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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에바다 Dec 28. 2024

베이징 사람들 1

사람은 본래 선일까? 악일까? 조물주가 처음 창조한 사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결론은, 사람은 선하다. 사람은 선하게 창조되었다. 다만 이해타산으로 사람 안에 씨앗으로 들어있는 악이 때때로 돌출한다. 그것은 사람의 선함으로 해결할 수 다. 뿌리째 뽑아 버릴 수도 없다.  태어난 아기를 보라. 그리고 흉측한 범죄자를 보라. 같은 사람이나, 완전히 다르다.

    

지난여름 초입, 김남금의 《어서 와, 혼자 여행은 처음이지?》(푸른 향기, 2021)를 읽었다. 그녀는 이십 대부터 틈만 나면 1년에 서너 차례, 가방 들고 비행기를 타는 여행자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그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것이 브런치스토리 이용권을 끊도록 안내했다. 올해의 큰 행운 중 하나다.

그녀의 책을 읽으니, 여행은 여럿도 좋지만 혼자해야 득탬하는구나, 그래야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그 나라 문화와 삶을 제대로 엿보겠구나, 싶었다. 하여 언어가 안 되어 한 번도 혼자 나가보지 못한 발걸음을 떼자, 벙어리 열등감도 부숴버리자, 고 다짐했다. 그녀도 응원해 주었다.

"혼자 여행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돼요."   

 

12월 끝자락, 뜻밖에 2박 3일 시간이 생겼다. 혼자 여행해야 할 때였다. 비용이 저렴하고 편하게 다녀올 곳, 그동안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데를 찾으니, 중국 베이징이었다. 파파고와 알리페이, 디디추싱, 위챗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출발했다. 하지만 2박 3일 동안 예상했던 우려가 다 나타났다. 교통 문제, 결제 문제 말이다. 언어가 다른 곳에 처음으로 혼자 나갈 계획을 하다 보니, 국내에서 앱의 여기저기를 만지며 예행연습 했던 것이 실수였다. 그것이 앱이 엉켜 작동하지 않는 고생의 시작이요, 곧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였다.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다. 새삼스럽게 너무 가깝다는 것이 마음에 담겼다. 불과 1시간 25분 거리라니. 국내 어디를 다녀도 1시간 남짓의 거리는 일상의 거리가 아닌가. 국경에 의해 서로 나뉘어 있을 뿐, 생김생김까지 거의 같지 않은가. 일본과 중국의 느낌이 다른 것은 공산국가 체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공항에서 아무리 택시를 부르려 해도 디디 앱에 나의 현재위치가 뜨지 않았다. 안내 직원들에게 보이며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동안 애를 쓰다누군가가 강제로 공항 주소를 넣었다. 덕분에 디디 앱에 택시 번호가 떴다. 15분 정도 기다려서 택시를 탔다. 자금성 입구에서 내릴 때, 첫 알리페이 결제도 잘 되었다. 


오후 4시경, 호텔 체크인을 위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이용도 여행의 한 부분이었다. 서울 시내 이상으로 붐볐다. 두 번의 환승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했다. 출구를 찾기 어려웠다. 두릿두릿하다가 젊은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호텔까지 760m라고 했어요. 걸어가려고요. 방향을 알려주겠어요?"

젊은이가 호텔을 검색했다. 난색을 보였다.

"여기서 호텔까지 걸어갈 수 없어요. 10km가 넘어요. 택시를 타야 해요."

"네?"

나중에 알고 보니, 역 이름 철자 한 개가 틀렸다. 엉뚱한 곳으로 갔으나, 몰랐다. 그때 지하철역이 다른 곳임을 알았다면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본토인의 발음이 달라서 호텔도, 지하철역도 오리무중이었다. 디디 앱에는 강제로 입력한 베이징 공항만이 현재위치로 떠 있었다. 젊은이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가 목적지를 잘못 알았어요. 근데  디디 앱이 작동 안 해요. 미안하지만 택시를 잡아주겠어요?"

젊은이가 난색을 나타냈다.

"이 시간에는 디디가 아니면 길에서 택시 기 어려워요. 하지만 버스는 잘 모르니, 도로로 나가 보죠."    

베이징 바람이 거셌다. 기온은 영하 8도였다. 체감은 그 배였다. 나는 장갑 등 무장을 하고 있어 견딜 만했다. 젊은이는 옷 한 겹 입은 모습에 장갑도, 목도리도 없었다. 거기에 택시는 20여 분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래저래 30~40분이 지났다. 젊은이가 지쳤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조바심과 속상함과 몸을 따뜻하게 하고자 하는 몸짓이었다. 매우 미안했다.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불편해하는 나로서는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젊은이가 다시 제안했다.

"저기 큰 대로로 나가봐. 여기는 택시가 안 오는군요."
"고마워요."

바람길을 따라서 6차선 대로변으로 나갔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서성거려 택시보이지 않았다.

"여기도 안 되겠어요. 건너편으로 가요."

젊은이가 앞장서서 걸었다. 건널목까지 상당히 멀었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뒤따랐다. 젊은이는 심히 답답한 혹을 붙였으나 가타부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앞서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반대편으로 건너가니, 마침내 빈 택시가 보였다. 크게 손짓하여 잡았다. 내가 뒷문을 열고 택시를 탔다. 젊은이가 기사에게 호텔 이름을 말하며 문을 닫았다. 창밖으로 손짓했다. 가슴 벅찬 고마움이 손짓에 묻었으나, 젊은이는 보지 못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6시, 깜깜했다. 둘째 날을 위하여 프런트에 디디 앱 재 설치를 부탁했다. 프런트 직원 둘과 1시간이 넘도록 파파고로 대화했으나 해결하지 못했다. 그때 대표 격 선임이 다가왔다. 그가 베이징에 사는 그의 한국 친구와 내가 몇 번을 말할 수 있도록 전화를 연결했다. 결론은 디디 앱  설치가 불가능했다. 베이징에 연고가 없는 한, 안 되는 것이었다. 잘 몰라서 긴 시간을 허비했다.

내가 완전히 지쳤다. 배도 고팠다. 마침, 호텔 저녁 식사가 진행 중이었다.

"저도 여기에서 식사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직원 식사 시간입니다. 나가서 사드셔야 합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지쳐서 나갈 힘이 없어, 질문했어요. 고마워요."

그때 대표 격 선임이 다시 나와서 말했다.

"아, 그렇다면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숙소에 올라가서 쉬십시오. 식사를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비용을 결제할게요."

"아닙니다. 무료로 드립니다."

"앗, 미안해서 어떡하나요!"

"괜찮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20여 분 후, 숙소에 올라와서 쉬는데, 식사가 배달되었다. 첫날, 매우 지쳤지만, 아주 맛있는 오리지널 저녁 식사를 호텔에서 무료로 맛보았다.


나의 베이징 여행은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말 못 하는 낯선 외국인에게 잡혀 1시간 이상씩 허비하고 추위마저 견딘, 베이징 젊은이들의 친절에서 혼자 길 나선 여행자의 피로가 다 풀렸다. 그들은 운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려움을 겪는 초보 여행자를 아무도 내치지 않았다. 혹한 속에서도 자신들의 시간을 축내며 함께 해 주었다. 그것은 사람이 가진 선함이었다. 사람이 가진 본성(양심)이었다. 그날 내내 베이징 젊은이들의 따뜻함이 내 안에서 노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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