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하나에 결혼했다. 불과 20여 년 전이었음에도 그때는 희귀했다. 세월의 변화가 빨라, 현재는 늦은 결혼 커플을 자주 만난다. 내 조카마저 진즉 마흔을 넘겼는데 아직 미혼이다. 지금은 비혼주의자도 부지기수다.
내가 늦게 결혼하면서 가장 크게 걱정했던 것은 '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릴까 봐'였다. 사람을 향한 에로스 감정이 넘쳐나고 있을 때니 당연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결심했지만, 사람으로 향하는 좋은 감정 때문에 청년 초기에 구체적으로 만난 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원치 않았다.
괜한 기우였다.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알았다. 후후, 헛웃음이 나왔다. 둘이지만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결혼 공동체에서 신을 잃어버릴 일은 아예 없었다. 오히려 일마다 감정이 대립하고 서로 다른 생활 방식으로 충돌하니, 그때마다 피난처가 필요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하여 결혼 전보다 결혼 후에 더 많이 신을 찾아야 했다.
'신을 사랑하는 일'은 혼자서도 가능하다. 얼마든지 나의 모든 것을 보이며 지지받고, 위로받을 수 있다. '이웃을 사랑하는 세상 속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의 장점이 잘 드러난다. 구태여 단점까지 보일 필요가 없다. 주고받는 사랑이기보다는 마음의 결정에 따라 주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구현하도록 명령했다.
둘 이상의 공동체에서는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다른 사랑이 필요하다. 함께 살며 이뤄야 하는 사랑이다. 단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이웃의 범주에 넣는다면 가족도 이웃사랑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 가족을 이웃이라 말할 수 있으랴. 또한 내 가족에게서조차 '주고받는 서로 사랑'이 아닌, '일방통행적인 사랑'이라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또 무미건조한가. 거기에 행복이나 기쁨, 만족함이 존재할까? 이웃에게는 일방적인 사랑도 기쁨이 크다. 만족감이 있다. 그러나 공동체는 다르다. 맛이 없다. 의례적이다. 억지로 웃는다.
그것을 아는 예수가 온몸으로 사랑을 보여준 후 하늘로 떠나면서 제자 공동체에 당부했다. 그때는 가룟유다가 예수를 배반하기 위해 마지막 식사자리를 막 떠났을 때였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부부든지, 가정이든지, 교회든지, 회사든지... 둘 이상의 사람 공동체에는 '서로 사랑'이 절대적인 덕목이다. 서로 사랑은 견딘다. 배려한다. 기다린다. 끝까지 함께 한다. 서로 사랑이 전제될 때, 거기에 꿀이 흐르고 마르지 않는 샘이 존재한다. 또한 건강하다. 그 반대일 때,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다. 메마르다. 무산되거나 무덤이 된다.
너와 나, 우리의 관계에서
미움, 얼마나 치명적인가!
배신, 얼마나 참혹한가!
짝사랑, 얼마나 안타까운가!
한쪽 사랑, 얼마나 처연한가!
서영은(1943~)의 단편소설 《먼 그대》(문학사상사, 1983)를 보라. 주고 또 주는 사랑이지만 만져지지 않는 사랑이다. 기만당한다. 업신여김 받는다. 그럼에도 유부남을 사랑하는 주인공 문자는 고통을 끌어안고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자 온 힘을 다한다. 사랑을 저당 잡히고, 돈을 갈취당하며, 자기가 낳은 딸마저 빼앗겨도 기꺼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의 짐을 진다. 현실에서는 잘 만날 수 없는 캐릭터다. 그것이 독자에게 서늘한 울림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무자비한 칼처럼 그녀에게 낸 상처 하나하나를 딛고 일어설 때마다, 문자의 정신은 마치 짐을 얹고 또 얹고 그러는 동안 자기 속에서 그 짐을 이기는 영원한 힘을 이끌어 낸 불사조의 낙타 같았다."
반대로, 실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로버트 와이즈 감독, 1965년)은 달콤하다. 갈등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설사 첨예한 갈등이 있어도 그 가족은 충분히 일어설 동력이 엿보이는, 서로 사랑의 공동체다. 수녀 수련생이었으나 노래가 좋아 폰 트랩 대령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들어간 마리아는 먼저, 일곱 명의 아이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쏟는다. 이후 대령과 결혼하는 과정에서도 자녀들의 협력과 서로 사랑이 돋보인다. 또한 폰 트랩 대령이 나치 체재에의 귀환 명령을 거부하고 탈출하여, 미국에서 '폰 트랩 가족 합창단(Trapp Family Singers)' 활동을 전개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원작은 주인공 마리아 폰 트랩(1905~1987)이 1949년에 집필한 자서전이다. 마리아는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이미 만들어진 다른 가족 공동체에 들어가 용서와 화해, 서로 사랑의 아름다움을 '합창'으로 피워냈다. 하여 반 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읽고 보는 이들에게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선물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인 시인의 '봄의 연가'를 펼쳐보자.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열림원, 2015)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겨울에도 봄
여름에도 봄
가을에도 봄
어디에나 봄이 있네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플수록
봄이 그리워서 봄이 좋아서
너는 나를 봄이라고 불렀고
너는 내게 와서 봄이 되었다
우리 서로 사랑하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언제라도 봄"
이 땅의 모든 부부여, 서로 사랑으로 봄꽃을 피워라!
이 땅의 가정들이여, 서로 사랑으로 맑은 샘의 근원이 되어라!
이 땅의 공동체들이여, 배려하고 용서하며 끝까지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하면 꿀과 행복과 충만함과 성공이 뒤따를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