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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에바다 Dec 28. 2024

베이징 사람들 2

모리야 히로시(1932~ 일본)가 《세상을 살아가는 중국인의 80가지 지혜(조범래 옮김. 백만문화사, 2021)에서 말했다.

"중국인은 어떤 의미에서 ‘가면인간(假面人間)’의 선배이다. 그들의 표정이 자연스럽고 결코 굳어 있지는 않으나, 그 표정에 숨겨져 있는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물론 중국인도 인간이기 때문에 몹시 화가 나는 일도 있을 것이며, 껑충껑충 뛰고 싶을 정도로 기쁨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서는 그것을 읽을 수가 없다. 이것은 노인에게서나 젊은이에게서나 공통된 현상이다. 희로애락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가 나에게 호의를 가졌는지 적의를 가졌는지 분명히 판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몹시 당황하게 된다. 일부러 그런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자연적인 상태에서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중국인이든지, 한국인이든지, 일본인이든지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은 상대방이 믿어주는 대로 행동한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양심에 의한 선한 믿음과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이웃사랑이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자비심이라고 했다. 


베이징에서 둘째 날은 만리장성과 이화원을 여행했다. 일일 투어가 파할 때쯤 이동 중에 버스에서 디디 앱을 실행했다. 나의 현재위치가  잡혔다. 내심 손뼉을 쳤다. 일정을 마치고, 지하철 올림픽공원역에 혼자 다. 디디 앱을 실행했다. , 열댓 번을 실행해도 현재위치만 잡힐 뿐, 더는 진행되지 않았다.

"~!"

화가 나서 디디 앱을 삭제했다. 대신 퇴근길 젊은 여성에게 부탁하여, 폰으로 불러주는 택시를 어렵게 탔다. 한가로운 마음으로 베이징 시내의 러시아워를 감상했다. 베이징 시내를 통과하는 데 1시간 50분 소요했다. 그래도 좋았다.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8시, 그런데 택시비가 알리페이로 결제되지 않았다. 순간 아차, 싶었다. 알리페이가 디디 앱과 연동되어 있었을까! 쓸데없이 용감한 여행자는 지우는 일에 재빨랐고, 현금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환전할 시간도 지났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베이징에서는 한국 금융서비스의 비번을 받을 수 없어, 각종 앱의 수동  설치가 불가능한 것을 경험할 뿐이었다.

택시 기사와 호텔직원이 1시간가량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기사를, 다음 날 9시에 다시 만나 은행에서 환전하여 택시비를 지급하기로 하고, 픽업 약속 후 헤어졌다. 아주 낭패스러운 일이었으나 방법이 없으니, 통했다.


다음 날, '낭패당한 택시 기사'(낭사)정시에 나타났다. 먼저 환전할 은행을 찾았다. 환전을 시작했다. 차례로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를 ATM 기계에 넣었다. 비번이 맞지 않았다. 몇 번을 되풀이했다. 소용없었다. 크게 낙담했다.

방법을 다가 20여 분이 지났을 때, 은행의 선임 직원이 제안했다.

"위챗페이를 실행해 봅시다."

위챗페이를 열었다. 오, 단번에 실행되었다. 

"와!!"

환호성이 터졌다. 나만 환호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있던 낭사는 물론 은행 모두가 환호했다. 밤에, 호텔에서 그토록 애를 써도 실행되지 않더니, 둘째 날 열리다니! 얼싸안고 춤을 출 만큼 기뻐한 후, 먼저 낭사에게 외상 택시비를 결제했다. 기분이 하늘을 날았다.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공항으로 바로 갈 수 었다. 시간 활용이 필수인 단기 여행자가 마지막으로 먹방을 포기할 없음이었다. 파파고 앱으로 낭사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지금 바로 공항에 가지 않습니다. 식당에서 북경 오리를 먹어야 해."

낭사웃었다. 내가 덧붙였다.

"북경 오리가 힘들면 베이징 덕이나 훠궈, 자장면이라도 먹게 해 주세요. 만일 그것이 어려우면 오후 1시에 약속된 식당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낭사크게 웃었다.  낭사 택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행자이지만 이웃인 나그네에게 낭사가 친절을 베풀기로 마음먹은 후였다. 

"지금 우리는 구운 오리를 먹으러 갑니다."

먼저, 낭사 천안문 광장과 박물관 등을 두어 바퀴 돌며 베이징 시내를 보여주었. 요청한 것은 아니나 시간 여유가 있다고 하니, 낭사가 여행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다음으로,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북경 오리 집으로 안내했다. 

"자리가 있는지,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사가 혼자 택시에서 내렸다. 잠시 후, 돌아왔다.

"떠나야 합니다. 자리가 없습니다."

다시 한참 동안 둘째 오리지널 북경 오리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거기에서도 낭사 먼저 식사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20분 기다리면 구운 오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드시겠습니까?"

"네, 그거 먹으러 왔는데 먹어야지요. 같이 들어가서, 기다렸다가 함께 먹어요."

그때 낭사가 사양했다.

"저는 볼 일이 있습니다."

"네에? 안 돼요! 그럼 나도 못 먹어요. 내가 디디 앱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고생했어요. 점심을 함께 먹는 것이 맞아요."

낭사가 끝까지 마다했다. 

"제가 1시간 30분 후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낭사가 바로 택시를 몰고 나갔다. 결코 전세 택시가 아니었으나 전세 낸 것처럼 낭사의 친절을 입는 셈이었다. 

할 수 없이 혼자서 20여 분을 대기한 후, 오리지널 북경 오리 맛을 보았다. 담백했다. 취향에 맞았다. 다만 토요일인지라 매우 큰 식당임에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왕래했다. 거기에 낭사가 기다리니, 마음이 느긋하지는 않았다. 70여 분 후 식사를 마치고, 위챗페이로 결제도 잘 마쳤다.


다시 낭사만나 기분 좋게 공항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결제가 남았다. 후하게 수고비를 줄 생각이었다. 아, 그런데 갑자기 위챗페이가 작동하지 않았다. 두세 번 시도했다. 안 되었다. 낭사도, 나도 얼굴잿빛으로 변했다. 낭사가 물었다.

"오리 집에서는 결제됐나요?"

"네, 결제됐어요. 미안해서 큰일이군요! 조금만 더 기다리겠어요? 가서 환전해 올게요"

그동안 낭사의 친절에 대한 보답이 영 마뜩잖아서 괜스레 허둥댔다. 택시에서 내려 공항 내의 환전 장소를 향해 뛰었다. 소용없었다. 시내 은행에서 안 되었으니, 공항이라고 될 리가 없었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왔다 갔다 하다가 30여 분이 지났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낭사에게 돌아가서, 한국에 돌아가 송금하겠다고 부탁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택시 승강장을 찾아 뛰었다. 입구와 출구가 다르니,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여기저기 급하게 뛰어다니며 내가 묻는 말을, 한 한국교포가 들었다.

"무슨 일이세요? 도와드릴게요."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전후 사정을 빠르게 이야기하고, 함께 택시와 낭사를 찾아 나섰다. 찍어둔 택시 사진이 있었음에도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가, 교포가 중국인 비서에게 전화로 방법을 물었다.

"호텔에서 아침에 택시를 불러주었으니, 호텔에 전화하면 찾을 수 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라도 찾아서 결제해야 해요."

잠시 후, 교포의 비서에게서 전화 다. 비서가 낭사와 통화했다고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택시비를 떼어먹고 도망간 걸로 간주하고, 기다리다가 돌아갔다고 해요."

“어쩜! 나라 망신마저 시킬 뻔했군요!”


먼저 비서가 낭사에게 정액 346위안을 송금했다. 다음으로 교포가 비서에게 송금했다. 나는 인천공항에 돌아와서, 교포의 계좌로 송금했다. 위챗으로는 감사 문자를 넣었다.

"구세주였어요."

"별말씀을요. 잘 도착하셨군요."

"세상엔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요!!"

"선하신 분 옆엔 항상 선한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항상 건강하시고, 혹시 중국에 또 오시면 필요하실 때 연락하세요. 우리 집은 베이징 왕징에 있어요."

"아, 그렇군요. 감사해요. 그때 제가 거하게 밥 낼게요. 그리고 혹시 나중에라도 낭사님 전화 가능하시면, 급해서 수고비를 챙기지 못했다고 말해 주십시오. 맘이 걸려요."

"그러잖아도 저희 비서가 좋은 분인 것 같다고, 연락처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 이용한대요. 혹시 저도 이용하게 되면 그때 챙겨 드려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여행자에게 있어 본토인친절은 그 나라의 인상이요, 얼굴이다. 여행자라고 해서 유적이나 풍경만을 보려고 방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베이징 사람들, 친절했다. 첫날처럼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선했다. 미처 꼼꼼하게 준비하지 못한 나그네를 사려 깊게 안내했다.  이름은 사람 간의 신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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