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죽음은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하고, 가족•친구가 함께한 채, 고통 없이 죽어가는 것이다. 좋은 죽음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영국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에서 좋은 죽음을 맞이할 확률은 높지 않다. 노환에 의해 죽음을 맞는 자연사 비율이 현재 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95%는 사고사다. 사건•사고는 나쁜 죽음을 불러온다. 불식 간에 다수의 희생자를 낳고, 유족들의 일상을 빼앗는다. 소식을 접한 이웃마저 마음 한편이 무너져, 한동안 침체의 시간을 보낸다. 사고사에는 각종 사고는 물론, 개인적인 자살과 고령자들의 낙상사고도 포함한다.
그럼,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며, 고요한 일상을 유지하면, 좋은 죽음이 다가올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보행자로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예가 해마다 늘어간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2023. 12. 09 게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2020~2022년) 발생한 보행자 교통사고는 총 109,877건으로, 전체 교통사고의 18%를 차지했다."
조선일보 선우정 논설위원의 [사고 확률](2021. 05. 20. 03:18, 수정 2024. 03. 07. 14:23)을 읽어보면, "한국인이 일생 한 번이라도 교통사고로 다칠 확률은 35.2%다.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은 1.02%다. 대략 3명 중 1명이 사고를 당하고, 100명 중 1명이 죽는다. 암에 걸릴 확률보다 높다. 그래도 한국 기업은 매년 자동차 250만 대를 생산하고, 한국인은 매년 자동차 180만 대를 구입한다. 교통사고로 한 해 3,000명 이상 죽지만, 자동차를 추방하자고 시위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 비행기 사고는 1억 명당 1명이다. 기차 사고는 250명당 1명이다. 이를테면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그럼에도 비행기 사고가 공포스러운 것은 다수가 희생을 당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행기 참사는 대부분 고령자가 아닌, 한참을 사는 청•중•장년 젊은이들이므로, 그 충격의 강도가 더 크다.
이번 2024년 12월 29일 09:03의 무안공항 비행기 참사에서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이해서 시간을 모았다가 여행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건강했다. 짧은 여행의 피로가 조금 있었을 뿐, 곧 일상과 직장으로 복귀하려고 돌아와, 착륙 중이었다. 하여 비행기 내에 갑자기 휘몰아친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그들이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 어떤 기도를 했는지, 혹은 어떻게 서로를 돌보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얼마나 당황했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다급했으면 기장은 동체착륙을 시도했을까, 등을 가슴 아프게 추정해 볼 뿐이다. 하여 가족 13명과 5명의 친구를 한꺼번에 잃고 자신만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아 살아남은 유족이 피를 토해도, 우리는 달리 위로할 말이 없다. 엇비슷한 다른 유족들의 탄식에도 그저 고개를 숙일뿐이다. 아무리 연말과 연시, 한 주간 동안 국가적으로 애도한들, 갑자기 희생당한 이들이 돌아올 수 없고, 그들의 넋이 울음을 그칠 수 없는 까닭이다.
1912년 4월 15일 세계 최대의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 중, 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했다.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미국 뉴욕으로 첫 항해를 시작한 지 4일 만이었다. 거기에는 2,223명이 타고 있었다. 그중 706명은 살아남았다. 여자는 74%, 어린이는 52%, 남자는 20%였다. 남자 신사들이 어린이와 여성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운 결과였다. 나머지 1,517명은 여객선과 더불어 침몰했다.
그때 기울어져 가는 여객선의 갑판 위에서 끝까지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월래스 하트레이가 지휘하던 8명의 악단이었다. 그들은 맨 마지막까지 다른 사람들의 공포를 덜기 위해 위로 연주를 하면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만약 나에게 갑자기 죽음이 다가온다면?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공포를 다스리며, 자신을 추스르며, 옆 사람을 돌보며, 내가 곧 갈 하늘나라를 바라볼까? 아니 나를 의탁할 하늘나라가 있을까? 하늘나라가 없는 사람은 무엇을 기댈까? 어떤 것을 찾을까?
하늘나라는 누구에게나 주어졌지만, 모두가 가는 곳은 아니다. 거창한 무엇으로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귀 기울이지 않아, 잘 모른다. 그저 한 해 한 번씩 맞이하는 성탄절과 부활절의 주인공 예수를 인정하면 되는 것을. 성탄절에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온 것, 부활절에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고난을 받은 후 죽었다가 부활한 것, 그리고 나의 하늘나라를 준비한 것, 그것만 알고 믿으면 되는 것을.
몽테뉴(1533~1592, 프랑스)가 그의 《수상록》(안해린 옮김. 원앤원콘텐츠그룹, 2019. 25~27p)에서 39세에 말했다.
"우리를 종말로 이끌고 가는 것은 사실 특별한 위험도 우발도 아니다. 굳이 위협적인 사건을 겪을 때가 아니더라도 종말은 우리가 긴장하든, 바다에 있든, 집에 있든, 전쟁 중이든, 평안할 때든, 언제나 동일하게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죽음이 갑자기 닥치더라도 놀랄 일이 전혀 없다. 우리는 언제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신을 신고 채비해야 한다... 오래 살건, 잠시 살건, 죽음 앞에서는 매한가지다. 사라지고 난 후에는 길고 짧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늘 소확행 하는 여러분이여, 위험한 세상에 살면서 갑자기 죽음이 다가온다면, 언제라도 갈 곳이 있는가? 예상치 않은 시간에 뜻밖에 죽음이 다가와도 문제없이 돌아갈 곳, 그곳이 있는가? 준비하라. 마련하라. 그때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비참한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