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카고에서 인생 시즌2를 시작하며..
나의 해방 일지 라니..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시리즈 제목이기도 하고, (나 또한 간만에 끝까지 챙겨본 드라마였다.) 뭔가 거창한 타이틀 같지만, 무언가 지금의 내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표현 같았다.
17년간의 직장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가족 모두와 미국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긴다는 결정 자체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 흔한 이직 한번 못해보고 미련하게도 입사 후 계속 한 회사를 다닌 나로서는 더군다나 어려운 선택이었다.
살다 보니 아주 사소한 고민은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면서도 아주 큰 결정을 의외로 대범하게 결정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테면 쇼핑을 할 때, 블랙을 할지, 네이비를 할지, 미디엄 사이즈냐 라지 사이즈냐 같은 아주 사소한 선택지도 엄청나게 고민하고 결국 결정을 못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결혼이라든지, 신혼집 선택 등은 상당히 쿨하고 퀵하게 결정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어이없는 얘기일 수도 이겠지만,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나는 그 중요도와 고민의 시간이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다.
"미국에 가자. 애기 학기 마치는 내년 6월 말에"
이렇게 대범한 결정을 내린 것은 작년 가을쯤이었다. 와이프와 결혼 후에는 "언젠가는 우리가 애를 낳아서 미국에서 교육을 시키면 어떨까, 우리의 노후는 미국에서 보내면 어떨까? 기왕이면 따뜻한 지역이면 좋겠다. 하와이나 괌 같은.."등 막연한 상상과 미래에 대한 설렘을 담아 얘기를 종종 나누곤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실행을 위해 심각하게 고민해본 건 처음이었다. 의외로 결정은 쉬웠다. 생활비에 대한 간단한 시뮬레이션, 비자를 받기 위한 방법 등에 대해서 짧게 얘기한 후 우리는 바로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더 펼쳐 얘기하겠지만, 비자를 위해 준비하고, 비자를 받는 과정은 그야말로 상당한 노력과 시간,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특히나 대기업 직장생활, 팀장이라는 직책이 주는 시간적 한계 속에서 동시에 준비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기나긴 과정이었다.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손에 영사의 싸인이 적힌 종이를 받고 걸어 나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기쁘면서도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묘한 기분이었다.
"와아.. 나 진짜 이제 미국 가는구나"
수개월 간의 피땀눈물의 결과에 대한 기쁨은 잠시, 회사 동료들, 부모님, 친구들에게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부터 걱정이 몰려왔다.
"박경민 큰 사고 쳤네.."
어느덧 미국에 온 지 열흘이 지났다. 이제 겨우 시차 적응을 마친 수준이며, 집안은 채워도 채워도 아직도 텅텅 빈 느낌이다. IKEA(여기에선 '아이키아'라고 부른다)에서 사 온 온갖 박스들이 거실에 널브러져 있고, 조립을 하도 해서 손이 얼얼한 상태로 식탁 한 켠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직도 잠깐 짧은 여행을 하고 있거나,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아주 기묘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대학 졸업 이후에 17년 동안 단 한 번도 2주 이상을 쉬워본 적이 없는 생활을 한 내가 지금은 아무런 일정도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Google 캘린더'는 항상 미팅, 약속 일정 등으로 한 달이 꽉 차 있었다가 지금의 텅 빈 캘린더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제 곧 이 생활에 적응해야만 한다. 미팅과 약속은 나만의 일정으로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아직은 엄청나게 부여된 이 시간들을 어찌할 줄 모르고 마냥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에서의 하루는 또 얼마나 짧은지.. 뭐 한 거 없이 금방 저녁이 찾아온다.
[Glenview에 있는 Gallery Park의 노을]
내 나이 43세, 어쩌다 보니 인생 시즌1을 조기 종영하고, 새로운 시즌2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것도 낯선 미국 땅에서 말이다. 많이 설레기도 하고, 당장 이번 달부터 월급이 안 들어온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하얘지기도 한다. 나는 더 이상 대기업 부장님이 아닌, 한국에서 온 이방인 '박경민' 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누가 보면 무모하다 할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최근 10년간 과감한 결정의 연속이었다. 잘 자리 잡은 직무 10년 차에 성장에 대한 목마름 하나로 다른 직군을 바닥부터 시작한다던지, 축소세였던 걸 알고도 해외사업이 좋아서 무작정 손들고 나갔던 결정이라든지 말이다. 오죽하면 SNS 프로필이 'Viva La Vida Loca'(미친 인생을 살아라, 스페인어, 느끼한 라틴계 가수 Ricky Martin의 히트곡 제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영어 이름이 Martin) 이기도 하다.
40여 년간 어찌 보면 나는 항상 어디에 속해서 달리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던 거 같다. 학창 시절, 군대, 복학, 취업.. 단 한 달의 공백도 없었고, 졸업 후 일을 시작한 후로는 주말에도, 휴가 중에도 나는 업무 생각, 걱정에 영어 표현처럼 완벽히 'OFF' 된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이제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인생 사이클에서 나 자신을 잠시 해방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글 제목을 해방 일지라고 정한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 시즌2. 그 에피소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음 회에서 계속)
*표지설명: 우리 아파트에서 바라 본 하늘. 와서 매일 매일 푸른 하늘에 감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