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요즘 날씨가 수상하다. 연말 즈음에 불어닥친 한 번의 snow strom 이후에 거의 초봄을 연상시키는 날씨가 몇 주째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시카고 쪽은 지난번 눈보라도 살짝 비껴나간 수준이었고, 엄청난 피해는 주로 뉴욕주와 캐나다 쪽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비싼 돈 들여서 영하 20도 이상을 견딘다는 패딩점퍼, 장갑, 부츠도 구비하고, 바깥에 서있어야 하는 자동차 한 대를 위해 스노 커버, 눈 긁게 까지 모두 준비해 놓은 터였다. 이러다 혹한이 지나서 곧 봄이 다가오는 거 아닌가 싶은 요즘 심정이다. 이상 기온에 대한 원인이야 뭐 당연히 Global Warming이겠지만, 연초에 캘리포니아에 들어닥친 물폭탄(원인이 '대기의 강' 때문이라고 하는데..)나 한겨울 맹추위로 유명한 이번 겨울 서유럽의 따뜻한 날씨도 모두 모두 반갑지 많은 아닌 게 사실이다.
시카고 지역은 전통적으로 겨울이 길고,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교민들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기서 전에 몇 년 간생활을 했던 와이프의 증언(?) 만으로도 얼마나 심했는지 느낄 수 있다. 눈이 한번 오면 무릎까지 오는 게 기본이고, 때로는 사람 키만큼 까지 온 적도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양이다. 거의 바다만큼 큰 '미시간 호수'도 추운 겨울날씨에 한몫하는데, 실제로 겨울에 시카고 다운타운에 나가보면 매서운 호수 바람 때문에 체감 기온이 실제보다 10~20도 가까이 더 떨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2018년도 겨울에는 매서운 블리자드가 시카고에 들이닥쳐 거의 10일여간 모든 비행기가 취소되고, 다운타운 쪽에서는 동상에 걸린 사람들의 사진이 각종 뉴스에 도배되곤 했다. 당시 멕시코에서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을 방문했던 장모님은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원래 일정보다 일주일을 더 머무르셔야 했다.
가끔 한국의 날씨와 여기의 날씨를 비교해 보곤 하는데(미국 생활은 실제로 그만큼 할 일이 없다) 심지어 요즘엔 한국이 시카고 보다 기온이 더 낮은 경우가 많다. 생각해 보면 한국의 겨울도 결코 만만치는 않았던 거 같다. 늦은 밤 집에 가려고 주차장에 가면 꽝꽝 얼어 있는 차에 얼음을 제거하느라 한참 이따가 출발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나에게 한국에서의 겨울 하면,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아우 추워' 하면서 몸을 움츠리게 만들 던 그 쨍한 기분이 떠오른다.
[날이 따뜻해져서 야외 공원에서 한겨울에 농구도 가능하다]
이상기온만큼이나, 미국에서의 내 생활도 예상과는 다소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원래 계획했던 것들이 잠시 보류되기도 하고, 새로운 방향을 계속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도 펼쳐졌다. 뭐 원래 인생이란 게 계획된 대로 수월하게 흘러갔던 적은 많이 없었던 거 같지만, 이제 20대 청년이 아니므로 내 인생 방향에 대한 무게감이 어깨에 진하게 느껴짐으로 방향 전환에 대해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겨울이 지나고, 진짜 봄이 곧 찾아오겠지..