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사랑하는 일'은 혼자서도 가능하다. 얼마든지 나의 모든 것을 보이며 지지받고, 위로받을 수 있다. '이웃사랑'도 마찬가지다. 나의 장점이 잘 드러날 수 있다. 적당한 거리 덕분이다. 그러나 가족 사랑,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는 '서로 사랑'은 다르다.
나는 결혼하면 사랑이 쉬워질 줄 알았다. 오죽하면 내가 늦게 결혼하면서 가장 크게 걱정했던 것은 '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릴까 봐'였다. 사람을 향한 에로스 감정이 넘쳐나고 있을 때니 당연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결심했지만, 사람으로 향하는 좋은 감정 때문에 청년 초기에 구체적으로 만난 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원치 않았다.
괜한 기우였다.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알았다. 후후, 헛웃음이 나왔다. 둘이지만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결혼 공동체에서 신을 잃어버릴 일은 아예 없었다. 오히려 일마다 감정이 대립하고, 서로 다른 생활 방식으로 충돌하니, 그때마다 피난처가 필요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하여 결혼 전보다 결혼 후에 더 많이 신을 찾아야 했다.
그것을 아는 예수가 온몸으로 사랑을 보여준 후, 하늘로 떠나면서 제자 공동체에 당부했다. 그때는 가룟유다가 예수를 배반하기 위해 마지막 식사자리를 막 떠났을 때였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부부든지, 가정이든지, 교회든지, 회사든지... 둘 이상의 사람 공동체에는 '서로 사랑'이 절대적인 덕목이다. 서로 사랑은 견딘다. 배려한다. 기다린다. 끝까지 함께 한다. 서로 사랑이 전제될 때, 거기에 꿀이 흐르고 마르지 않는 샘이 존재한다. 또한 건강하다. 그러나 그 반대일 때는 상황 끝이다.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다. 메마르다. 무산되거나 무덤이 된다.
마리아 폰 트랩의 자서전을 영화화한《사운드 오브 뮤직》은 '서로 사랑'을 이루었다. 주인공은 수녀 수련생이었으나 노래가 좋아 폰 트랩 대령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들어간 마리아는 먼저, 일곱 명의 아이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쏟는다. 이후 대령과 결혼하는 과정에서도 자녀들의 협력과 서로 사랑이 돋보인다. 또한 폰 트랩 대령이 나치 체재에의 귀환 명령을 거부하고 탈출하여, 미국에서 '폰 트랩 가족 합창단(Trapp Family Singers)' 활동을 전개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미 만들어진 다른 가족 공동체에 들어가 용서와 화해, 서로 사랑의 아름다움을 '합창'으로 피워냈다. 마리아는 무엇으로 그런 서로 사랑을 이루었을까? 그녀 혼자 해내었을까?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선택도 아니다. 살아내야 하는 전투다. 그래서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결국 서로 사랑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신을 찾는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러 간다.
마리아 폰 트랩.《사운드 오브 뮤직》. 로버트 와이즈 감독,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