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종교 행사에 나섰다.
그는 바깥보다 주로 자신이 머무르는 집이나 강당에서 활동했기에 주민이 그를 개별적으로 마주치는 건 매우 드물었다. 사람들은 이 미지의 존재를 어려워하면서도 막상 만나게 되면 친근하게 다가오는 그의 너스레에 다들 기분이 좋았다. 평소 그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축복', '감사', '믿음', '평안', '기도'였다. 가령 '내가 평소에 이 길로 안 다니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이쪽으로 오고 싶더라니, 역시 당신을 축복하기 위해서였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대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내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일 댁네 닭장에서 왕란이 나올 것을 믿습니다.', '마을이 평안한 건 당신 덕분인걸 잊지 마세요. 물론 저도 한몫하고 있으니 그것도 기억해 주시고요.' 그는 늘 가볍게 말을 던졌으나 똑같은 말을 돌려가며 사용했고, 특별한 대화를 잇지 않았기에 흠 잡힐만한 거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느리게 굴러가는 이 세상에서 홀로 두터운 감색 헐렁한 옷을 입고 바삐 돌아다니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만이 해낼 신비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거기서 비롯된 권위에 어느덧 존경심을 느꼈다. 이런 세월이 쌓여 그는 마을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오늘 그는 평소보다 더 온화해 보였으며 거룩한 모습마저 띠고 집회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음성으로부터 어떤 위안도 얻지 못했다. 아무리 은혜 충만한 말일지라도 배가 비었을 땐 쓰라린 메아리가 붕붕 울려 퍼질 뿐이었다. 단지 종교행사에 참석하지 않아 받을 처벌이 두려워 몸만 그 장소에 두고 영혼은 방랑 중이었다. 제사장은 교단에 올라가 망자를 지켜보는 침울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고개를 잠시 숙였다가 그들을 다시 쳐다보았다. 일그러진 입으로 잔잔하면서도 뚫어지게 누군가를 응시했다. 누가 더 민망함을 버틸 수 있냐는 경쟁, 하지만 역시 없는 이들은 가진 자를 이길 수 없었다. 잘못됨을 감지한 영혼들은 송장의 육신으로 돌아가 교단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주인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어린 망아지들처럼. 어떤 이들은 자신을 봐달라는 듯 열렬한 눈빛을 보냈다. 그들은 잠시나마 주체적으로 느꼈던 개인의 감정들, 비록 허탈함과 허망함, 좌절뿐이었을지라도 마음속 있는 그대로 표현하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거짓된 얼굴을 했다. 사무엘은 궁금했다.
'저 공허한 눈을 한 이들보다 제사장은 무얼 더 얼마나 가졌기에 이 승부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우선 제사장은 마을에서 가장 큰 강당이 딸린 저택에 살고 있다. 소유라는 개념이 적절치는 않으나, 만일 집이 불타거나 바람에 날라 가버린 불쌍한 가족들은 그의 배려와 관대함을 통해 안식처를 제공받을 수 있다. 강당에 딸린 집에서 그는 부부 관리인과 그들의 딸을 맘대로 부리고 있다. 그리고 한 명의 부인, 입양한 딸 하나, 거기에 얼마 전 숲에서 발견된 묘한 여인, 그는 그들과 함께 그 공간에서 거주하고 있다. 또 어떤 것을 가졌을까. 이 마을은 신성한 의지로 세워져 명확한 원칙 아래 유지되고 있다. 신성한 의지는 법처럼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이 땅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게 바로 저 제사장의 역할인 것이다. 저 자는 살아있는 거룩함이다. 거룩함은 존귀한 것이고 존귀한 것은 대우받음으로써 확인받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식량이나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른 권리들이 일반인보다 더 많이 부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에게 부여된 마지막 권능은 앞서 언급한 모든 것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것은 마을 주민은 한 달에 한 번 반드시 종교행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법에서 말미암았다. 제사장은 이 참여의 의미를 정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영혼 없이 자리만 채우는 모습은 진정한 참여가 아니라고 선언해 버리면, 오늘 모인 사람들은 제사장이 만족할 때까지 그의 노예가 돼야 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앞선 모든 것들을 일곱 번 잃는다 해도 여덟 번 똑같이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이유를 따지고 보니 양쪽 간의 대결이란 표현은 틀렸다. 복종심의 확인일 따름이다.'
확실한 우위를 재확인한 강자는 어설프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 이 어리석고 간사한 것들에게 반드시 혹독한 처벌을 내려야 했다. 상처 내고 멍들게 해서 저 멀리 제사장의 뒷모습만 봐도 경외심을 들게 만들어야 한다. 그림자마저 밟지 못하게 할 기회다. 이 변덕스럽고, 괘씸하고 얄미운 것들이 언제 다시 고개를 쳐들지 모를 일이다. 이들에게 관용과 따스함은 사치다 아니 독이다. 이 독은 그들의 분수에 맞지 않는 꿈을 꾸게 한다. 쟁취하지도 못할 것에 눈독 들이도록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은 진정한 윗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짓밟아야 한다. 그들이야 말로 그것을 원하고 있다. 왜 어설프게 사랑을 줬느냔 말이다 이 한심한 작자 같으니라고. 제사장은 자신의 미숙함에 부끄러웠다. 일찍이 알고 있던 진리 아니던가. '타인에게 베푼 호의가 되돌아오리라 기대하는 순간, 자신은 파멸의 입구로 들어선다.'
“일어나라! 일어나! 이 짐승 같은 것들아, 아니 이 짐승들아. 똥오줌 얼어붙은 바닥에서 개돼지처럼 눕고 자고 먹고 날마다 맞아가며 살아야 하는 이것들아! 일어나! 너희는 그 신성한 자리에 앉아있어선 안 돼!”
제사장은 윽박지르며 교단에서 뛰쳐 내려왔다. 앞선 줄의 인원은 머뭇거리며 일어섰다. 제사장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놀랍도록 세차게 남자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 옆에 있는 여자도 그리도 또 그 옆의 남자에게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팔을 휘둘렀다. 맞은 이들은 서러워서인지 두려워서인지 모를 울음을 터뜨렸다. 안쓰럽기가 이루 다 말하기 어렵다. 한 명은 뭘 먹고 있는지 아직도 얼굴에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주체 못 할 힘으로 서있을 기력조차 없는 이들을 마구 꺾으며 잠시나마 잃을 뻔했던 권위를 되찾았다. 그의 등에서 한 줄기 식은땀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너희들이 짐승으로 불리는 것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너희를 사랑하여 감싸주고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분이 이끄셨음을 깡그리 잊어버린 것이 더 큰 잘못인 것이다. 짐승으로 살고 싶은 자는 당장 축사로 돌아가라! 그게 아니라면 붉은빛을 띠고 알몸으로 태어난 자신이 대체 왜 만물의 으뜸으로 살아가는지 깨닫고 싶은 자들만 남아라. 이 거룩한 장소에서 내 목소리를 빌린 그분의 음성을 들을 지어다!”
아무도 나가지 않았고, 처분만 기다리는 짐승들처럼 고요하고 엄숙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분 이제 그만 앉아보십시오. 가만히 자신의 잘못에 관해 마음이 외치는 절절한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그의 광기는 사람들이 들이마신 공기가 채 내뱉어지기도 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평소의 온화한 모습을 되찾았다. 어느 것이 그의 본모습인지 누가 감히 판가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두려워했다. 인간이 원하는 목적에 눈이 멀면 어떤 얼굴로도 변할 수 있다는 걸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합시다. 반성하고 다시 태어나세요.”
황당한 마무리였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천 길 지옥불로 떨어질 신세였던 사람들은 이 엄청난 절제력을 발휘한 자의 자비로움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들은 도저히 구제받을 자격이 없다며 무릎 꿇고 가장 큰 벌을 내려달라 애걸복걸했다. 그는 지쳤고, 원하는 바를 이뤘으므로 얼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사람들의 머리며 등을 어루만지며 밖으로 빠져나갈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뜻이 통하지 않은 한 사람이 외부에서 난입했다.
여자는 이 마을에서 입을 수 있는 옷 가운데 가장 번듯한 옷을 입었다. 어떤 풍파로부터도 지켜주고 싶지만, 때론 매몰차게 굴어 뚝뚝 떨궈지는 눈물을 봐야지만 안심할 것 같은 그녀였다. 부은 눈두덩과 벌게진 코로 여전히 알아들지 못할 말을 해댔다.
“S'il vous plaît, trouvez mon mari, S'il te plaît, dis-moi où est ma famille, S'il te plaît.”
무릎 꿇고 두 손 모은 그녀가 마지막에 한 말은 뭔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리라. 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혈색을 보아하니 이 마을 누구보다 잘 먹었을 듯하고, 아무나 눕지 못한 잠자리에서 잔듯한데. 대체 저 여인은 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일까? 목에 두를 보석이나 머리에 뒤집어쓸 어여쁜 두건이라도 원하는 것일까? 사무엘은 그녀가 욕심이 많거나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잠시 뒤, 제사장 집에서 일하는 중년 여자와 그녀의 딸이 쫓아와 여인을 끌어내려했다. 힘으로 어찌어찌 버텨보려 했지만, 이미 안쪽이 썩어 텅 빈 나무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로 인해 실낱같이 품었던 기대가 산산이 부서졌다. 양 겨드랑이를 파고든 팔에 매달려 발을 질질 쓸며 끌려 나갔다. 주인은 삐걱삐걱하는 마루 바닥을 빠져나가고, 뒤이어 사람들도 흩어졌다.
한 달에 한 번이던 고기의 배급 주기가 일주일에 한 번으로 늘었다. 사무엘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오늘 주어진 쭈글쭈글한 껍질이 들러붙은 살을 씹을 자신이 없었다. 안쓰러운 옆집 할머니에게 자신이 받은 걸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