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지병으로 작고한 일본 작가 고사카 루카의 자전소설, 《남은 인생 10년》(김지연 옮김. (주)바이포엠스튜디오, 2024)을 읽었다. 20세에 폐동맥 성 폐고혈압증 판정을 받은 여자 주인공의 10년간의 이야기로서, '남은 인생이 10년이라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라는 마음에서 들추었다. 자전적인 소설이므로 감정에 섬세함과 깊이가 있었다. 묘사가 뛰어나고, 줄거리도 탄탄했다. 무엇보다 일본 젊은이들의 문화와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제목에서 드러난 것처럼,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서 질문한 것에 크게 공감했다.
"앞으로 10년밖에 살 수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며 느긋하게 지낼까? 아니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며 내달릴까? 살날이 10년밖에 안 남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이 순간 무엇을 할까?"
내가 섬기는 의료재단에는 3가지 자랑거리가 있다.
첫째는, 처음의 대표가 지금까지 운영하므로 가장 오래되었다.
둘째는, 지자체 시장상을 두 번이나 차지했다.
셋째는, 만 20년 동안 꾸준하게 이웃에게 후원의 손길을 펴 오고 있다.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 재단과 같은 작은 기업에서 꾸준하게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만 20년 동안 사랑의 지침을 소중히 여기고 실천했다. 그것이 첫째와 둘째의 자랑거리를 더 가져왔다.
재단의 자랑거리를 듣다가, 정신이 번쩍 났다. 아주 적은 액수일지라도 젊은 날부터 개인 후원 계좌가 늘 있었는데, 지난 6월부터 끊겼다. 핑계를 대자면, 전화금융사기 때문이었다. 지난 5월 28일 오전, 전화를 받았다. 문제는 사기 전화를 받았어도 무시해야 했다. 그런데 카드를 재발급받은 지 3개월 남짓뿐이었으므로, 배송하겠다는 말에 넘어갔다. 상대방의 수고를 덜어줘야 할 것 같은 오지랖 때문이었다. 급한 마음에 사기꾼이 불러주는 번호를 눌렀다. 또 하나 문제는 전화했다고 하더라도 나의 휴대전화가 아닌, 사무실 전화를 사용했으면 문제없었을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금융기관의 직원으로 속인 사기꾼이 역으로 말했다.
"개인정보가 다 노출되셨어요. 제가 지금 전화금융사기 방지 앱을 깔아드릴게요."
이미 정신이 피싱을 당하니, 완전 무장해제였다. 사기꾼을 내 편으로 알고 개인정보를 모두 내주고도, 40여 분 동안 원격으로 앱을 깔고 휴대전화를 샅샅이 뒤지도록 허용한 채, 나는 나의 업무를 수행했다. 2시간 후, 점심에 식사하면서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그거, 이상해요! 은행에 다른 전화로 전화해 보세요."
급히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 전화를 이용했다. 이상한 게 맞았다. 전화금융사기였다. 그때부터 정신이 없었다. 반차를 쓰면서 경찰서를 방문하여 면허증을, 행정복지센터에 가서는 주민등록증을 분실 신고했다. 카드와 은행 계좌 등등을 금융사에 일일이 전화해서 정지시켰다. 숨 돌릴 새도 없이 이틀 후에는 월말이므로, 또다시 급한 것부터 새로 발급했다. 공과금이나 보험계약 정보도 하나하나 취소하고 다시 연결했다. 그때 알았다. 인터넷상에서 50건 이상 허술하게 떠돌고 있는 나의 개인정보들을. 며칠 동안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일일이 탈퇴하고 삭제했다. 남겨놓을 것들은 비밀번호를 모두 바꿨다. 결과 몸과 정신은 곤비했지만, 실제 금융사기는 당하지 않았다.
수많은 개미군단 후원자들과 기부 천사들이 있어서 세상은 살 만하다고 한다. 크고 어려운 일들도 한 사람이면 힘들지만, 많은 사람의 힘이 모이면 쉽게 헤쳐나간다. 반면, 이 세상에는 얼굴 없는 사기꾼과 착취자들도 다수 공존한다. 그럴지라도 너도나도 착한 개미군단이 되어, 사기꾼들과 착취자들을 부끄럽게 해야 할 것이다.
남은 인생이 10년뿐이라면? 금융사기 전화 이후 자동으로 정지된 후원 자동이체를 얼른 재개했다. 두 개 다 지방에 있을 때 연결한 계좌이므로 옮겨온 지 십수 년 지났으니, 수도권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는 5개월이 지났다. 자원봉사 포털은 아직 검색 중이다. 몸이 약한 내가 직장과 고정적인 자원봉사를 병행하는 것은 무리이니, 엄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고 했다. 사람이 남기는 이름이 무엇일까? 천재는 인류를 위해 획을 그었으니, 명성이 남을 것이다. 여러분과 나 같은 범재들은 무엇이 남을까? 이웃과 함께 아파했거나 작은 떡 덩이라도 나누었던 그것이 아닐까? 그래서 예수는 이 땅의 삶에서 그토록 이웃사랑, 서로 사랑을 강조했을 것이다. 그것만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고, 냉수 한 그릇의 상도 잃지 않는 길이므로. 굳이 이름을 남기고자 함이 아니다. 남은 인생이 10년뿐이라면 더 빨리 아름다운 세상, 소확행을 위하여 한 걸음을 떼자는 말이다.
《남은 인생 10년》에서 여주인공인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남들보다 일찍 찾아온 죽음을 오롯이 마음을 다해 받아들였다. 살고 싶을까, 무서워서였다. 죽음이 슬퍼질까, 두려워서였다. 하여 작가는 에필로그에 덧붙였다.
"10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지 않았더라면 습득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었다. 절대로 행운이라 말할 수는 없어도, 이렇게 살아가는 일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밝혀두고 싶다."
남은 인생이 10년뿐이라면? 후원 개미군단이나 자원봉사 정도는 한두 개 이상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여러분은 어떤가? 남은 인생이 10년뿐이라면 무엇부터 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