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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그리고 신대륙

by 뜰에바다

17세기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프랑스, 1596~1650)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의심하며, 그 의심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진리를 찾으려"(《방법서설·성찰; 데카르트 연구》. 최명관 옮김. 도서출판 창, 2011)했다.

그는 자기의 존재까지 의심했다. 하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한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는 그 유명한 <Cogito ergo sum;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사상을 철학 역사에 아로새겼다. 긍정적인 의심의 방법으로 근대철학의 신대륙을 찾은 것이다. 나아가, 같은 논리적 추론으로 신을 존재론적으로 증명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인 신 관념을 가지고 있다.

존재는 완전성의 한 속성이다.

완전한 존재의 관념 속에는 필연적으로 '존재'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은 반드시 존재한다.




'부활'을 가장 먼저 의심한 사람은 1세기 예수의 제자 도마였다. 그는 안식 후 첫날 저녁때 자신들을 찾아온 부활의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 어인 일인지 그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가 밖에서 돌아오니 10명의 제자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났어! 막달라 마리아 말대로 주님이 진짜 부활하셨어!"

그가 소리쳤다.

“형제들, 정신 차려! 주님은 죽었어.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사나! 나는 주님의 못 박힌 손에 내 손가락을 넣고, 주님의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자네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8일 후, 그가 제자 모두와 함께 있을 때 예수가 나타났다. 순전히 그를 위한 출현이었다.

도마야, 못 자국난 손을 만져볼래? 창 자국난 옆구리에 손을 넣어볼래?”

그때 그는 손가락이나 손을 넣어보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부활자 예수를 보는 것만으로 바로 무릎 꿇어 탄성을 지르며 고백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2016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부활; RISEN》(케빈 레이놀즈 감독, 조지프 파인스 주연)은 로마군의 대장, 이방인 클라비우스 호민관이 주인공이다. 로마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급진 유대인들이 메시아사상으로 자유를 요구했다. 클라비우스 호민관이 로마 10군단을 이끌고 대항하는 유대인 무장세력을 철저히 응징했다. 그즈음, 빌라도 총독이 그에게 예수의 처형을 명령했다. 그가 군사를 동원하여 아무 거리낌 없이 예수를 체포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후한이 없도록 무덤을 봉인하고 군사를 세워 지켰다.

3일째 새벽, 예수의 시신이 사라졌다. 빌라도가 대로하여 그에게 예수의 시신을 찾아내라고 다시 엄명했다. 그가 군사를 풀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사라진 예수는 흔적도 없었다. 대신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예수가 메시아로 부활했다는 소리가 나돌기 시작했다. 예수의 시신을 찾아야만 소문을 무마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보좌관과 함께 사라진 예수의 행적을 다시 뒤쫓기 시작했다. 증인들을 하나하나 불러 심문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오리무중에 빠졌다. 그러다가 제자들이 있다는 곳을 제보받아 급습했다. 그가 예수와 마주쳤다. 그 순간 그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동시에 그에게수의 진실을 알아야겠다는 일념이 생겼다.

일단 그는 로마군의 수장직을 떠나 광야로 들어간다. 먼저 예수의 제자와 접촉한다.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를 다시 만난다. 승천하는 예수를 본다. 예수의 유언도 듣는다.

이제 더 이상 그는 호민관의 옷을 입고 있을 수 없었다. 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향하여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의심은 확신할 수 없을 때 생긴다. 그럼에도 진정한 의심의 끝은 신대륙이다. 그것이 신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여러분이여,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게 느껴지는가? 의심하라. 그리고 생각하라. 뜻밖의 신대륙을 발견할 것이다. 과거의 모든 선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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