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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에바다 Nov 09. 2024

사람, 자연인이었다

대전에서 올케언니가 ‘고구마 이삭 줍기 했다’고, 택배로 고구마를 보내왔다. 이삭 줍기 한 것 치고는 고구마가 작아도 정품처럼 잘 생겨서 놀랐다. 더 놀란 것은 전형적인 도시 여자가 고구마 이삭 줍기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언니가 어떻게 이삭 줍기를 했어요?"

"처음부터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드라이브 중이었는데,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많이들 하는 거예요. 옳다구나, 하고 같이 했어요. 아주 재미있었어요."

"그래요?"

오빠 내외가 논산의 한적한 곳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시골길 옆에 10여 대의 승용차가 세워져 있고, 사람들이 빈 밭에서 무언가를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고구마 이삭 줍기였다. 오빠 내외도 승용차를 세우합류했다. 첫날은 장비가 없어서 주로 남들이 하는 것을 구경했다. 다음 날부터 3 호미와 신발 등 장비를 갖추어 제대로 이삭 줍기를 했다.

현대는 농가에서 대부분 기계로 추수니, 사람 손이 아닌 이상 남겨지는 이삭들이 있었다. 그것을 꽤 많은 인근의 은퇴자들이 몰려와, 이삭으로 거뒀다. 기름값도 안 나오는 일이니, 꼭 필요해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여행이고, 놀이이고, 쉼이었다. 왜냐하면 드라이브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상쾌하며 손에 넘치니, 나누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으니까.


‘이삭 줍기’는 신이 사람에게 명령한 후, 성경 몇몇 군데에 기록해 놓은 긍휼의 법이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레 19:9-10)    


하지만 현대의 이삭 줍기는 꼭 가난하거나 나그네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고향에의 향수인가? 나아가 자연에의 회귀본능인가?

농민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프랑스, 1814~1875)의 《이삭 줍기(1857)는 그의 대표작이다. 당대에는 시민혁명의 조짐이 무르익다가 프랑스혁명(1789~1794)이 일어나면서, '농민의 반란'이라는 해석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사후, 《만종》(1859)을 비롯한 그의 자연주의 작품들은 추앙을 받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자연에서 안식을 찾고자 하는 세계인의 집집이나 사업장에 걸렸다. 사람들은 그가 화폭에 담아낸 농촌 풍경과 농민들의 건실한 삶을 보면서 평화와 안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만종의 '기도하는 농민 부부'에 대하여, 미술 감정사 퍼시 무어 터너(1877~1950)는 그의 책, 《미술관을 박차고 나온 밀레》(본투비문학연구소 역. 본투비, 2022. 29p)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단한 하루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일상의 끝 시간, 온종일 치열한 노력 끝자락에 멀리 떨어진 교회 탑에서 종이 울리며, 하루의 끝을 알린다. 찬란한 일몰의 노을이 은은하게 가득 차서 드넓은 평원을 감싸고, 고요한 감사의 시간은 순수의 조화가 어우러진 느낌을 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안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는 자연인이다》(2012년 8월 22일부터 지금까지 방영되는 MBN의 최장수 교양프로이자 인기 프로)를 시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자연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내가 섬기는 요양 병동 어르신들도 하루 종일 유일하게 시청하는 TV프로가 ‘나는 자연인이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인들'을 주야장천 시청하는 심리를 분석해 보면, 자연인들처럼 세상만사 훌훌 던지고 산속이나 무인도에 들어가 살지는 못하지만, 자연인들을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것이다. 처음엔 실패해서, 혹은 건강 악화로 자연인이 되었지만, 점차로 자연이 주는 풍성함을 누리는 그 삶을, 또한 새로운 활력을 얻어 건강하고 홀가분하게 자연인과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을, 너도나도 흠모하는 것이다.


신은 사람이 살고 누리기에 최적의 자연을 조성한 후, 거기에 첫 사람(아담) 살게 했다. 따라서 자연은 신의 얼굴이요, 신의 마음이다. 사람의 안식처요, 사람의 고향이다. 도시에 태어나 전연 자연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위로 올라가 보면 그의 조상이 자연인인 까닭이다.

사람이 국내로, 해외로 여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선조들이 만들었던 유적지나 문화를 탐방하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경우 대자연을 찾아가지 않는가? 근래에 불같이 일어나는 자연사랑, 자연밥상, 자연치유, 맨발 걷기, 환경운동 등등은 무엇인가?


그렇다. 다소 개인차는 있지만, 근원적으로 사람이 품고 누렸던 대자연, 즉 에덴동산에의 회귀본능과 맞닿았다. 거기서 여러분과 내가 소확행을 느끼고 누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 가진 본능적인 메커니즘 말이다. 사람, 자연인이었다. 하여 사람은 모두 자연에서 안식한다. 대자연에서 치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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