꼴베러 가는 것이 정말 싫었다. 맑은 날은 그냥 소를 몰고 산으로 가서 풀어놓으면 되지만 비 오거나 할 때에는 풀을 베어서 외양간의 소에게 주어야 하는데 어린 내가 꼴망태를 다 채우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어서 공부해야 한다고 핑계 대며 작은 형에게 떠 넘긴 일이 많았다. 공부는 내가 작은 형보다 더 잘해서 부모님은 내 말을 믿었고 작은 형은 아무 말 없이 망태를 메고 나섰다.


경계를 따라 낫질이나 예초기 작업을 하는 것은 꽤 힘든 것이어서 노동에 가깝다. 어차피 저 잔디나 잡초도 11월이면 모두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넓은 잔디밭은 대충 기계로 깎고 구석지고 하기 힘든 것은 미루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강화도 생활이다. 이 맛에 강화도에 사는 것이다. 노동하려고 강화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또 운 좋게 습기도 없고 구름이 있는 날을 만나서 마음이 내키면 낫이나 예초기로 가장자리 작업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keyword
이전 07화순두부와 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