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1939~2008)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가 원작인 영화 《밀양; Secret Sunshine》(감독 이창동, 2007)은 아들을 유괴범에게 잃은 33세 여주인공이 겪는 최악의 고통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많은 말과 생각들을 남겼다.
주인공 신애가 남편과 사별 후,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 밀양에 살려고 내려온다. 밀양 초입에서 승용차가 고장 난다. 그것이 말해주듯, 밀양에 정착하기 위해 피아노 교습소를 열고, 아들을 태권도 학원에 보내며 시작한 그녀의 새 삶은 아들이 유괴되고 살해되므로 풍비박산이 된다. 텃세가 있는 주민들과 쉽게 섞이지 못하자, 돈이 많은 척 허세를 부린 그녀의 거짓이 아들 유괴의 빌미가 되었다. 다행히 절망에 빠진 그녀 곁에는 밀양 첫날부터 호감을 느낀 카센터 사장 종찬이 함께한다. 그녀는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고, 점차 안정을 찾는다. 나아가,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교도소에 찾아가서 대면한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유괴범은 멀쩡하다. 신의 뜻과 용서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그녀에게, 오히려 신에게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하다, 라고 말한다. 그 말에 충격과 분노를 느낀 그녀가 교도소를 뛰쳐나와, 신에게 절규한다.
"어떻게 용서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받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데,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다음으로, 그녀는 교우들과 신을 상대로 적대적인 행동을 시작한다. 물건을 도둑질하고, 교회의 집회를 방해한다. 성적으로 자신을 문란하게 내놓으며, 자해하는 등 정신이상자들이 겪는 증상을 보인다. 결국, 입원하여 치료받은 후, 종찬의 도움으로 귀가한다. 그때 두 사람이 있는 마당 한 구석에 따뜻한 한 줄기 햇살이 비친다.
며칠 전, 《밀양》 주인공의 웅크린 등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과 닮은 말을, 우연히 들었다.
"천하의 나쁜 사람에게 예수 믿는다고 하여 면죄부를 주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요? 도끼 살인범 고재봉도 구원받았다니, 그게 말이 되나요?"
중령 일가족 6명을 도끼로 살해한 희대의 살인범 고재봉도 교도소에 복역하는 짧은 기간(1963. 11. 12 체포, 이듬해 03. 10 사형)에 신의 면죄부를 받고 구원받았다고 전해진다. (《주님의 일을 했더니》 안국선. 에벤에셀, 1997) 다른 범죄자들의 면죄부에 대해서도 뉴스로 들을 때가 있다. 확실히 흉악한 가해자들에게까지 신이 면죄부를 주는 것은 과분하다. 피해자 가족들은 가해자의 몸은 물론 마음과 정신까지 갈기갈기 찢어서 불구덩이에 넣어도 시원하지 않으니까. 더욱이 고재봉은 당시 중령관사 당번병으로서 자신을 징역에 넣어 7개월을 복역하게 한, 상관이 아닌 다른 상관 일가족을 살해했다. 면죄부라니, 말이 안 된다. 불공평하다. 천하의 몹쓸 사람들은 지옥 불에 던져서 영원히 벌 받게 해야 한다. 그것이 공평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행법에는 사형제도마저 폐지되었으니, 피해자들의 애끓는 통탄은 누가 갚아준단 말인가!
신은 왜 그토록 사악한 가해자들에게까지 면죄부(죄 사함)를 주는 것일까? 단지 이제 예수를 믿은 것 외에는 99.9%가 죄악에 물들여져 타인의 생명을 파리목숨처럼 앗은 파렴치한들을, 신은 어떻게, 왜, 무엇 때문에 용서하는가? 그들이 면죄부 수혜자라는 것이 가당한가? 아니, 그들이 면죄부를 받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혹시 그들만의 자기도취 아닌가? 정신착란 아닌가?
그럼에도 전해지는 고재봉의 말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당당 뉴스> 임종석 기자, 2018. 1. 17)
“저는 억울해서 잠도 못 잘 때가 많습니다. 진즉 예수를 믿었다면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수가 되어, 이렇게 죽을 날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누구도 나에게 전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억울하지 않습니다. 늦었지만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저는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면죄부는 사람이나 어떤 단체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면죄부도 그러할진대, 신이 주는 면죄부는 더더욱 그렇다. 일대일로 주어진다. 지극히 개인적이다. 물증도 없다. 본인만 안다. 하지만 면죄부를 받았다면, 그의 표정과 말과 행동에 증거가 나타난다.
다만 한 가지, 면죄부 수혜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예수를 믿는다. 잘 믿고, 못 믿고는 다른 문제다. 그것이 면죄부 혜택의 유일한 통로요, 조건이다. 또 인격의 변화를 말하지도 않는다. 때로 그들은 더 많이 상처받고, 더 많이 치우치거나 모자라는 사람들로서, 충격이나 역경을 만나 피난하듯이 신을 찾은 사람들이다. 당연히 더 나쁘고, 더 이기적이고, 더 세속적인 그들이 변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고재봉도 면죄부를 받았다면, 여러분은 어떤가? 소확행을 꿈꾸는 여러분은 면죄부를 받았는가?
가해자의 면죄부가 불공평하다고 말하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면죄부 수혜자여야 하지 않는가? 살인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아, 세상 법정에 단 한 번도 서지 않은, 착한 여러분이 아직 면죄부를 받지 않았다면, 이유가 무엇인가? 신이 여러분을 차별하는가? 신이 여러분에게만 등을 돌리는가? 아니면 착하고, 앙증맞아 남에게 숨겨진 죄는 멀리 두고, 자타가 다 볼 수 있도록 높이 들려 드러난 흉악 범죄만 보고 있는가?
여러분이여, 흉악무도한 범죄자들도 면죄부 혜택을 누린다.
착한 여러분은 무조건 더 면죄부 혜택을 누려야 한다.
관망할 일이 아니다. 공평하지 않다고 화만 낼 일이 아니다. 그들보다 먼저, 면죄부 수혜자가 되어라. 기적이나 안녕은 차치하고, 거기에서 답을 찾아라. 분명 정답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