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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영광

by 뜰에바다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으로 넬슨 만델라(남아공, 1918~2013)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가 95세를 일기로 서거했을 때, 세계 정상들이 대거 그의 영결식과 장례식에 참여했다. 만델라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하여 변호사 사무실을 내고 ANC(아프리카 민족주의) 활동에 적극 나섰다. 결과 1962년(44세) 투옥되어 종신형을 받고, 1990년 석방되기까지 무려 27년간 정치범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그가 석방되면서 남아공의 인종차별 제도는 종식되었다. 이후 3년간의 용서와 화해 운동은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겼다. 이듬해에는 남아공의 민주 선거로 첫 흑인 대통령이 되어, 정의와 평화 정책을 확장해 나갔다.

만 27년이 넘는 수감생활은 한 인생을 송두리째 파기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많은 경우, 그 형량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만델라는 거기에서 법 공부를 하여 학위를 받았다. 무엇보다 혹독한 D급 생활(6개월 1회 면회) 속에서도 자신을 뛰어넘어 많은 수감자에게 희망과 임무를 불어넣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인간의 역사와 문명; 남아공 만델라 시대 민주화》 황인철. 루미너리북스, 2024)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있는 로벤섬은 만델라와 그의 동지들이 자유를 향한 투쟁 정신을 더욱 공고히 다진 역설적 공간이었다. 당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반체제 인사들을 이곳에 수감함으로써 그들의 투쟁 의지를 꺾으려 했으나, 오히려 이 섬은 정치범들의 연대와 저항정신을 키우는 산실이 되었다. 수감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교수'라고 부르며 비밀리에 학습 모임을 가졌고, 이는 후일 '로벤섬 대학'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석회암 채석장에서 강제노동은 수감자들의 육체를 혹사했지만, 그들의 정신만큼은 더욱 단단해져 갔다."

2007년, 남아공에서 만든 영화 《굿바이 만델라》(빌 어거스트 감독)는 넬슨 만델라의 27년 옥중생활과 그를 감시하는 교도관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만델라는 감시받는 가혹한 생활 중에도 비폭력적 온건한 태도와 감화 어린 말들로 백인 교도관 제임스 그레고리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그것을 증명하듯, 만델라는 그의 마지막 자서전 《나 자신과의 대화》(윤길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0)에서 말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았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가 우리 삶의 의미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만델라를 만델라 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 그의 어린 시절의 기독교 배경과 교육이다. (《나 자신과의 대화》)

"나는 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웨슬리 교파 학교(클라크베리, 힐트타운, 포트하레)에서 교육을 받았다. 기숙사도 웨슬리 하우스에서 지냈다. 포트하레에서는 일요 학교 선생이 되기도 했다. 여기서도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도 일부 즐겼다…. 나는 신의 존재 여부에 관해 내 나름의 믿음이 있고, 왜 인류가 태곳적부터 신의 존재를 믿었는지도 아마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거다."


둘째, 27년간의 감옥생활이다. 교도소에서 그는 주저앉는 대신 일어나 화해와 용서를 구현하는 지도자로 성장했다. (《인간의 역사와 문명; 남아공 만델라 시대 민주화》)

"만델라는 수감 생활 동안 '워킹 유니버시티'라는 독특한 학습 방식을 고안했다. 채석장에서 일하는 동안 수감자들은 서로 가까이 붙어 걸으며 정치, 역사, 철학을 토론했고, 이는 그들의 정신적 양식이 되었다. 감옥 당국의 감시를 피해 진행된 이러한 학습활동은 수감자들에게 희망과 투쟁 의지를 심어주었다. 채석장의 먼지와 소음 속에서도 그들은 아프리카 전통문화, 마르크스주의, 간디의 비폭력 저항론 등 다양한 주제를 논했다. 이러한 지적 교류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넘어 흑인들의 자존감 회복과 정체성 확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수감자들은 서로의 부족어를 배우며 문화적 이해를 넓혔고, 이는 후일 남아공의 다문화주의 정책의 토대가 되었다.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은 역설적으로 남아공의 미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요람이 되었다."

셋째, 침묵(명상)과 비폭력 투지다. (《나 자신과의 대화》)

"감옥은 다른 것은 몰라도 날마다 자신의 행동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나쁜 것은 극복하고 좋은 것은 무엇이든 발전시킬 기회를 준다오. 이 점에서 날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15분 정도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면 아주 알찬 결과를 얻을 수 있소. 처음에는 자신의 삶에서 부정적인 것들을 정확히 집어내기가 어려울지 몰라도, 계속 시도하다 보면 열 번째에는 알찬 보상을 얻을 수 있다오. 성인은 계속 노력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결과, 과연 그의 삶은 그의 어록과 일치했다.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김대중 역, 두레, 2020)

"우리의 가장 큰 영광은 절대 실패하지 않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실패할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1세기 예수의 제자 베드로는 실패자였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지만, 예수가 로마 군병들에게 잡혀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모른다'라고 세 번 부인했다. 그의 실패는 그를 고향으로 이끌었다.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예수를 위해서라면 평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예수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예수가 부인할 것을 예고했음에도, 자신의 의지를 믿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그런데 스승을 부인하다니! 사람의 의지는 아무리 빛나도 물거품이었다. 하여 갈릴리바다에서 다시 예수를 만났을 때, 그의 대답은 변했다. 결코 웅변으로 앞서지 않았다. 사람의 약함을 뼛속 깊이 경험한 자의 겸손이 묻었다. 그리고 실패의 허상을 깨뜨려야 세워짐을 아는 예수는 그의 세 번의 실패를, 세 번의 동일한 질문으로 부수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베드로, 실패를 디딘 사도로서 1세기 식민지의 암울함과 오고 오는 세대를 희망으로 수놓았다.

넬슨 만델라, 실패를 이긴 투사로서 20세기 인종차별을 용서와 화해와 평화로 종식했다.

그들은 달라도 닮았다. 너무 많이 닮았다. 여러분이여, 잊지 말라. 실패는 영광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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